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국정화되어도 상관없다는 논리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국정화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국정화 해도 큰 일은 없을 거다. 7~80년대의 교과서로 배운 사람들도 민주화 운동 해냈고, 다음 정권에서 다시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고, 학생들에게 실제 전달되는 과정에서 교사나 학생 주변 지식인들이 일부 교정해 줄 수도 있고.. 그래서.. 아주 큰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는 이런 논리에 동의하기가 어렵네요.
그 당시에 70~80년대에 교과서로 공부하신 분들이 지금 노인이 되어서 열렬하게 박근혜를 지지하고 계시죠. 40대 이하의 젊은층이 그렇게 반대해도 연일 새누리당이 승리하는 이유가 그런 노인 분들 때문이죠. 한번 어릴 때 정해진 세계관을 바꾸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종편이 나왔을 때도 같은 논리가 있었습니다. "5공 시절 땡전뉴스 나올 때도 우리 다 그거 거짓이라는 거 알지 않았냐, 상관없다"
실제는 어떻냐면 70~80년대에 교육 기관, 언론 기관의 사상 주입에서 자유로울 수 있던 사람은 대학교에서 껍질을 깰 기회가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이었죠.
물론 당시와 달리 요즘은 인터넷이 있어서 조금 다른 게 있긴 하지만.
아무튼 '교육'과 '미디어'의 힘을 너무 앝잡아보는 것 같아요.
삽질은 그냥 안하면 되는거죠. 어마어마한, 돈과 명예 실리를 시궁창에 버리는 짓은 해도 상관없는 게 아니라 안해야 하는 겁니다.
독재자가 있던 시절에는 죽을까봐 어쩔 수 없이 했던 거고, 민주국가에서 이런 짓을 하면 쓰레기 같은 나라가 되는 거죠.
이럴때 각계 각층의 지식인 언론인이 나서야 하는 겁니다.
친구가 그 시절을 모르고 자유롭게 자라서 그래요. 국정교과서의 여러 문제 중 하나가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고 이것은 교사와 학생의 수업권과 학습권, 헌법의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해서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들죠.
학교에서 국사시간에 어떤 소리는 금기가 되고 그런 금기가 하나씩 쌓이면서 함부로 말을 못해요. 윤리와 국사시간이 선생님과 학생들의 사상검증 시간이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한 과목이 그러면 다른 과목들도 스스로 몸을 사리면서 다른 소리를 못내요. 그러면 교과과정 뿐만이 아니라 학교 공동체 자체가 그저 권위에 복종말고는 모든게 불온시 되어버리죠. 아이들은 그걸 느끼는 아이도 있고 아닌 아이도 있지만 수업시간동안 그런얘기 해도 되요? 혹은 이런 얘기 하면 안된다 같은 식의 제약을 주고 받게 되버리죠. 근현대사에서도 대한제국부터는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독립운동사나 민주화얘기는 10분하고 교과를 마치고 시험에 안나온다로 퉁치고 끝나버리죠.
님 말씀 덕분에 잊고 있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국정 교과서 세대군요;; 한국사 배울 때 대한제국의 종말과 일제 강점기 저항사 빼면 근현대사에 대해 뭘 배운 기억이 없군요. 그러고 보니 제 인식에도 근현대사는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역사'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그러다 사회 나와서 어린 초등학생들이 학교 사회 시간에 유신에 대해 배우고 5.18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얘기하고 4.19혁명이나 6월 항쟁이 어떻고...군사 반란이 어떻고 신군부가 어떻고...자연스럽게 얘기하던거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 아이들이 그렇게 얘기 할 때 부모님들이 언짢은 표정을 지을 때마다 저는 이렇게 얘기했죠. " 교과서에서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에요."
저도 주위 눈치 안보고 얘기할 수 있어서 새삼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본 사회 시험지를 받아 보고 25문제 중에 15문제가 한국 현대사에 할애된거 보고 나도 모르게 그래, 이게 당연하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것도요....맙소사, 그게 겨우 10여년 전인데 참 까마득하게 느껴지는군요.
지금의 50대가 87년 6월민주항쟁의 주역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건 수도권의 소수였고, 전국 50대의 대다수는 박근혜를 열렬하게 지지하고 있음이 지금 드러나잖아요. 교육은 중요하죠...
저도 국정교과서 세대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근현대사를 찾아 읽었으니 아는거지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아요. 근현대사는 교과서에 나오긴 했지만 시험범위가 아니었거든요. 맨 마지막에 있어서.
도무지 교과서를 통해서는 뭘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어서
공기가 없어져야 숨을 못쉰다는 것을 느끼죠.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지나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사실 저도 지금 목숨을 걸고 있지는 않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