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일본)
1.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애초에 여행을 왜 가는지 이해가 안되는 게, 지구에서 내가 제일 잘나가는 곳은 이곳이잖아요. 그야 뭐 엄청 잘나가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공을 들여서 나만 보면 먼저 인사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만들어 놨어요. 이 서울을요. 다른 곳에 가 봤자 여행객 A가 될 뿐인데 공들여 놓은 곳을 굳이 떠나 낯선사람이 될 필요가 없죠.
2.유일하게 여행을 간다면 일본이라고 정해 놨었어요. 어떤 사람은 여행에서 일상이 아닌 것을 찾을 지 모르지만 저는 여행을 간다면 그곳에서 일상을 보내고 싶거든요. 여행지의 산책로, 여행지의 맛있고 다양한 식사, 여행지의 밤풍경 뭐 그런 것들요.
그런 면에서 일본은 최고였어요. 입이 짧은 저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돈까스나 튀김이나 햄버거 고기 함박스테이크 도시락 이런 것들이 좀더 높은 수준으로 팔리고 있잖아요. 프랜차이즈가 아닌 맛집도 많고 거리도 더 깔끔하고 여관은 더 고즈넉하고...그리고 한국처럼 서울에 모든걸 몰빵한 게 아니라 각 지역마다 다니면 마치 매번 다른 나라를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었어요.
게다가 말도 어느정도의 대화는 가능할 수준의 일어도 할 수 있어서 일본은 내가 여행을 가도 되는 모든 조건을 만족한 단 하나의 국가였어요. 그래서 가는 김에 아예 1년 있어 보려고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준비중이었어요.
...2011년까지는요.
3.언젠가 군대 얘기를 썼었죠. 2011년에는 아직 군대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시기였어요. 1~2년 안에는 해결될 거라고 여기던 시기라서 당시에 더 큰 걱정은 일본 여행에 대한 거였어요.
왜냐면 서류상으론 여유있지만 뭐랄까...보이지 않는 허들이라는 게 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일정 나이 이상에서는 서류상 나이 안쪽이라도 심사에서 떨궈 버린다는 말이요. 그래서 혹시 그런 나이제한에 걸릴 게 걱정되어서 면접에서 심사원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하나 궁리하곤 했어요. '열심히! 열심히 할께요!'라고도 하고 이제 현실적으로 취직할 나인데 왜 이제와서 워홀이냐고 하면 '안할겁니다! 일본워홀 1년을 위해 취직 따위, 평생 포기하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각오!'라고도 할 준비를 해놨어요.
하지만 솔직이 걱정은 안 됐어요. 지금까지의 일들이 어떻게든 되어 온 것처럼 일본워홀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여기고 있었어요.
4.흠.
5.2011년에 지진이 나고 방사능이 나온다는 뉴스를 듣고 며칠동안 화를 냈어요. 가끔은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쌍욕을 하기도 했죠. 신이 던진 돌에 얻어맞는다는게 이런 건가 싶었어요. 그리고 방사능 식품이 원산지를 속이고 일본 전역을 돌아다닌다는 뉴스를 보고 갈 마음을 접었죠.
아마...아니, 아마라는 말을 쓸 필요도 없이 저는 평생 일본에 못 갈 거예요. 일본에 못 가는 정도가 아니라 일본어로 써진 모든 제품들은 눈에 띄는 족족 휴지로 손을 감싸고 모조리 쓰레기통에 버렸죠. 어제 썼듯이 인생에는 모듈이 있는데 인생의 한 모듈이 다른 모듈들을 오염시키게 둬선 안되니까요. '일본'이라는 인생의 즐거움 모듈은 떼내서 먼 곳으로 던져버려야 다른 인생의 즐거움들이 안전할 수 있죠.
6.해산물을 먹는다는 즐거움도 포기해서 김...오뎅...심지어 참치캔까지도 먹지 않았지만 3년 정도 참으니 버티기가 너무 힘들어서 저 세개는 일단 먹고는 있어요.
언젠가 썼듯이 몇 년만에 참치캔을 사왔는데 너무 맛있어서 밥 한숟갈도 없이 참치캔 한통만 모조리 다 먹어버렸어요. '해산물을 못 먹는 감옥'에서 약간 탈출은 한 거예요. 하지만 스스로를 널널하게 풀어주는 건 여기까지고 일본에 관련된 모든 건 사지 않고 있어요.
7.게임 인생에도 변화가 생겼어요. 차세대 게임기 전쟁을 할 때 빌었어요. 제발 마이크로소프트가 차세대 콘솔 전쟁에서 승리할 콘솔을 만들기를요. 그러면 엑스박스 차세대 기기를 사고 자연스럽게 승리한 콘솔로 발매될 일본의 재미있는 게임은 패키지를 안 사고 모조리 다운로드로 받아서 하면 안전할 테니까요.
한데 플레이스테이션4가 이겨버렸고 대부분의 재미있는 게임들은 그걸로 나오고 있죠. 정말 하고 싶은 게임들이 많지만 일본 제품인 플레이스테이션4를 내 근처에 두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그냥 그 부분의 인생의 즐거움은 포기하고 마는 거죠.
8.사실 이건 신이 던진 돌은 아니예요. 일본의 어떤 멍청이들이 초래한 결과죠. 그 멍청이들의 재산을 몰수하지도, 감옥에 보내버리지도 않고 있는 일본의 다른 멍청이들 또한 한심한 거고요.
모스 버거도 먹지 않고 있어요. 그야 머리로는, 모스 버거같은 메이저 업체에서 원산지를 속이지 않는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안 먹죠.
그야 나중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일본 사람들은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긴 해요. 지금 포기하고 있는 모든 즐거움은 '혹시 모르니까'포기하고 있는 것들이죠. 그냥 2011년에 일어난 어떤 일 하나가 내 즐거움 중 몇가지를 영원히 가져가버렸다고 생각하면 짜증이 나요. 흠. 원래 이런 글은 아니고 다른 주제의 글이었는데 쓰다가 보니 일본 얘기가 나오고 일본 얘기가 나오고 보니 짜증이 나서 그만...짜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써 봤어요.
전 소금이나 간장에 절인 해산물 혹은 그런 느낌의 과자 같은 것을 너무 먹어서 그냥 포기하고 초밥도 막 먹고 있습니다. 일본의 인구 모두가 피폭될 때 저도 검사하면 뭐 수치가 나올 것 같지만요. 후쿠시마 농산물 먹어서 응원하자! 는 프로에서 일본의 방송인 몇 명이 그 프로 때문에 입원하고 이것저것 수치가 안 좋게 찍혔던 기억이 나는데 어차피 외면적인 이미지에 비해 이것저것 일 처리가 진짜 딱 악명의 그 수준이어서[...] 대단한 기대 안하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도 후쿠시마산 복숭아 사진 찍히는 자리에서 시식을 했던데 아베는 병원에 갔다는 보도는 본 적이 없더군요.
원산지를 속이는 나쁜사람들도 있겠지만 일단 사고지와 되도록 먼 산지의 것을 선택합니다. 물론 방사능 오염 쓰레기를 전국 각지에서 보관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멀다고 안전하다 할순 없어요. 계속적으로 바다에 오염수를 방출하고 있으므로 가능한한 해산물은 피하려고 하지만 전혀 안먹을수는 없고요. 먹는물은 외국산 미네랄워터를 주문하지만 그 외국에도 원전은 있는지라 모르죠 뭐;; (개인적으론 한국도 방사능 환경에 있어서 그닥 다르지 않을거란 생각입니다. 심심찮게 들려오는 원전의 이런저런 트러블들과 그 대응, 은폐의 작태들로 볼때. 게다가 이제는 핵무기 위협까지 ㅡ ㅡ;;)근데 외식을 하게되면 이 모든게 그냥 방치되는 거고요. 이런것들이 효과적일 거라는 기대는 사실 크지 않지만 내게 가능한 최소한의 것들을 함으로서 그저 심리적안심을 찾는것일 뿐이죠. 어디 멀리 청정한 산속에서 살고싶지만 현실은 지금의 주변을 모두 정리하고 새보금자리를 찾는다는 선택이 결국 쉽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사는 일본인또한 청순한 뇌로 속편히 살아가는게 아니라 알면서도 모르는척 그렇게 사는거죠. 왜냐면 그곳이 내가 살아온곳이고 갈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5년 가까이 실체를 안보고 살다보면 솔직히 잊혀지긴 합니다. 어느새 '모르는척'은 괜찮겠지라는 믿음으로 바뀌기도 해요. 그래도 저는 거기도 사람살아요라는 말로 안전함을 어필하는건 싫어합니다. 이세상 안전하지 않아도 사람사는곳은 참 많죠. 그리고 신경쓰고 주의하는 사람들이 까다롭다고 생각지도 않고요. 오히려 무신경하고 문제의식, 위기의식 없는 사람들에 화가납니다. 무엇에 관해서든 각자의 현실에서 각자의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거겠죠. 음…그렇게 살아가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