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롤", 차이잉원

1. 영화 "캐롤"을 보러 갔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에 대해서는 이미 숙지한 참이었어요. 뭐가 나오는지 알면서도 보러간 이유는 물론 케이트 블랑쳇 때문이죠. 영화관에 가니 할머니/할머니 커플이 세 쌍 정도, 할아버지/할머니 커플이 네 쌍 정도, 그리고 혼자 온 어르신들이 와 계시더군요. 이 영화는 1952년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었죠.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들고 나오는 여행가방에는 바퀴가 달려있지 않아요. 바퀴가 달린 여행가방은 1970년대에 만들어졌으니까요. 1950년대는 지금으로부터 65년전...그러니까 당시에 20대였던 분들은 지금 80대겠네요. 그런 나이또래의 어르신들이 극장을 1/3정도 메우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2/3은 텅텅 비어있었죠.


남의 나라 1950년대 풍경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풍경은 저에게도 익숙했어요. 제가 처음 다른 나라에 공부하러 갔을 때의 일인데요. 임시로 배정된 낡은 기숙사에는 방마다 전화기가 없었습니다. 한 층 전체에 전화기가 하나 있을 뿐이었죠. 집에 동전을 넣어서 전화해야했는데, 밤에는 허벅지와 무릎, 손과 발이 몹시 시렸고, 웬지 화장실에 몹시 가고 싶었고, 엄마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신호가 뚜 뚜 울리는 순간이 처량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추운 순간이죠. 캐롤에는 그런 장면이 나와요. 아파트 전체에 공유 전화기가 하나 있고, 그 전화를 이용해서 캐롤과 테레즈는 통화합니다. 


테레즈가 파티에서 빠져나올 때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요. 남들은 잘 섞여 노는 파티에서 이방인이 된 느낌을 문득 받고 파티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그런 것도 공감이 느껴졌죠.  난데없는 로드트립이나 비싸지 않은 미국 시골 식당, 낡은 모텔 같은 것도 익숙한 장면이었구요. 그런 걸 보면 미국에는 참 안변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김괜저 (@gwenzhir)님이 캐롤에 대해 트위터에서 이렇게 평가를 내렸어요. 


<캐롤>의 작품상 제외의 정황에서 여성 내러티브의 뿌리깊은 소외를 진단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캐롤>을 보고 성별을 넘어 게이라는 점만을 통해 주인공들에 이입할 수가 없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치르는 몸서리에 대한 영화에 훨씬 가깝다. 스크린에 남자가 나오는 것이 그렇게 매번 침입으로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토드 헤인스에 대한 평가를 새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원작이 갖고 있는 남성 그 자체에 대한 콧방귀를 충실하게 담지 않고 '그 마음 아는' 게이 스토리텔러로 임하고 에고을 담았더라면 훨씬 작은 작품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작품에서 남자들은 귀찮고 무례하고 여성의 영역을 마구 침범하는 하찮고 못생긴 존재로 나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나자 관객들 중에서 한 미국 아저씨가 분개해서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어요.


나는 그 시대 타부도 이해하고 이 작품에서 말하려는 메시지도 이해한다구!  하지만 이렇게 못만든 영화를 왜 보러 온 거야? 이건 브로크백 마운틴에 물탄 것 같잖아? (watered down version) 


같이 온 아주머니가 뭐라뭐라 설명하려던 것 같았는데, 남자분은 잘 이해를 못하시는 것 같더군요. 


2. 대만에서 차이잉원 민진당 후보가 총통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제목을 이렇게 뽑았더군요.


"차이잉원 대만 역사상 최초 여성 총통 당선...'첩의 딸'에서 최초 여성지도자로"


이에 대해 트위터의 John ‏@loremlumen 은 이렇게 코멘트 합니다. 

조선일보가 역대급 헤드를 뽑았다. 한 국가의 지도자를 '첩의 딸'로 표현.

- 차이잉원, 대만 역사상 최초 여성 총통 당선…´첩의 딸´에서 최초 여성 지도자로 http://chosun.com/tw/?id=2016011601502 …


정몽준씨가 FIFA 회장이 되면 조선일보는 어떻게 제목을 뽑으려는지 궁금하네요. 

    • '첩의 아…'…그냥 조선 일보의 천박성이 한 눈에 보이는군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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