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래리 플린트' 그 외
언제였나 기억도 안나지만 십년도 전에 '래리 플린트'를 봤습니다.
아이유의 노래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제제를 소재로 삼았듯 영화의 허슬러 잡지에서는 산타할아버지를 소재로 삼았죠.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일까요?
자유를 억압하기 때문에 국정교과서를 반대하지만 자유는 어디까지인지 고민되는군요. 아이유와 상관없이 말이죠. 내가 안보면 그만인가? 내 아이를 안보게해도 될까?
이런 질문 하나 던져놓으면 자유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아차 하면서 주춤하는 사이 그들은 똘똘 뭉쳐 하나의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가는 걸까요.
저는 대안 역사교과서도 그다지 탐탁치 않습니다. 대안 교과서를 던져놓은 후의 상황이 너무나 뻔합니다. 그래도 지지해야하는 걸까요.
'인간에 대한 존중'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통일장 이론'을 나름 마련해가고 있는데 -_-;;;
초등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알아가면서 어떻게 이론을 실천해야할지 고민되네요.
내가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을 어디까지 '그래도 된다'고 받아들일지 말이죠.
언제부턴가 기사에 나오는 법원의 판결문(그래봤자 발췌한 거지만)을 주의깊게 읽고 있는데 항상 '~라고 되어있지만 ~라고 볼 수는 없다' 하면서 피고 유무죄를 선고한단 말이죠.
'~라고 볼 수 없다'는 건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어휴.. 역시 판사가 좋긴 좋구나 판사를 잘 만나야겠구나 싶더군요.
제가 쓴 글을 딛고 누군가 10000의 고지에 오르시길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로
두 의견이 충돌할 때 어느 하나가 다 옳고 다른 하나가 다 틀리기보다는 두 의견 모두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얘기하죠.
역사책은 공동체가 겪어온 일에 대한 누군가의 해석일 수밖에 없는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과거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해요.
나 자신의 과거에 대해, 내 부모에 대해,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과
가족공동체의 와해를 낳을 수도 있는 것처럼 국가공동체의 과거에 대한 해석도
국민의 자존감과 국가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내가 아무리 내 자신과 내 가족을 긍정적으로 해석해도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관점으로
나와 내 가족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나의 해석이 바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겠죠.
진실은 언제나 나의 해석과 다른 사람들의 해석, 이 모든 다양한 해석들이 서로 충돌하는 과정에서
어렴풋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노동자의 관점에서 쓴 역사책만 있는 것보다는 자본가의 관점에서 쓴 역사책도 있는 것이,
독립운동가의 관점에서 쓴 역사책만 있는 것보다는 친일파의 관점에서 쓴 역사책도 있는 것이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진실을 찾아갈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이 중 어느 한 가지 해석만 국가가 옳다고 인정하고 강요한다면 그건 좀 문제겠죠.
저라면 아이에게 그런 다양한 해석들을 접해보고 너 자신의 해석을 만들어 보라고,
그렇지만 너 자신의 해석 또한 너의 한계를 담고 있으니 다른 사람의 해석과 더불어 진실을 찾아보라고
얘기할 텐데, 아이가 없다는 게 함정 ^^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댓글을 올릴까 말까 고민스럽네요.)
역사에 대한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사실, 제가 요즘 서양사 관련 서적들 집중 탐독하면서 느낀 것이 바로 '사관의 중요성' 이었죠. 보통 유럽 학자들이 이런 자신의 사관에 충실한 역사책들을 쓰거든요. 이 양반들은 진짜 자신이 '우파'인지 '좌파'인지 서두에 확실하게 밝히고 그 관점대로 역사 서술을 끝까지 밀고 나가거든요. 그래서 어떨 땐 이 사람들이 정말 같은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거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정말 한 두번이 아니더군요. 저 개인적으로도 극도로 혼란을 느낀적도 많았고.
여튼 두 관점의 학자들의 책을 병행해서 읽지 않으면 어떤 사건이나 시대 현상에 대해 전체적인 이해가 거의 불가할 정도로 서술된 경우들이 많아서, 유럽 학자들의 이런 모습들이 제게는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고 하더니, 이 사람들 진짜 그렇게 하고 있네.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학생들이나 주변 분들에게 역사책들 본다면 다양한 관점으로 접하고, 그렇게 관심가는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스스로 판단하시라고 권하고 있답니다. 어린 학생들도 그렇더군요. 그네들도 성장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자라기 때문에 좌우의 사관으로 쓰여진 역사책들을 다양하게 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역사는 사료를 접했을 때 이게 제대로 된 자료인지 아니면 어디 시정잡배나 정치꾼들이 만든 선전자료인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게 중요한데, 그런 것도 이것저것 여러 관점들의 사서들을 접한 다음이나 가능한 것이라서요.
"진실은 언제나 나의 해석과 다른 사람들의 해석, 이 모든 다양한 해석들이 서로 충돌하는 과정에서 어렴풋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 참 공감됩니다.
저도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긴 댓글 좋아합니다. 저도 박근혜가 자기 아버지 찬양하는 글을 쓰는 것은 반대안합니다.
이 부분엔 분명 답이 있죠. 국가적으로건 문화적으로건 표현의 자유는 어떤 의미에서건 항상 통제되어 왔죠(또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앞으로도 그럴것입니다.
단지 대상이 그 사회 구성원들이 받아들일만한 것인가 아닌가의 차이일 뿐이죠.
제가 그래서 법을 좋아합니다. 고민스러운 것들을 정리해주는 면이 있죠. ^___^;;; 악법도 법이라고는 생각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