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적 술문화에 대한 바낭

베트남에서 황당한 저녁을 보내고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누워서 바이트를 낭비해봅니다.

저는 일 때문에 지금 베트남에 와 있는데, ODA사업이니까 저희가 돈을 주는 뭐 그런 상황입니다. 베트남의 공기업 같은 곳과 같이 일을 하게 됐는데, 정말 가관이더군요. 제가 사업의 특성상 늘 저개발국가나 개도국을 가게 되는데, 일반적으로는 참 다들 돈이 없으시거든요. 씀씀이도 당연히 한국과 비교할 바 아니고요.
그래서 뭘 얻어먹어본 적은 매우 드물거나와, 차비 몇 푼 같이 다니는 분들 식사비도 저희가 다 내는 편입니다.

그런데 대체 이 공기업은 독점기업이라 그런지 어쩐지 몰라도 돈을 엄청 잘 쓰더군요.

야외에서 각종 해산물을 잡아다 먹는 그런 식당에 데려가서는 랍스터에 조개에 한국 기준으로 봐도 절대 싸다고는 할 수 없는 온갖 메뉴를 다 시키고, 맥주를 쉬지 않고 리필(?) 합니다.
갈때는 명함을 던지고 유유히 가시더군요.(와우..)

여튼 오늘 그래서 술을 먹는데, 지난번에 와봐서 대충 분위기는 알고 있었거든요.
딱 우리나라 90년대 분위기에요.
계속 원샷하고, 분위기를 몰아서 미친듯이 먹입니다.
물론 제가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 분위기 망치지는 말자여서, 처음 몇 잔은 맞춰주자 했습니다만. 만난지 십오분만에 대략 천오백cc를 원샷했습니다. 다 마시기 전까지 잔을 들고 계시더군요.
원래도 술을 잘 못하고, 특히 속도전에 취약한데.. 끝없이 이어지는 원샷에 45분만에 화장실로 뛰어가 모든것을 게워냈습니다. 베트남 이름모르는 식당 화장실 바닥에 눕고싶다는 욕구를 참아내느라 힘들더군요..

그 이후에는 산해진미, 특히 제가 조아하는 두리안과 랍스터 오징어 등등이 눈앞에 쌓여가는걸 보면서도 차만 연신 들이켰죠. 음식물이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요..

여튼 초반에 죽을뻔(?)한 덕에 맨 정신으로 이 사람들이 노는걸 보고 있는데, 정말 한국이었으면 진작에 정색+ 무안주기 스킬 시전하고+ 신고하겠다 엄포 놓을 상황이 이어지더군요.

제 이름을 가지고 야한 농담을 계속 하질 않나, 애무와 관련된 제스춰를 취하면서 성희롱이 이어졌습니다.
아니 외국인이 그러니까 진짜 난감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물론 그 와중에도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계속 원샷을 이어갔고요.

그리고 2차로 노래방을 갔는데,
(전 노래하고 노는 건 좋아합니다)
허리에 손 올리기와 껴안기+ 뽀뽀하기를 시도하시더군요. ㅅㅂ 내가 무슨 노래방 도우미도 아니고 이것들이 미쳤나 별별생각이 다 드는데, 그냥 웃으면서 쳐내고 열심히 도망다녔습니다.
아니 일하자고 와서 도저히 정색 할 수가 없는거에요!!!!

지난번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일단 오늘은 지난번에 없었던 미친 노인네가 계속 스킨십과 야한 농담을 시전하신데다가,
같이 온 여자분(나이가 좀 있으신 중소 기업의 임원분?)이 정말.. 그 모든 스킨십을 다 받아주시고(러브샷에 술자리에서 뽀뽀도 하셨습니다) 야한 농담에 하하호호 꺄르르 웃어주시는 바람에 더 한 것 같습니다.
윗사람이 그러니, 작년에는 나름 흥겹게 술먹는데만 집중하던 어린 직원들도 마구마구 들이대더군요. (그만해 이 미친놈들아)

제가 싫어라 하는 걸 눈치 채시고(그리고 나름 싱글 여성이라?) 한국 중소기업에서
오신 여성 임원분(다 받아주신분..)과 남자분이 저를 엄청 많이 막아주셨는데(베트남 사람들이 다가오면 중간에 낚아채기?)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죄송스럽더군요 ㅠ 여튼 속으로 이 베트남 후진국 새끼들..하면서 엄청 욕하며 ㅠㅠ 겉으로는 웃으며 술자리를 마무리 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회사 다니면서, 성희롱적 발언과 행동에 매우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왔습니다.
가끔 정신못차리고 회의시간에 야한 농담하거나 하는 경우는 보았지만,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대놓고 진상짓 하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는데.. 간만에 정말 더럽고 좋은 구경 했습니다.

맨날 한국 사회 비판만 하다가, 오랜만에 아.. 그나마 한국이 좀 선진화(?)가 되긴 한건가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죠. 적어도 대놓고 하는 놈들은 없으니까요..(물론 드물지만 있음)

위에서 말씀드린 여성임원분은 토목쪽에서 오랫동안 일 하시면서, 그냥 남자들에 대한 기대가 마이너스고.. 모든 걸 다 놓으신 것 같았습니다.

뭔가 안타깝기도 하면서.. 참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오늘 사건(?)을 돌아보건대,
밥공기에 대한 담론이 이루어지는 듀게는 참 좋은 곳입니다. ㅠㅠ
오늘도 듀게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어갑니다.
    • 저런...마음고생이 심하셨겠어요. 한국의 음주문화가 선진적으로 느껴지실 정도였다니 안봐도 비디오였겠네요ㅡㅡ...
      • 이게 막상 닥치면 늘 어찌해야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한국에 더 더러운(?) 음주문화도 많지만 겪어본적은 없는지라 ㅠ
    • 친오빠가 토목쪽에 있는데 나라의 산이 다 없어지기전에 오빠가 쓰러질 것 같습니다.


      '여자 임원분..'을 비난하려다가도 그러면 안될 것 같아요. 살려고 했을 뿐인데요. 그냥 슬픕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절대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의 한계는 뭘까 생각해봅니다.

      • 저도.. 그렇습니다. 비난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에요-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싶다가도, 저는 그러지 않아도 월급받고 살지만.. 영업이 생존(?)에 직결되는 분들 앞에서는 그런말 못하겠더라고요.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는 것도 특권인게 정말 서글픕니다 ㅠ
    • 고고학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제 선배는 ( 물론 여자 선배 ) 저보고 언제나 노래하듯이 얘기하더군요. " 너는 여자들 많은데서 직장생활한거 진짜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

      뭐,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네요(-_ど)
      • 여자들 많은 곳은 확실히 분위기가 다른 것 같습니다.

        그치만 단순 비율보다 오너나 기업문화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한두마리 미꾸라지에게 권력이 주어지면, 여자가 많아도 허사더군요.
    • 벌써 몇 년 전에 한인회사에서 일할 때 얘긴데, 베트남 하이퐁의 한 업체 사장한테 접대를 받을 일이 있었어요. 한국사람 좋아할만 한 메뉴를 줄줄이 다 꿰고 있더군요. 랍스터회에 각종해물찜에... 그러고는 2차를 가자며 차를 한참 몰아간 곳은 후미진 해안도로변의 사창가....-_-;;; 전 되었노라며 손사래를 치곤 이까지 오는 수고를 하셨으니 사장님이 혹시 필요하시면 회포를 푸시라고 빈말을 던졌더니 절 이상한 놈 보듯 보면서 그냥 놔두고는 진짜 혼자서 룸으로 들어가더군요. 허어 참... 수십 분을 기다리는 동안 차를 따라주던 마마상과 영어로 떠듬떠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전에 우리 회사 사장님이랑 자주 왔었다고. 현지에 살다보면 현지인들의 성희롱 등에 대한 역치가 우리보다 한참 낮은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사람들이 더러운 문화를 수출하는 면도 적잖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꽃보다 남자> 이후 한인관광의 러시가 이어지고 있는 라오스의 경우 몇 년 사이에 한인상대의 성매매업소(일반인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가 수십 군데 새로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태국 이런데야 원래 발달해 있었다쳐도, 다른 동남아들 가보면 한국 영향을 안받았다고 할 수 없더군요. 유흥업소들이 대부분 한국식이소 고객들도 한국사람들이 많고요.

        그러니 한국인들 오면 으레 좋아하려니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 ODA 프로젝트를 수주받아 일하는 업체에 근무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정부 기관에 근무하시는 건가요. 알고 계시겠지만 ODA 프로젝트 규모가 훨씬 큰 일본의 경우 뇌물 공여도 문제가 되어 일부 국가에 대해선 뇌물 받은 거 토해낼 때까지 ODA 중단한다고 발표하고 그랬죠. 글쓰신 분에 대해 함부로 행동하는 것도 대단히 큰 문제이지만 과도한 접대 (그쪽에서 접대하건 한국쪽에서 접대하건)도 문제인 것 같고, 가능하다면 ODA 담당 기관 (코이카/ 외교부죠?)에 제보하는 것도 방법인 것 같은데... 상대방이 클라이언트라고 해도 용서되는 건 아니지만 세금써서 해당국가에 좋은 일 하자는 ODA 끼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 네..저도 막상 이쪽일을 하다보니 이상과 현실의 갭에 괴롭더라고요. ODA사업은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순진한 생각이긴 했죠.

        사실 현물을 받는건 아니고, 만나면 밥먹는 정도라 애매하긴 합니다.

        인당 2-3만원 수준이고요.

        그리고 각 정부부처마다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ODA사업의 경우 외교부나 코이카의 관리를 따로 받는 게 아니라 제보할 상급 기관이 없네요..

        과연 외교부가 그런 제보를 유의미하게 받아들일지도 의문입니다. 하급 기관한테 밥 얻어먹고 선물 받는게(물론 몰래지만) 당연한 사람들이니까요.

        저는 그래본 적 없지만 오랜기간 이런 사업 하신 분들 중에 진짜 공무원들 기름칠 하는데 돈 안 아끼시고 가라 영수증 만드는거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을 꽤 봤습니다. 이런거 못하게 하려고 규정 만들어봤자 귀신같이 피해서 세금으로 자기 잇속 챙기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제가 이바닥을 떠야되나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갑자기 얘기하다가 흥분했는데 ㅠㅠ

        여튼 이래저래 저도 참 난감+애매합니다. 베트남 세금으로 제가 배부른 꼴 됐네요 ㅠ 아님 사업비가 그런쪽으로 돌고 도는 거겠죠..
    • 어떻게 접대를 하는 쪽에서 접대를 받는 쪽에 그렇게 무례할 수가 있죠? 언뜻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네요. 

      • 무례라고 생각하면 그러지 않았겠죠 ㅠ

        세상엔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 저도 남자많은 곳에서 일하면서 고생많이했지만 뽀뽀는 정말이지 욕이 나오는군요...십년가까이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 어떻게했어야 할지 답이 안나오기때문에 감히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ㅜ아아 부글부글ㅠㅜ
      • 예전에 페미니즘 수업 들었을때 뭔가 교수님이 지혜로운 대처방안을 알려주셨던 것 같은데, 성희롱이 발생하는 상황이 워낙 다양한지라.. 기억도 가물하고 응용이 잘 안된다는게 괴롭습니다. 매뉴얼 있었으면 좋겠어요..ㅠ
    • 아직 우리나라의 모습이기도 해요 일부 남성 위주의 직장에선 낯설지 않은 상황입니다
      • 그렇죠.. 그 여성임원분도 한국에서 그걸 너무 많이 겪어서 당연시하시는 것 같았습니다...다들 술을 빌미로 그럴수도 있다, 실수였다, 재밌자고 한건데 왜 그러냐며 꼴사납게 굴고 있죠..
    • 백퍼 베트남에 먼저 들어갔었던 한국인들에게 물든걸로 보임

      중국만해도 저렇게 더럽게 놀진 않던데...게다가 사업 파트너에게 찝적댄다니...;
      • ㅠ_ㅠ 이번 출장으로 베트남인들의 한국 술문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킨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떠나는 날까지도 매끼마다 원샷과 토악질로 마무리 했네요;
    • 본문도 본문이지만 글쓰신분 닉네임이 눈에 확 들어오는데 제 뇌가 썩은건가요 아니면 제가 모르는 뭔가 의미가 있는 단어인가요;;;

      • 아.. 사전 찾아보고 놀랐네요..

        제가 영어가 짧아서;; 그런 의미로 쓴건 아니었고 내키는대로.. 죄송합니다
        • 저에게 죄송해 하실 필요는 전혀 없으시구요;; 그래도 닉네임은 바꾸시는게 어떠실런지요
          • ㅎㅎ 바꿨습니다. ㅠ_ㅠ Dick이라는 귀여운 단어에 그런 뜻이 있었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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