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1

얼마 전에 모처럼 풀장착을 하고 나갔다 왔더니 제 방 조명 화장대 거울에 비치는 제가 너무 예쁘더군요. 음, 오해를 줄이기 위해 말하자면 저는 꾸밀수록 예쁩니다. 왜 도화지 같이 생긴 사람 있잖아요. 어머 눈썹을 그리니 사람이 되었네? 쉐딩을 하니 얼굴선이 생기네? 오모나 아이라인을 장착하니 분위기 있어지는데 나이들어 보이네? 세상 역시 공짜가 없네? 뭐 그런... 그러니까 뭐랄까 자기결과물에 만족해하는 샵의 실장님으로서 기능하는 제 3의 자아가 화장성형을 한 뒤의 얼굴을 보면서 흐뭇해 하는 걸로 보시면 되겠습......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그런데 눈주름이 눈에 띄는 것이야 그렇다 치고(많이 웃으면서 살았으니 제 껍데기가 사람 껍데기라면 주름이 지겠지요) 그러니까 더 주름지기 전에 블링블링 눈화장을 더 빡세게 해야겠다는 쓸데없는 의지도 그렇다 치고, 셀카를 찍어보니 제가 본 거울 속의 예쁜 제가 온데간데 없는 겁니다. 으아니 폰카양반 이게 무슨 짓이오... 내 댁이 구린 줄은 알았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소?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_-) 순간인지 모르겠소? 모르겠지... 후 미물이 그렇지요 하고 넘어가주기에는 수십 장 찍어도 같은 결과.


두둥. 이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오고 맙니다.


그 길로 거실에서 티비 보시는 엄마마마께 달려가 '엄마! 아무리 셀카를 찍어도 내가 본 나만큼 예쁘지가 않아! 자기 눈엔 자기가 5배 예뻐보인다던데 그런 거야? 나 사실은 내가 보는 거의 5분의 1밖에 안 예쁜 거야?! 그럼 안 되는데?!!!' 하소연했더니 엄마마마께선 한 5분을 뒤집어지게 웃으셨습니다. 왜지......


2

동생느님이 일하는 사무실에 노총각이 많은데 노처녀 언니에겐 소개 안 시켜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왜죠! 제가 부끄럽나요! 물론 좀 부끄럽겠지만! 하고 땡깡을 부렸더니 동생느님 왈, 양쪽에 쌍욕을 먹을 순 없다고. 아니 제가 남자 좀 이상하게 소개시켜줬다고 어찌 동생느님께 쌍욕을... 하진 않겠지만 울고불고 하겠군요. 넵. 입 닥치고 있겠습니다요.


제가 좀 시무룩해지자 약간 안쓰러웠는지 동생느님이 말씀하시길, 일반 직장인과 저는 이미 너무 다른 궤를 가고 있어서 서로 이 생물은 뭐지 하면서 좋지 않은 안드로메다를 경험하리라 하셨습니다. 하긴, 젊지도 늙지도 않은 두 남녀가 한자리에 앉아 주선자에게 침맞은 느낌을 공유하는 경험을 하면서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네요. 다른 좋은 것도 많고 맛있는 것도 많습니다.


3

오늘 아침 카페인이 좀 잘 들어서 기분이 업됐습니다. 기분이 좋거나 우울하면 종종 '옛날옛날에...' 하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요, 제일 많은 버전은 '옛날옛날 먼 옛날에 다섯 아이가 우주 멀리 저 멀리로 사라졌다네. 세상에 외계인들 나쁜 놈들! 그깟 용사가 뭐라고! 걔들은 10년간 연고도 없이 외계에서 구르다가 와가지고 신분증도 없이 용사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연금도 안 나올텐데!' 뭐 이런...... 오늘은 이불을 개면서 '옛날옛날에 구들늘보가 살았어요. 구들늘보는 카페인빨로 힘을 얻었답니다! 그래서 도입부를 다 해치우고 말았어요! 어머나 세상에 이럴수가! 짱 멋져!' 이러면서 스스로를 독려했는데... 그런데 전 왜 그 에너지를 가지고 듀게에 잡담을 쓰고 있을까요? 왜 힘은 쓸데없는 일을 할 때만 퐁퐁 솟는 걸까요? 와이?!




    • 1. 기골이 튼튼해서 화장이 도움 안 되는 저는 부럽습니다 ㅎㅎ

      눈주름은 매력포인트라고 자기 합리와 중인데, 입가주름은ㅋㅋㅋㅋ

      진지하게 병원의 도움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아. 이런 고민하는 날이 실제로 오게 될 줄이야, 라며 엄마에게 징징거렸더니


      이 지지배야 넌 안 늙을 줄 알았냐?

      그리고 입가 주름은 너보다 엄마가 더 시급하니 엄마 먼저 해결해 주거라


      하셨습니다;; 이거 무리봐도 모계유전이라 어머니가 as해주셔야 하는데 말입니다. ㅡ.ㅡ
      • 오 그냥저냥님은 이목구비가 뚜렷하신가 보군요. 저는 작고 희미하게 생겨서 그런 분이 부러워요.


        저도 입가주름이 보이는 거 같아서 '엎드리지 않고 똑바로 자기'를 시도해봤는데 잠만 설치고 피부만 나빠지고... 요즘엔 요가 전에 아에이오우를 반복하면서 풀어주는 미미한 노력만 합니다 큽.


        으하하 as 저도 엄마마마께 눈썹 없는 건 모계유전이니 as를 해다오 외쳤더니 아이브로우 사라고 돈 주셨습니다. 엄마? 엄마? 세상엔 눈썹반영구라는 아름다운 게 있다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요 꼬셔도 소용없더라구요 허허허

    • 꾸밀수록 예뻐지신다니 저는 나무늘보가 머리에 꽃달고 예뻐지고 그러는 거 상상했습니다. 어쨌든 꾸밈의 투자가치가 있는 거잖습니까. 부럽슴다. 


      엄마님하고의 관계 저랑 좀 반대(?)네요. 제가 요즘 어디에 글을 쓰는데 그걸 저희 엄마님이 매주 애독하고 "음, 네가 나를 닮아 글을 잘쓰는구나 (혼자 끄덕)" 하셔서 저는 5분동안 (비)웃었습니다.

      • 사실 제 꾸밈은 호불호가 갈려서 걍 맨얼굴에 안경 쓰는 게 더 낫다고 하는 분도 계시... 그런데 평생 작은 생물로 살아왔는데 아이라인 뙇 펄 뙇 해주면 화려한 센언니 스탈이 되는 마법을 경험하니 벗어날 수가 없슴다! 막 아이젠 슈트를 입은 기분! 1호선 변태도 곁에 안 올 거 같은 그런 기분!


        으하하 저희 집과는 쿨과 개그캐가 바뀌셨군요. 저희 엄마마님도 속으로는 (비)웃으셨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엄마의 속은 영원히 모르는 걸로......

      • 글 쓰시는 데가 어디인지 좌표 좀 알려주세요~~ loving_rabbit님 글 팬인데 ^^
        • 신비주의;;;는 아니지만 부끄러워서 쪽지로 알려드렸어욧

    • ㅋㅋ 글이 엄청 시끄럽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실듯.

      • ㅋㅋㅋ 많이 티나나요? 이 업된 기분이 주말 동안 골칫거리 일을 해치우게 해주면 제일 즐거울텐데요......!

      • 앗! 같은 늘보가문인가요?!

        하하하하하핳 저도 새벽 댓바람부터 커피를 마셨더니 기분이 업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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