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미대 수업 과제로 길거리의 쓰레기 더미를 찍어 큼지막한 패널에다가 로모월 마냥 꾸며서 낸 적이 있어요.
인화한 이백장이 넘는 사진들을 퍼즐 맞추듯이 맞춰서 멀리서 유심히 보면 사람 얼굴이 보이게 배치를 했죠.
A를 받기는 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불법투기 신고하려는 사람인 줄 알고, 아줌마가 막 빗자루 들고 쫓아오고...
그때 쓰레기들을 찍고 다니며 미와 추에 대해서 생각을 좀 했어요. 생각만 했어요. 답이 안 나오는 질문이더만요.
아이유 씨가 로리타 컨셉을 꾸준히 해 왔고, 이번에 동화 격의 스토리에 나오는 인물을 거기 사용했다고 시끄럽잖아요?
제 첫 생각은 "안 돼?" 였어요 대중예술도 예술이라면 예술인데, 예술가에게 너무 팍팍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파인 아트가 아닌, 대중예술이니까 조금 더 영향력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결국 내린 결론은, 이 것도 결국 과정에서 벌어지는 헤프닝이라는 거에요.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든.
이재은 씨가 노랗게 머리를 물들이고 영화를 찍었을 때, 비비드한 컬러는 "왜 저래?" 손가락 질 받는 파격이었죠.
이제 홍대만 나가봐도 보라색, 은색, 초록색, 비록 아주 흔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확실히 달라진 건 하나 있어요.
아주 완고한 노인이 아닌 이상, "헉, 쟤 머리 봐." 속삭일 지언정 미쳤다며 대놓고 손가락 질 하는 사람은 없어졌다는 거에요.
아이유야 노래만 들으니까 무대에서 그녀가 뭘 하는지, 뮤비를 어떤 컨셉으로 찍는지 전혀 몰랐죠.
그런데, 오늘 듀게를 쭉 보니까 무척 흥미가 당기더라고요. 뭔가 막 신나기도 하고. 의외로 대단한데 로엔?
요즘은 길거리에서 쓰레기 찍어다 삽질해서 제출하는 학생은 절대 A 못 받을 거에요.
너무 흔하고, 구린 아이디어가 되어 버렸으니까. (이미 프로들은 수십 년 전에 그 짓을 해버리기도 했지만)
실제로 해서는 안 되는 짓과, 광대가 무대와 카메라 앞에서 해서는 안 되는 짓 쯤은 구별해 줘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현실에서 쓰레기 더미로부터 미를 찾겠다며 집안에 쓰레기를 잔뜩 끌어다 놓고 레고 놀이를 한다면 병원에 끌고 가야죠.
이를테면 뭐 그런 거.
이승연 씨가 왜정때 성노예 컨셉으로 사진 찍어놓고는 예술 운운한 공덕으로 뭘 하든 조심스럽기는 해요.
주저하게 되는 거죠. "이게 과연 정치적으로 옳은 것인가? 전혀 염두하지 않은 곳에서 상처받은 사람이 등장하지 않을까?"
그리고 주저하게 될 거에요.
제목이 별로 제 취향이 아니라 안 읽었었는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한번 읽어봐야 하는 건가 싶네요.
(그런데 찾아보니 그림책이 아니라 300페이지나 되는 글책이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