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인형 말과 기마대 - 연극 워호스

연극 <워호스> 얘깁니다. 전쟁 말. 그러니까 군마들이요. 기마대가 타는 말 이야기입니다.
저는 사실 몇 년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터라 이 작품이 연극으로 나온 걸 보고 (정확히는 메가박스에 영화 보러 갔다가 상영관에 걸려있는 걸 봤습니다.) 이런...말도 안돼는....;; 이라고 생각했었더랬습니다. 아니 이걸 어케 연극으로 만든다고? 말이 주인공인 - 그것도 보통 말도 아니고 대따 큰 군마인데! - 게다가 이건 전쟁영화이기도 하단 말이죠. 무려 1차 세계대전이 배경인. ( 그러니까 도대체 상상이 안되더란 말이죠. 연극 무대 위에서 말이 뛰어다닌다니, 그리고 기관총이나 탱크가 돌아다니는 전장을 대체 어떻게 표현하겠다는 얘긴지?)
그래서 연극 보는 내내 기가 막히기도 하고ㅋ 여튼 다 큰 어른들이 장난감 말 위에서 무슨 병정놀이 하는 것도 아니고...솔직히 처음 연극 볼 때는 이거 감정을 어떻게 이입해야 할까 여간 고민이 되던게 아니더군요. 특히 저 칼 빼들고 함성 지를 때! 와우! .....물론 어느샌가 그런 감정들은 싹 사라져 버리고 작품에 그냥 몰입이 됐지만 말입니다. ( 확실히 음향효과가 대단하긴 했습니다. 전장의 풍경은 기관총 소리와 대포 소리만으로도 충분하더군요 )

그런데, 알고 보니 영화보다도 연극이 먼저인 작품이었습니다. (사실은 원작 소설이 있습니다만)
영국의 동화작가 마이클 모퍼고Michael Morpugo, (1982년작)의 동명 소설 - 동화라고 해야 하나? - 이 출간된 뒤 이를 바탕으로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이 연극을 관람한 스필버그 감독이 감명을 받은 나머지 영화를 만들었다는(2011년) 겁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영화도 개봉 당시 시큰둥하게 봤던 터라 연극 포스터를 보는 내내 별 감흥이 없더군요. 그래서 그 때는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러다 올해 제가 사는 지역의 예술의 전당에서 이 작품을 상영한다고 광고가 떴습니다. 11월 11일이었죠. 물론 진짜 배우들이 무대에서 연기하는 걸 보는 건 아닙니다. 영국의 런던에서 상연한 것을 영상으로 찍었고 그걸 영화처럼 보는 겁니다. 저는 이런 방식이 정말 좋더군요! 지난 번에 <리어왕> 보면서 정말 감탄과 환호성을 연발했습니다. 연극의 현장성과 영화의 박력이 합쳐졌다고나 할까...진짜 근사합니다. 그래서 이번엔 주저없이 워호스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대체 말과 전쟁 장면은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하기도 했구요.


전투 장면을 어떻게 묘사할지 정말 궁금했었는데, 바로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작은 소품 몇 개로 여기가 어딘지, 때는 어느 때고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 그냥 암시만 주는거죠.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냥 다 눈 앞에 상상이 되더군요! 1차 대전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참호전도 정말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확실히 음향효과 덕이 크긴 했습니다. 멀리서 들리는 포성으로만도 여기가 어딘지 상상이 마구마구 되니 말이죠. 연극이 원래 관객의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학교 다닐 때 배우긴 했지만 이렇게 실감나게 느껴지기는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연출자의 인터뷰에도 막대기 몇 개만 보고도 관객이 여기가 마시장이라고 여기게끔 연출했다고 했는데, 정말 이더군요. 지팡이 몇 개가 순식간에 울타리로 변하던...)

왜 하필 연극 상연일이 11월 11일인지는 상영관에서 보면서 알게됐습니다. 바로 11월 11일은 1차 대전 종전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4년은 1차 대전 발발 100주년이 되는 해였고. 그래서 영국 본토에서는 지난해 11월 11일에 맞춰서 이 작품을 특별상연했다고 합니다. 더 이색적이었던 건 바로 같은 날에 독일에서도 이 연극이 동시 상연됐다는 겁니다. 독일어로 상연하는 독일 배우들의 연극이었죠.

말들이 진짜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입니다. 어느 분 말씀대로 말뼈만 움직이는것 같아 섬칫할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아마도 일부러 인형말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디자인한것 같습니다. ( 상상해 봤는데, 이렇게 말 뼈와 근육만으로 표현한 말이 더 현실감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차피 인형말이란거 관객들도 다 알지 않습니까...그런데 거기다 어설프게 털가죽 씌운 말이 돌아다니면 진짜 웃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그냥 건조하게 가는 거죠)
그리고 말의 움직임에 대해 얘기하자면, 대체 얼마나 연습하면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 건지...인형 조종하시는 분들이 마치 말에 빙의된것 같습니다. (영상 보시면 아시겠지만 인형사들이 마치 말에게 매달려 끌려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전혀 그럴리 없는데 말이죠) 어느 기자의 지적대로 저 사람들 문화에 북청사자놀음같은 인형극 전통이라도 있는건지 진심 궁금해졌습니다. ( 인형극 극단은 남아공에서 왔더군요)

다시 독일 연극 얘기로 돌아와서...그러니까, 영국 군복을 입은 독일 배우들이 독일어로 독일욕을 합니다....전쟁 일으켰다고 원망하는 거죠. 그리고 독일군을 무찔러 버리자! 하면서 함성도 외칩니다...-_-;; 원작자 마이클 모퍼고의 표현대로 같은 시간대에 동시에, 런던과 베를린에서 이 연극이 무대에 올라가는데요. 상상해 보니 좀 민망하긴 합니다만, 사실 이런 시도가 원작자의 말대로 굉장히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는데 무척 공감이 되더군요. - 1차 대전 발발 100주년 해에, 종전일인 11월 11일에 영어와 독일어로 같은 작품을 동시에 상연한다는 것 - 1차 대전의 주역들 중의 하나인 영국과 독일이 서로 화해를 하고 평화를 다짐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벤트를 마련했다는게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국내 개봉은 2015년이었습니다.)

배우들 중에 흑인 배우가 보이는군요. 제가 본 버전에는 없었지만 다른 버전에 출연했었나 봅니다. 원작상 시대를 봐도 1차 대전에 영국군 흑인 기병대 장교는 실존하지 않습니다만, 현재 영국 연극계는 인종간의 화합을 추진하는 차원에서 유색인 배우들을 주요 배역에 캐스팅 하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 빌리 엘리어트 같은 경우 주인공 빌리 역에 백인 소년 외에도 흑인 소년과 황인 소년 캐스팅을 했다구요. 아시아인 소년이 백인 아버지에게 대디,대디 하면서 공연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재밌더군요)

원작자 마이클 모퍼고입니다. 연극 상영 중 막간에 잠시 그가 등장하는 타임이 있습니다. 모퍼고는 자신이 처음 작품을 구상하던 계기와 어떤 주제의식으로 글을 썼는지 이런 저런 에피소드들을 들려주었는데, 정말 재밌더군요. " 말이 주인공인 유명한 작품이 이미 있는터라 아류작으로 보일까 고민이 되긴했다." ( 블랙뷰티 얘기) "... 사람이 아닌 말이 주인공인 이유는, 전쟁을 바라보는 공정한 관찰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난 영국인이지만 1차 대전에 대한 책임 소재에 한해서는 영국이든 독일이든 똑같은 책임이 있다고 봤다. 그 점을 공정하게 보여 줄 관찰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덧붙이길, " 말과 소년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에 처음부터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출판사에서도 처음엔 난색을 표했다....어찌어찌 어렵게 출간하긴 했지만 초반엔 영 반응이 좋지 않았다...난 적잖이 실망했지만 그래도 기다렸다. 어디엔가는 분명 '말과 소년의 사랑이야기'에 관심을 가져 줄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하마터면 극장에서 소리 지를뻔 했습니다. 이거 완전 제 얘기거든요! 몇 해전에 영화 <워호스>가 국내 개봉했을 때 저는 딱 저런 마음으로 극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마침 새로 입사한 회사의 연수원 입소 날짜를 받아논 터라 무리해서 시간을 내야 했는데, 제게 그 무리를 감행하도록 한 게 바로 저 '소년과 말의 사랑이야기'였죠. 인간과 동물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는 흔한 소재긴 합니다만 이 경우는 정말 독특했거든요. 주인공 소년 앨버트는 자신이 아끼는 말 조이가 전쟁에 차출되자 자신도 함께 전장으로 달려갑니다. 바로 사랑하는 말 조이를 구하려고요. 말을 찾으러 전쟁터에 간다? 그것도 자기 목숨을 걸고? 어머, 이건 꼭 봐야돼!

앨버트에게는 말 조이가 그의 전부입니다. 입대할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았는데, 이 소년은 나이를 속이고 그의 친구 말을 구하기 위해 함께 전쟁터를 따라 나섭니다. 누구는 조국을 위해, 누구는 신을 위해 전쟁에 나간다고 하는데 이 소년은 사랑하는 말을 위해 전쟁에 나갑니다.

영화 볼 때도 이해가 안 가긴 했습니다만, 연극 볼 때는 더 했죠. 대체 이 기마대 말입니다. 정말 딱 보기에도 용맹한 장병들이란거 알겠습니다만, 지금은 1차 대전 아닙니까? 무슨 중세 시대나 나폴레옹 전쟁 때도 아니고...1차 대전에 기마병이라니오? 저 뒤에서 대포하고...그러니까 기관총 소리가 들리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적군이 기관총을 걸로 기다리고 있는데, 그 앞을 말을 타고 달려간단 말입니까? 그것도 칼을 들고?
이 다음에 펼쳐질 참상은...영화에서 익히 봤던 터라 연극은 어떻게 표현할지 진심 궁금했습니다...역시 명불허전이더군요. 대박!

전장에서 말 조이가 처음으로 탱크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거대한 굉음과 함께 무대 가득 나타나 굴러가는 거대한 레일을 바라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더군요. 정말 탱크를 이렇게 표현하다니...무슨 초현실주의 미술작품 보는 것 같았습니다.
_Dogan+Mehmet+(Musician)+_2013.jpg)
이 연극은 음악도 아주 휼륭합니다. 노래도 아주 애잔하고 구슬픈 민요풍으로 흐르는데, 순간 이 연극이 뮤지컬인가 하고 생각될 정도로 노래의 존재감이 크더군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민초들의 애환이 정말 심금을 울립니다.





표현력에 대한 연극의 상상력이 대체 어디까지인가 실감하게 하는 장면들이 여럿 있는데, 이 장면도 그 중 하나입니다. 마을을 비롯한 바다 위 그리고 전쟁터의 배경을 어떻게 보여줄까 했는데, 어찌보면 저렇게 간단한 아이디어로 해결하더군요. 무대 상단의 저 마을 배경은 스케치 북을 찢은 뒤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영사기로 무대에 비춘 것입니다. 세상에, 전투기들이 저 멀리서 공중전 하는 것도 그렇게 표현하더군요. 역시 스케치 북을 길게 찢어서 표현한 하늘 위에 모형 비행기로 그림자 놀이 하듯이 영사기를 비추는데 그럴듯한 음향효과까지 곁들여져서 진짜 무시무시하더군요...기관총과 대공포가 전투기들 사이에서 진짜 작렬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란 말입니다! 물론 객석에서는 감탄과 한호성 그리고 박수가 쏟아졌죠. ( 사실 무대에 진짜 그 배우들이 있는건 아닌데, 스크린에 비친 것에 불과할 뿐이지만 저도 함께 열씨미 박수를 쳤습니다.)

이렇게 인형 조종하는 배우들이 말 인형옆에 꼭 붙어있습니다. 말들의 움직임이 얼마나 정밀하냐면 귀를 연신 쫑긋거리면서 감정표현 하는 것까지 연기할 정도니까요. (말들이 귀 쫑긋거릴때 마다 객석에서 작은 환호가 들리곤 했습니다.) 사실 연극 보는 내내 엄연히 눈 앞에 있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인 저 인형 조종하는 사람들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마치 춤을 추듯이 움직이는 우아한 몸동작들도요.

갈색 말 조이와 친구 탑손입니다. 농가에서 자란 조이와 달리 탑손은 어려서부터 군마로 길러졌는데, 탑손의 주인이었던 스튜어트 대위는 자기의 기병연대에서 가장 훌륭한 말이라며 자랑스워 마지 않았죠. 이 거대한 두 마리 말이 서로 우아하게 어울리는 모습은 진짜 장관입니다.
( 그런데 움직이는 거 볼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정지화면으로 보니 말들이 좀 섬뜩하긴 합니다...무슨 유령말들 같...)

치열한 전투 와중에 미아가 된 두 마리 말. 이들을 데리고 다니던 군인들이 모두 죽고 이들만 남은거죠. 독일군과 영국군의 전선 사이를 끝없이 헤메고 다니는 말들의 처연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독일군의 독가스 공격으로 실명의 위기에 처한 앨버트...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랑하는 친구를 드디어 만났는데, 앨버트는 조이를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진짜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이 광경을 영화에서 볼 때도 가슴 한 구석 뭉클했었는데, 원작 읽다가 실상을 알고는 진짜 뒤집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게 영국식 유머라는 것인지...-_-;; 궁금하신 분들은 원작 소설 읽어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저는 진짜 푸하하하하...했던 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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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농사 일이 쉽지 않은데, 동물이라고 쉬울리가 없겠죠. 말들이 쟁기를 끌거나 마차를 끌거나 하는 것도 다 혹독한 훈련이 필요한 일이란 걸 이 작품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더 큰 일은 이런 말들을 군마로 차출해서 훈련시키는 일이죠. ( 그 와중에 일어나는 동물학대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제는 자동차가 있어서 말들이 이런 노역에서 해방됐으니 말입니다. 이제는 승마일만 하면 돼죠.

감초같이 등장해서 관객들에게 빅웃음을 주었던 앨버트네 거위. 날갯짓 하면서 꽥꽥거리는데 여간 귀여운게 아닙니다. 제가 자주 다니는 산책 다니는 공원에 거위들이 몇 마리 있는데, 그애들과 영락없이 똑같더군요.

기회되시면 한번들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연극이라는 매체가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와 볼거리가 있다는게 놀랍더군요.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다른 표현 방식들이 마치 전위예술처럼 펼쳐집니다.
사진만 보고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했는데, 옆의 사람들이 전부 말을 움직이는 사람들이었군요!
연극을 촬영해서 영화 형태로 보는 게 재미있을 수 있다면, 영화 자체를 연극 같은 세트에서
찍어도 재밌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돈이 많이 들어간 영화보다는 상상력이 많이 들어간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

영화 <도그빌>입니다. 니콜 키드먼이 주연이었죠.

영화가 이렇게 진행이 됩니다.

연극을 단순히 찍은게 아니라 아예 연극 형식으로 찍은 영화인데...스토리가 좀 쎕니다;; 거의 공포영화 급...-_-;;
핸드스프링 퍼펫컴퍼니의 인형들은 정말 멋지죠! 저도 워호스는 국립극장 통해서 영상으로 보고, 한 여름밤의 꿈은 실연으로 봤는데 그저 감탄만. :)
인형극 회사 이름이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국립극장 덕에 좋은 연극들 보게되서 기쁩니다. 내년 2월에 상연할 연극 <코리올라누스>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3^) 톰 히들스턴이 얼마나 멋지게 나올지 ㅎㅎ
내년 2월 국립극장 상영 예정작 <코리올라누스> 입니다. 이미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