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역사화에 담긴 반전 -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 미건국 신화에 담긴 한 혁명가의 눈물과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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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ssage of the Delaware, painting by American Thomas Sully, 1819




 

대학 때 미국 독립전쟁사에 대한 책을 읽다가 이 작품에 대해 처음 알게됐습니다. 그런데, 그 책 쓰신 분이 이 작품에 대해 그닥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 더 정확히는 이 그림이 갖는 정치선전의 의미가 너무 과장됐다는 지적이었죠 - 저도 그냥 무심히 흘렸었죠. (게다가 책에서는 그림 얘기만 할 뿐, 도판도 실려있지 않아서) 그러다 서양미술사 수업 듣게 되면서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 그냥 반하게 되었네요.

 

어느 나라든 자기네 초대 국부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이 있겠지만, - 한국 제외 -  이 작품에 그려진 워싱턴 만큼 태산같이 강하고 바다처럼 고요하게 그려진 이미지도 없을듯 합니다. ( 마치 조각같습니다. 이건 신고전주의 미술에서 인물 묘사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죠)

 

1775년 4월, 최초의 무력 충돌이 메사추세츠 주의 렉싱턴과 콩코드 근처에서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 독립전쟁, 혹은 독립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식민지 전역에서 민병대가 소집되고 각 지역에서 영국군과 교전을 벌이면서 마침내 민병대 - 독립군은 영국의 지방정부 소재지인 보스턴을 포위했습니다. 포위는 영국군이 이듬해 배를 타고 철수하면서 막을 내렸죠.

그러나 1776년 여름부터 영국군의 본격적인 총공세가 시작되자 미국 독립군은 잇따른 군사작전에서 연패를 당하며 위기에 몰립니다. 12월, 마침내 결단을 내린 조지 워싱턴은 델라웨어 강을 가로질러 트렌턴에서 영국군에게 대공세를 가하면서 반격을 시작했죠.

 

미국 독립전쟁에서 분수령이 된 이 사건은 역사화를 그리는 화가들에게 좋은 소재가 되었습니다. 로이체도 그 중 하나였죠. 게다가 이렇게 거창한 승리와 위대한 건국으로 결말이 난 사건이니만큼 애국주의, 혹은 미국의 이상향과 미래를 찬양하는 국가주의 소재로서도 그만이었죠. (그런데, 작가 로이체가 미국인이 아니고 독일인이라는게 함정)

 

 


 

 워싱턴의 뒤에 국기를 들고 있는 젊은 장교는 제임스 먼로입니다. 미래의 미국 대통령이죠. ( 이 때가 1776년 12월인데, 아직 성조기가 없을 때인가요? 허긴, 정작 이 그림이 그려진 건 1851년 독일에서였으니까, 그럼 작가 로이체 선생이 실수를 한 걸까요? 그럴리가요. 이 국기가 이 작품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요. 이건 로이체가 일부러 그려넣은 겁니다.)

 

 


19세기의 대부분의 역사화들이 그렇듯 이 작품은 실제 사건의 디테일이 정확하게 그려진 부분도 있고 사실과 전혀 무관하게 그려진 부분도 있습니다. 물론 작가가 몰라서 실수로 그렇게 그린게 아니라, 모종의 의도를 갖고 그렸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1776년 12월, 2400명의 군인들이 펜실베니아 맥콘키스 페리에서 델라웨어 강 건너 한 지점으로 가는 해돋이 무렵의 새벽 3시 사이의 광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바로 크리스마스 날이었죠. 이 배를 탄 미국 독립군들은 뉴저지의 트렌트 타운에 주둔하고 있는 영국군 소속의 독일 용병 요새를 공격하러 가는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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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Washington Crossing the Delaware, 1851, 엠마누엘 로이첼, 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붉은 옷의 이 젊은이는 사실, 남자가 아니라 남장을 한 여성입니다. 독립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그녀는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장을 한 뒤 다른 남자 군인들 틈에 섞여서 노를 젓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큰 전투를 앞두고 자신도 다른 남자들처럼 그 역할을 다 하겠다고 나선 투지가 엿보이죠.

( 그런데, 이게 진짜 역사적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남북전쟁 때는 상당수의 여성들이 남장을 하고 전투에 나간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만, 독립전쟁 때도 그랬는지는...아마도 이 케릭터는 작가 로이체의 어떤 이상적 염원이 담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은 워낙 큰 그림이라 (높이가 4m에 가깝고 길이만 6미터 절반정도 됩니다.) 이렇게 세부적으로 부분도를 보면 전체적인 화면에서는 놓쳤던 부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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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개척민들. 실제로 이 그림과는 달리 워싱턴은 컴컴한 한 밤중에 강을 건넜고, 당시 병사들은 12월 한 겨울의 추위에도 신발도 없이 맨발로 배에 오른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죠, 옷이요? 이렇게 갖춰입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다들 12월 칼바람에 벌벌 떨면서 배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서 조심스럽게 강을 건넜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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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도를 보는 즐거움이 이런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물의 표정 하나 하나 눈빛 하나 하나 보면서 감상할 수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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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이날 진군을 지휘한 야전 사령관은 존 글로버 대령이었고 그의 마블헤더 연대가 배들의 노잡이를 맡았다고 합니다. ( 민병대원 대부분이 포경선원 출신의 메사추세츠의 노잡이들이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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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을 입은 흑인 병사도 보입니다.

 

순간 남북전쟁 때인가 했습니다. 북군은 남북전쟁 때 흑인들의 연대를 따로 만들어서 전투에 투입했었는데, 독립전쟁 때도 그랬을까요? 백인 주인을 도와서 함께 싸우는 흑인들은 이 때도 있었습니다만, 하지만 흑인 병사라니오? 그것도 제복을 입은 흑인 군인이 이 시절 실재했었을까요?

사실 북부는 독립 전에도 노예제도가 없는 주가 많았기 때문에, 이렇게 백인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험한 일을 같이 하러 다니는 흑인 노동자들이 상당수 있었죠. 그러나 제복을 입은 정식 흑인 병사는 이때는 아직 아니죠. 이 역시 작가 로이체의 어떤 이상이 담긴 인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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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로이체입니다. 그는 자신의 자화상을 이 역사화에 그려넣었습니다. 사실 이런 류의 집단 인물화를 그릴 때 마다 화가들이 슬쩍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는 건 워낙 흔한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사실 화가 자신이 이 그림에 들어간다는 건 아주 의미가 깊은 일이었습니다. 그는 무명의 개척민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상적 인물인 흑인병사와 여성군인과 함께 열심히 노를 젓고 있습니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페브라로와 슈베제는 이런 주변 인물의 소심한 태도가 주인공의 과장된 영웅적 태도와 크게 대조되며 작품의 구도에 안정감을 준다고 평했죠.

 

 


 

독립군 사령관 워싱턴과 미래의 미국 대통령 제임스 먼로( 먼로 선언의 그 분 맞습니다. 이 때는 아직 임관한지 얼마 안되는 신참 장교였죠. 독립전쟁 중 다수의 무훈을 세웠던 그는 건국 이후 정계에 입문한 뒤, 한 때 프랑스에 공사로 부임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프랑스는 한참 대혁명의 열기에 휩싸이고 있었는데 먼로 공사는 열렬한 혁명의 지지자이기도 했죠.)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잇따른 패배로 위기에 몰린 독립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위싱턴은 이 날 꽤나 위험하고 험한 도강작전을 했고, 이후에 있었던 트렌튼 전투, 벙커 힐 전투, 요크타운 포위 등등 일련의 군사작전에서 연승을 거둠으로써 미독립군의 전황을 유리하게 만들었죠.

 

이 작품에서 워싱턴과 먼로는 미래의 국가 지도자답게 영웅적인 모습으로 한겨울의 칼바람에 맞서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랬을까요? 물론 아니죠. 당시 도강 때 워싱턴은 담요로 전신을 둘둘 말고 배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워낙 추워서 다들 그러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그는 한 편으로 부하 장교들에게 잔소리 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었죠.

 

 " 배가 흔들리지 않게 좀 작작 움직여! 자네 그 뚱뚱한 덩치 때문에 배 뒤집어지겠어!"

 

그럼 먼로 소위는? 당연히 옆에 없었죠. 다른 배에 타고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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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이체는 실제 델라웨어 강이 아니라 라인 강을 모델로 이 그림의 배경을 완성했습니다. 실제 사건은 새벽녘이 아닌 캄캄한 한 밤중이었지만, 로이체는 새벽의 광채를 배경으로 넣고 싶어했고 덕분에 라인강의 새벽 운무가 이 작품에 담기게 되었죠. 밝은 새벽녘이라 한 겨울의 얼음장을 깨면서 배가 진군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졌습니다. 로이체는 모델들도 모두 독일에서 구했습니다. 실제 미국인처럼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독일 내에 들어온 미국인들을 모델로 섭외했는데, 주인공 워싱턴의 모델은 로이체의 동료 화가인 워싱턴 휘트리지가 맡았죠. (휘트리지는 미국인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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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테일적인 측면에서는 군복이 너무 새것 같다는 얘기부터 배 길이가 실제보다 작게 그려졌다는 등 많은 지적이 있었습니다만, 이 그림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예, 물론 미국에서요. 사실 기념비적인 사건들을 그리는 역사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세부적인 사건들이 다르게 그려지는게 뭐 그렇게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림의 의도만 충실히 전달하면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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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림이 정말 큽니다. 진정 대륙의 기상이 느껴지네요.

 

이 작품의 첫 전시는 1851년에 뉴욕시 스터이브슨트 미술관에서 있었습니다. 인기는 역시 폭발적. 금세기 가장 위대한 역사화라는, 뉴욕타임즈의 찬사와 함께 미국 전시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이후 이 작품을 모본으로 조각과 복제품들이 일반 가정을 비롯 교회와 공공건물에 전시됨으로써 한 독일의 젊은 화가는 신대륙에서 스타덤에 올랐죠. 이 작품을 소재로 하는 노래들도 지난 1960년대까지 만들어졌구요. 현재까지도 미국에서는 미국 독립을 기리는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이 그림을 꼽을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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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체는 이 그림을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에 전시할 계획이었습니다만, 화재로 그림 일부가 손상되는 바람에 전시를 거절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애초부터 이 그림에 품은 야심과 이상이 컸던 로이체는 굴하지 않고 이 그림을 처음부터 다시 그립니다. 그러니까 실은 이 그림이 같은 작품이 하나 더 있는 것입니다. 단순 복제품이 아니라 그 역시 작가가 혼신을 다해서 그린 진품이죠. 이 그림의 크기를 생각해 본다면, 정말 엄청난 일이었는데, 로이체는 혼자서 그 일을 해낸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도 한 점 그가 있는 독일 땅에도 같은 작품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죠.

( 불에 훼손된 원판을 수정해서 1868년에 그림을 판매했고 이후 독일 북부 브레멘시의 쿤스탈레 브레멘 미술관이 구입해서 소장합니다만, 이후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현재는 안타깝게 소실됐습니다. ) 독일에서도 이 작품은 정말 인기가 좋았었습니다. 제작 이후 10여년간 독일 전역에서 순회 전시를 했고 폴 기라르테트가 이 작품을 모본으로 조각상을 만든 이후 더 유명해졌죠.

 

 

그럼 이쯤해서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입니다.

 

 

왜 젊은 독일 화가가 미독립영웅의 집단 초상화 작업에 그렇게 혼신을 쏟아 부은 걸까?

 

너무나도 애국적이라서 무슨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렸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인물들도 정형적이기 짝이 없는 이런 그림에, 왜 미국인도 아닌 독일인이 그토록 필생의 작업으로 매달렸던 것인지 짐짓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더군요. 한 세기 전에 있었던 미국의 독립이 독일인인 그에게 대체 어떤 인상을 주어서? ( 물론 로이체는 부모를 따라 어린 시절 미국에 건너가서 잠시 필라델피아에 거주한 적은 있었습니다만, 25살에 본격적으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에는 고향 독일로 돌아옵니다. 미국에서는 그가 원하는 미술 교육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는 뒤셀도르프에 정착해서 그곳에서 일생을 보냅니다.)

 

이 사람이 제 2의 조국인 미국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보기엔 - 오늘날 미국인들은 다들 그렇게 철썩같이 믿고 있는 듯 합니다만 -  로이체의 그림에는 그냥 넘기기 힘든 어떤 코드들이 눈에 밟힙니다. 이를테면 제복을 입은 흑인 병사라던가 남장을 한 여성병사라든가...두 케릭터들 모두 실제는 80여년 전 미 건국의 주역이 되지도 못했었는데, 왜 하필 로이체는 이들 소수자들을 독립군의 일원으로 내세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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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은 이 작품이 제작된 1849년과 1851년의 바로 직전 독일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면 금방 풀리게 됩니다.

 

예, 바로 1848년 3월 혁명이 있었죠. 로이체의 조국 독일에서요.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을 필두로 시민혁명이 유럽 전역을 다시금 휩쓸고 지나갑니다. 이웃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이탈리아 까지 중부 유럽 전체가 구체제를 일소하기 위한 혁명의 열기에 휩싸였고 그 여파는 다시금 지난날의 대혁명을 보는 듯 했죠.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는 황궁이 점령되어 재상 메테르니히가 변복을 하고 영국까지 도망쳤고( 덕분에 빈체제 붕괴) 독일 역시 베를린 궁성을 시민군이 포위하자 독일의 왕 빌헬름도 외교적인 정무라고 핑게대며 메테르니히 처럼 영국으로 도망치듯 외유를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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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시민군의 기세는 대단했습니다. 수도와 궁성을 점령하고 구체제를 완전히 뒤집어 엎을 만반의 기세를 갖추고 있었죠. 물론 전방의 군대가 기차 타고 와서 몰아치기 전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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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시민군은 굴하지 않고 베를린 궁성 앞 한복판에 바리케이트를 쌓고 시가전을 벌이며 용감하게 저항했지만,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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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체는 자신이 적극 참여했던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한동안 절망과 우울에 빠졌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습니다.

그에게 한 가닥 위안이 되는 것은 바로 지나간 역사였는데, 그는 바다 건너 자신이 소년 시절을 보냈던 미국을 떠올렸고, 곧 그 나라가 벌였던 역사적인 혁명과 독립전쟁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스러웠던 승리도. 비록 100년전, 바다 건너 신천지의 일이었지만, 그는 그 때의 그 승리를 자신의 시대와 연관시키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처럼 다시 일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던 독일의 진보주의자들에게 어떤 희망의 길을 제시하려고 했죠. 로이체나 다른 혁명의 생존자들에겐 지나간 승리의 역사가 절실히 필요했었는데, 그에게 조지 워싱턴은 당장의 패배를 딛고 일어서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최초의 근대 시민 공화국 - 프랑스 역시 독일과 같은 혁명의 패배로 깊은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 당시 로이체를 비롯한 독일인들에겐 그 어떤 위로가 되지 못하고 있었죠 -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로이체에게 어떤 역사적인 성공의 모델이 될 만한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비록 그 나라가 인종주의적인 노예제도가 있고 가난한 남성과 여성은 투표권도 없는, 돈 있는 백인 남성 부르주아들만의 공화국이었지만, 그는 그런거 싹 무시하고 자신의 이상적 인물들을 독립전쟁에 참여시킴으로써 앞으로 미국이 나아갈 길을 - 그의 조국 독일이기도 하죠 -  선언하기도 했죠. 정말 용감하게도요.

 

 

물론 그런 세상은 로이체의 세상에서도 한 세기 뒤의 일이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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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시오 화가양반 없는 국기를 그리면 어떻게 하오

      • 성조기가 언제 제작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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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대에 그려진 그림들에서도 성조기가 보이는 것 같아서요. ( 도판에 정확한 연도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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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런 짤들도 있더군요 >_<;; 




      1. Washington vs 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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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eorge Washington, The Zombie Hunter




      2605973956448EC7239873




      King Wasington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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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델라웨어를 건너는 워싱턴 그림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구글에 패러디가 엄청 나더군요ㅋ


        그런데 이 워싱턴 패러디들도 정말 만만챦네요ㅋㅋㅋ

    •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린건가요

      • 정말 스필버그 영화가 생각날 정도로 전형적이죠. 그런데 저 시절 신고전주의 역사화들이 다 저렇더군요. 대부분이 정치선전물 들이라서요. 저야 뭐, 신고전주의 인물화법을 워낙 좋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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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이런 삽화들에 그려진 상황이 진짜 역사적 사실에 더 근접할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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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e54faeaccc551a86b431fbafcbed836.jpg


       요건 멋져서 가져와봤습니다. 요정왕 글로르핀델입니다. (톨킨의 실마릴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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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호빗 2에서도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워싱턴>을 연상케하는 장면들이 있더군요. 호빗과 난쟁이들이 에레보르로 가는 강을 배로 건너는 장면입니다.


       


      소린이 무슨 조각상같이 서 있죠. 주변의 난쟁이들은 열심히 노를 젓고 소린의 뒤에 빌보가 워싱턴 뒤의 먼로 소위처럼 서 있습니다.


      구도가 동일합니다. ( 검색했는데 마땅한 짤이 이것밖에 없어서 아쉽네요;; 그래도 영화 보신 분들은 제가 어느 장면을 말하는지 아실 수 있으실듯)


       


       


      Thorin-Oakenshield-image-thorin-oakenshi


       


      가끔 이렇게 영화나 CF에서 고전 미술작품들 응용한 장면들 나오면 어찌나 재밌고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뭐랄까,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 남들도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 어떤 무언의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것 같아요.

    • 미술에 대해서 문외한인데 덕분에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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