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9호선에서 있었던 일.


9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출퇴근 러시 때의 9호선 급행이 왜 '지옥철'로 불리는지를, 출근 첫날부터 톡톡히 깨달았었지요.

요즈음은 그래도 출근 때라도 사람답게 이동하고 싶어 약간 더 걸리는 시간을 감수하고 일반열차를 타기도 합니다만,

퇴근 때에는 거의 매번,함께 일하는 분과 같이 급행에 오릅니다.

집에 빨리 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호흡곤란의 상태를 견딥니다. 이제는 제 몸을 테트리스의 알맹이 한 조각으로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그 좁디좁은 공간이나마 몸을 효율적으로 오그릴 수 있을까, 알아채는 데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오늘 퇴근 때.

함께 타는 분들이 오늘은 유달리 거의 모두, 비슷한 연령대의 중년 남자분들이었습니다.

남자들이 한번에 한 장소를 향해 떼로(?)힘을 쓰니, 그 박력이 남다르더군요.

내 몸이 내 몸 아닌 상태로, '찌브'가 되어 어느 순간 전철에 쑥 밀어넣어졌습니다.

고탄력 팬티스타킹 속의 다리가 된 기분으로, 함께 일하는 사수님과 겨우 맞닿아 설 수 있었습니다.


노량진 역 즈음에서, 예의 사람들이 인정사정 봐 주지 않는 무지막지함으로 내리고,

또 역시 그같은 힘으로 사람들이 탑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원래 친근한 동행이 있거나 할 때 감탄사 같은 혼잣말을 종종 합니다. (혼자 있을 때 혼잣말 하면 좀 그렇겠죠 )

원래는 입 속으로 조용하게 이 말을 중얼거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내장 속에서 연동 운동을 겪는 음식물과 같이 다방향에서 들어오는 강한 압박을 견디지 못한 저는  

그 순간 그만 육성으로 외치고 말았습니다.



"사람 살려...!"




곧이어 주변 분들-아저씨들의 킥킥거리는 웃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더군요.

문자 그대로 쪽팔려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흘긋흘긋 제 쪽을 보며, 또는 혼자서 웃음을 삼키듯 하는 분들의 표정을 보며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더군요.



그 때에는 창피했지만, 집에 가서 그 상황을 생각하니 좀 웃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그 순간 진심이었는데...


    • 9호선..ㅜㅜ끔찍하죠. 힘내세유
      • 감사합니다 크흑 ㅠㅠ 내일도 또...

    • ㅋㅋㅋㅋㅋㅋ사람살려란 말이 절로 나오죠 이해합니다...
      • 크흑 이해해주셔서 반가워요. 딴말이지만 익명님 이야기들 잘 읽고 있습니다. 때론 제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쓰신 글에 공감도 하고요.

        • 고맙습니다~공감해주신다니 기뻐요 :)
    • 2호선하고 9호선하고 어디가 더 심한가요? 출퇴근 9호선은 경험해 본 적이 없어요.
      • 얼마 전 2호선도 출퇴근길 탈 일이 있었는데, 9호선 급행이 압도적이더군요. 일단 차 칸이 4량밖에 안된다는 점에서 너무 압도적인지라...

    • 1호선은 사람도 많이 타지만 고장도 잦은 듯하고, 열차문에 옷이나 가방이 끼는지 한참씩 서있기도 해서 괴롭습니다.

      며칠전 비오는 날은 새벽부터 사람이 몰리더군요. 전 숨 쉬기가 힘들어서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눈을 감고 졸더라고요 저도 불쌍하고 주위 사람들도 불쌍하고..

      우리는 왜 새벽 댓바람부터 만원 지하철 안에서 이 고생인지. ㅠ.ㅠ
    • 여기 어디다 댓글 단 거 같은 기분이긴 한데...


      20년도 더 된 일인데요, 출근길 버스에서 요행히 자리를 겟!한 제 옆에 한 아가씨가 서 있었어요. 지옥의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히 들어찬 사람들 덕분에 아가씨는 제가 앉은 위쪽 공간으로 구부정하게 서 있다가, 커브길에서 그만 휘청~하더니 반 바퀴를 팽그르르 돌아 제 무릎에 사뿐히 착지하지 않겠어요. 일어나고 싶어도 어느새 밀려든 사람들 덕분에 엉덩이만 들썩들썩... 저는 일으켜주고 싶어도 어딜 잡아야될지 모르겠어서 그냥 항복자세로 눈물+땀만 흘리고 있는데, 다급해진 아가씨가 사과를 하려다 육성으로 터져 나온 한 마디는...




      "어머, 쪽팔립니다"




      네... 저도 쪽팔렸어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식곤증이 싹 가시게 하는 일화네요. 이 아가씨와 이루어졌으면 한 편의 영화일텐에요8*.*

    • 닥터 스쿠르란 만화책에서 세이코가 홋카이도 살다가 도쿄에 면접 보러 가서는 지옥철에 질려 전 못합니다ㅠ 하고 돌아왔단 얘기 생각나네요. 전 부산이라 지하철은 알아도 지옥철은 잘 모르고 사는데, 서울 놀러갔다가 세이코 심정이 됐어요. 지하철 문이 열리고 전 아니 이걸 어떻게 탐??? 하고 흠칫흠칫 뒤로 물러서는데 현지인들은 꾸역꾸역 잘 들어가시더라고요.
    • 반가운 마음으로 글 잘 읽었어요. 저도 9호선 급행 타고 출퇴근하며 매일 겪는 일인지라. 가끔 저도 사람살리라고 소리지르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럼 뭔가 프로(?)답지 못한 것 같아서요 ...이따금 격하게 고통 호소하는 분들 보면 동조해주기보다 '9호선 처음 타보나...' 뭐 대체로 이런 반응들이잖아요 ㅎ...개통 때부터 만 6년 이상 그 노선 타고 다닌 것이 그렇지 않아도 딱히 좋지 않은 제 성격이 더 나빠지는 데에 분명 일조했을 듯요.

    • 20대 시절 잠깐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던 때 생각나네요. 정말 다들...어떻게 그런 전철 타시고도 잘만 다니시던지...저는 그냥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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