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의 절규, 탈출, 희망
1. 현재 프린스턴 대학에 재직중인 앵거스 디턴 교수는,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사람이 쓴 저서 "The Great Escape"는 한국경제신문 BP를 통해 번역출간되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한경BP는 원문 생략, 왜곡된 해설을 붙이며, 부/장/절 제목을 바꾸고, 원문에 없던 것을 집어넣기도 하고, 서문은 완전히 날리고 도입글은 2/3정도 날려버렸다는 게 한겨레의 보도입니다. 이에 대해 프린스턴 대학은 현재 발간된 책을 회수하고, 수정을 요구함으로써 사건이 일단락 되었다고 보여졌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경제신문은 11월 1일과 2일 지면을 내서 그래도 내가 옳다며 우겨대고 있군요. 한국에서 디턴을 소개할 때의 입장은 피케티의 반대입장인 디턴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는 식이였고, 기사 제목들도 그런 식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여러곳에서 설명을 했으니 제가 굳이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디턴박사의 공적에 대해서는 여기에.
11월 1일 한경사설을 소개합니다. 전문은 링크에 있어요.
세상이 더욱 나빠지는 것처럼 저주하려는 자들은 디턴의 탈출이론이 기분 나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사소한 시빗거리를 잡아 디턴 경제학 전부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 심기를 감히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디턴 경제학이 가난에 찌들었던, 그러나 탈출에 성공한 한국인들의 삶에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를 깊이 재인식할 따름이다.
이에 덧붙여 11월 2일 정규재기자는 칼럼을 통해 자기 입장을 밝힙니다. 전문은 링크에 있어요. 정기자의 칼럼은 너무 길고, 문장이 지저분해서 어디를 따와야할지 난감한지라, 링크만 소개합니다.
2. 여러분들은 탈출에 성공하셨나요? 다음은 한겨레 안수찬 기자가 기록한 빈곤청년의 일상입니다.
내가 만난 어느 스물두 살 청년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수억 원짜리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 정도로 부유층이었으나,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사업이 망하여 집을 통째로 날렸다. 남은 돈으로 맥주집을 차렸으나 카드 대란으로 망해버렸고, 지금은 구청이 제공하는 자활근로로 근근이 먹고 산다.
그런 아버지를 둔 스물두 살 청년은 대학 진학의 꿈을 접은 대신 고등학교 때 만난 여자 친구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결혼과 출산의 순서가 반대였다고 쓰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제 부부는 도너츠 매장에서 일하며 돈을 번다.
아침 7시, 젊은 엄마가 먼저 출근한다. 아침 9시, 젊은 아빠는 세 살과 두 살짜리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뒤 같은 매장으로 일 나간다. 오후 5시, 퇴근길에 젊은 엄마가 아이를 찾아온다. 저녁 11시, 젊은 아빠는 매장 문을 닫고 퇴근한다. 엄마와 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다. 아이가 보채어 잠을 설치게 되면 젊은 부부는 짜증을 섞어 싸움을 시작한다. 주말에도 매장은 문을 닫지 않고, 부부는 각자의 피곤을 어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일하여 두 사람은 월 200만원을 번다. 그래서 일체의 복지혜택에서 제외된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 20만 원을 주고 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다. 단칸방 앞에 화장실, 주방, 세탁실을 겸하는 1평의 공간이 있는데, 어차피 식구가 모여 밥 먹는 일은 희귀하다. 그나마 지금은 사정이 좋은 편이다. 둘째 아이를 낳고 일주일 만에 마땅한 거처도 없이 거리로 나앉았다. 찜질방에서 갓난아이를 포함한 네 식구가 한 달을 지냈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도너츠 매장에서 일하는 젊은 아빠는 맥도널드 매장에서 아이들의 아침을 해결하고 있었다. 으깬 감자를 먹으며 콧물 흘리는 두 아이를 두 팔에 안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잠을 좀 잤으면 좋겠어요.”
그가 더 나은 직업을 갖고, 더 나은 집에서 살려면, 교육을 더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부유층과 중산층의 자식은 대학원 진학, 공무원 시험, 대기업 취업 등을 위해 2~5년씩 틀어박혀 미래를 준비할 수 있지만, 이들에겐 당장 오늘이 문제다. 오늘의 문제를 누군가 해결해주지 않는 한, 스물두 살짜리 도너츠 매장 직원에게 검정고시, 방송통신대, 직업교육, 그리고 노동운동과 정치행동은 모두 말장난에 불과하다.
3. 월 200만원을 버는 젊은 부부는 분명 6.25직후의 젊은이들보다는 훨씬 나은 처지입니다. 김원일 작가가 지은 "마당깊은 집"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6.25 전쟁이 끝나고 직후에 대구에서 주인공 소년이 피난온 38따라지가 어떻게 일자리를 얻어내나를 기술합니다. 이 38따라지 청년은 보수를 받지 않고도 마당깊은 집의 허드렛일을 해주고, 마당을 정리합니다. 그러자 마님이 장작 패는 일을 맡겨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국가적인 의미에서 가난에서 탈출했다고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 적어도 우리는 이제 장작패는 일을얻으러 공짜로 장작정리를 해주러 다니진 않으니까요. 그러나 너희는 1953년의 스물두살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말이, 2015년 200만원 버는 젊은 부부에게, 과연 희망의 메시지인가요? 한국경제신문의 사설을 쓰는 분들은 가난이 보이지 않는가요?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투명 인간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빈곤 노동은 투명 노동이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가난이 없다 치고’ 사는 일에 길들여진 것이다. 이것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문제다.
빈자들이 도시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내가 만난 절대 다수의 빈곤 청년은 반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등에 살고 있었다. 연립주택이 들어선 도시 곳곳에 이들이 산다. 200만~500만원의 ‘목돈’이 있으면 반지하방을 구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월세만 내는 고시원에 살아야 한다. (이와 비교해 빈곤 노인은 시골에 주로 산다. 도시에 사는 경우는 쪽방, 찜질방, 고시원 등을 부유한다)
(중략)
각종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청년들 역시 도심 곳곳에서 우리와 함께 있긴 하다. 그들은 편의점, 대형마트, 커피전문점, 백화점, 주유소 등에서 일한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가난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의 표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
서비스업종에서 일하는 모든 청년 노동자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유니폼을 입는다. 유니폼은 빈곤을 탈색시킨다. 예부터 귀족은 하인들이 제 옷을 입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불쾌하기 때문이다. 가정부는 주인이 마련해준, 레이스가 달려 보기에 좋은 ‘메이드 드레스’를 입는다. 이제 빈곤 청년은 기업이 마련해준, 화려하여 금세 눈에 띠는 유니폼을 입는다.
우리 곁에서 일하는 빈곤 청년은 자신의 가난을 ‘화장’한다. 화장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을 곁에 두지 않는다. 아름다운 용모에 짙은 화장을 하고 단정하게 유니폼을 입은 백화점 화장품 매장 직원의 거의 전부는 시급 4천 원짜리 계약직이다.
가난이 사라진 시공간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이상 가난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70년대엔 빨간 벽돌로 지은 이층집의 골목마다 런닝셔츠 차림으로 연탄을 배달하거나 리어카 행상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입고 다니면 가난한 사람이었다. 뒤집어 말해, 가난은 중산층의 일상 곳곳에서 ‘가시화’됐다. 2000년대엔 실업자도 와이셔츠를 걸친다. 지금 한국에서 가난은 일상에 융해돼버렸다.
이제 가난은 좀체 추출되지 않는다. 우리는 가난이 보이지 않는 시공간에 익숙해져 버렸다.
간혹 가난을 마주쳐도 시선을 돌린다. 가난한 사람을 보지 않고, 그저 통계로 가난을 추상한다. 빈곤 청년은 통계만으로 입증되지 않고, 더구나 체감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들의 상당수가 가난하다면, 그 가난이 대부분 체감되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간단하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4. 작년에 한국에 갔는데, 택시 운전기사들 중에 나이 지긋하시고 말투가 품위있는 분들이 눈에 뜨이더군요. 영어도 할 줄 알고 중국어도 조금 할 줄 아는, 사연을 조금 물어보면 대기업 다니다 그만뒀다고 하시는 분들. 택배는 몹시 쌌고 백화점 직원들은 과도하게 친절하고 캐셔분들은 속도나 숙련도가 엄청나게 높더군요. 권고사직, 정리해고, 희망퇴직, 명퇴는 제 또래에게 현실이예요. 대략 만 44세 이상 5년 혹은 10년 근속자가 희망퇴직 대상자이니 말이예요. 디턴교수는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도 다시 빈곤층에 진입할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고 하죠.
여러분은 탈출에 성공하셨나요?
본문 글의 2번에서 인용한 안수찬 기자의 글입니다. 안수찬 기자는 이 기사를 민주당의 당내 정책연구소인 민주정책연구원 의뢰를 받아서 작성했다고 하더군요. 몇년 전 연구원 소식지에 실렸던 글을 올해 초쯤인가 인터넷 언론을 통해 다시 발표한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관심 있는 분들은 본문에서 언급된 안수찬 기자의 "그들과 통하는 길: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빈곤 청년의 실상" 추천드립니다. 최근 몇 년간 읽은 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네요. http://ppss.kr/archives/36592
이 책의 이야기는 미국의 사례이긴 합니다만, 무리하게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이민자들 얘기도 있고 많은걸 생각하게 해주더군요. 이런 방식으로 한국의 빈곤문제도 다루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같은 방식으로 쓰여진 한겨례 안수찬 기자의 글도 있네요. 이런 종류의 기획 기사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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