어느날의 이야기...



 1.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이 있었죠. 미술 대학이라서 그런지 3학년 때까지는 잘 피부로 와 닿진 않았지만 졸업반이 되자 저도 알 수 있게 되었어요. 대학교는 취업을 위해 다니는 곳이라는 거요. 휴. 커리큘럼부터가 애초에 취업을 위해 존재하는 것들도 몇 개 생겼고요.


 언프리티랩스타1에서 제시라는 여자가 '니들이 뭔데 나를 판단하니?'라고 하는 랩 영상이 있더군요. 오글거려서 끝까지는 못 봤어요. 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그게 싫으면 TV 쇼에 안 나오면 되는 거잖아요. 직장도 마찬가지예요. 직장에 가서 '니들이 뭔데 나한테 가격을 매기니?'라고 떠드는 건 또라이짓이죠. 그게 마음에 안 들면 직장에 안 가면 되는거예요.


 하여간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었어요. 제가 취직을 하게 되면 그건 저에게나, 직장에서 절 보게 될 사람들에게나 나쁜 결과를 가져올 거란 걸요. 그래서 취직은 패스였죠.   


 휴.


 한데 문제는...학점이 모자랐어요. 그리고 졸업반에 가니 어떻게든 졸업을 시켜주려는 건지 웬만한 과목들은 학점을 후하게 주는 거예요. 그건 그 취직에 관한 커리큘럼도 마찬가지여서, 그냥 듣기로 했어요. 


 

 2.수업 내용은 별 건 없었어요. 이 수업은 전임교수가 아닌 그때그때 매번 다른 강사가 와서 진행했어요. 입사 지원서를 미리 써 보거나 강사가 다니는 회사를 견학 간다거나 하는 거요. 의외로 재밌었어요. 입사지원서를 쓸 때는 정말 처절하게 회사를 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문학 작품 한 편을 썼어요. 견학을 갈 때는 매번 다른 곳에 가서 뭐 다과 같은 걸 먹으며 이런 저런 질문을 하는 그런 거였어요.


 강사들은 입사 지원서 잘 쓰는 법을 가르쳐 주러 온 강사 말고는 대체로 이미 졸업한 윗학번들이었어요. 그들이 개인적으로 차린 디자인 회사-광고라던가 CI라던가-에 견학을 가는 거였죠 대체로. 거기 가서 다과를 먹으며 이런 저런 질문들을 하는 거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기업공개도 된, 스테레오타입의 회사라고 할 만한 곳에 견학가게 됐어요. N모 사였죠. 흠...고민됐어요. 수업을 빼먹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런 '진짜 회사'엔 구경 가는 것조차도 싫었거든요. 지금 돌아보면 좀 이상한데, 하여간 철저히 선을 긋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잘 못찾겠다고 하며 동기들에게 먼저 가 있으라고 하고 회사 앞에서 대기했어요.


 휴.


 견학이 끝나고 사람들이 나오는 걸 보며 '아 이런...한참 헤맸어요. 하지만 왔으니까 결석은 아닌 거죠?'같은 연기를 했던 거 같아요. 강사는 견학이 끝났으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어요. 동기들이 회사 시설을 보고 참 좋았다고 하도 칭찬을 해서 회사 시설이 어떤지 궁금할 지경이긴 했어요.


 어쨌든 식당에 가서 자리를 잡았어요. 가장 잘 클로킹할 수 있을 만한 곳에 앉으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강사와 가까운 곳에 앉게 되었어요. 


 어쩔 수 없었죠. 밥을 사주는 사람 앞에서 김 빠진 소리들을 할 순 없으니 열정적인 취준생을 연기할 준비를 했어요.



 3.식사를 대충 하고 강사가 입을 열었는데 좀 의외였어요. 


 "너희들 정말 취직을 하고 싶은 거니? 잘 생각해 봐."


 뭐 이런 말이었어요. 그리고 한숨 비슷한 걸 쉬며 말을 이었어요.


 "우리들끼리는 월급을 '뽕'이라고 해. 이번달까지만 하고 그만둬야지 욕하다가 한달에 한번 맞는 뽕. 진짜 이번달까지만 하고 씨X 그만둔다 하는 사람도 그 뽕을 맞으면 '또 한달 다녀볼까...'한단다."


 그러더니 제 쪽을 보며 물었어요. 학생은 뭘 좋아하냐고요. 무조건반사적인 "공짜 점심과 지름길, 그리고 돈."이라는 대답을 가까스로 참아내고 만화를 좋아한다고 하자, "그럼 만화 쪽으로 진로를 정해 봐." 하고 다른 학생들을 둘러보며 가능하면 앞뒤 안보고 취직하는 거보단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살려서 해보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을 던졌어요. 


 사실 n사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 n사가 아닐지도 모르지만...)한국 최고급의 회사잖아요. 한국 최고급의 회사 안에서도 또 디자인과 출신으로선 제일 괜찮은(선망받는?) 편에 속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서 들은 말이 저 소리라니...좀 생뚱맞았어요.



 4.휴.



 5.꽤 오래 전 일을 이유없이 쓰거나 하지만 별로 신경쓰이는 일화도 아니었던 이 일화를 쓰는 이유는 있어요. 이 글을 처음 쓸 땐 한가지에만 해당된다고 여겼는데 과거 이야기를 쓰다 보니 이 글에 언급된 두 가지 사실에 다 해당되는 한 주군요. 그것도 길게 써보려다가...뭐 기회가 되면 다음에 쓰죠. 











    • 뽕이라 그러니 그런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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