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 듀나 인터뷰를 봤습니다. 백가흠은 아무리봐도 개인감정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굴더군요.
나 너 안다. 너 나 알지않냐
가면 쓰고, 너 소설가로써 책임이라는게 있냐
전 듀나님은 락스타 같은 소설가라고 생각합니다. 호불호 떠나서
소설가라는건 많은 경우 락스타 같이 구는 법이기도 하구요.
아아...
근데 무슨 고분고분한 유치원생이 되길 바라더군요.
작가든 음악가든 지면상에 데려다놨으면
작품에 대해 말해야 하는거 아닙니까
이거 읽고 백가흠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들더군요.
어떤 걸 써놨을까 이 인간은
선험적 경험이 뭡니까?
선험적이라는건 경험 이전의 것
경험 이전의 경험? 뭐야? 이게 말이야?
인정할만한 뭔가가 있으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그것도 아니니까요. 평론가들은 얼마나 현란한 말로 찬양을 해댑니까. 전혀 이해안가요.
선험적 경험이란건, 보통 영화를 설명할 때 자주 쓰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나요. 영화를 보는 것은 관람이 아니라 경험이다, 이런거요.
아니면 일제시대를 살지 않은 우리들이 일제시대에 담긴 감정같은 것을 흔히 그렇게 말하던 걸로 기억하네요. 사람은 꽤 오래산 것처럼 구는 법이잖아요. 전 아직 인터뷰를 읽지 않았지만, 그런 단어로 꼬투리잡는건 아니란 생각이 드네요.
그 꼬투리는 듀나님이 잡고 있더군요. (선험적, 경험이요?) 대충 읽어서 잘은 기억못해도
(백가흠의 질문) 그 글을 쓰는건 상상력만으로는 안될것 아닌가, 선험적 경험이 있을것 아닌가. 잔인한오후님의 말대로 봐도 도통 뭔소린지 모르겠네요. SF소설가에게 인류의 종말을 선험적으로 보고왔으니 쓰냐고 묻는건지.
선험이 말씀하신 경우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잘..
선험은 굳이 경험 안해도 생득적으로 알게되는 인식을 말하는 건데요.
이 본문글 가지고는 선험이라는 말이 무슨 맥락으로 낑겨들어갔는지 도저히 감이 안오는군요..
catgotmy_ 'SF를 왜/어떻게 쓰시는 거에요?'의 변주 같네요. 'SF를 쓸 때 상상력 외에 동원하는 것을 설명하여라' 뭐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듯.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북한에 대한 공포/트라우마, 읽었던 몇몇 책, 특정한 영화들 등등으로 대답했으면 만족스러웠겠지만 너무 편의적인 질문이었군요. 근데 듀나님 책 읽어보면 글들의 많은 부분을 어디서 빚졌는지 다 설명해놓지 않나요, 후기에.
원문을 다시보니 그냥 백가흠이 잘못 쓴 겁니다.
https://twitter.com/n91211/status/688411294622339072
저게 말이 되려면 선행되는 경험이어야 맞죠. 선험적인 경험이 저 자리에 있는건 그저 쌩뚱맞을뿐..
선험적 경험의 원조는 아마 후설 현상학에서 나오는 선술어적 경험일 겁니다. 원어로 뭔지 모르겠는데 선험적 경험이라고도 종종 번역되고요. 선술어적 경험의 정의가 뭐라고 잘 설명할 재주는 없는데(정 궁금하시면 네이버...), 위에서 잔인한오후님이 인용해주신 사례는 선험적 경험이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멋부리느라 말 갖다붙이는 평론가들이 범하는 오남용 사례라는 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집단무의식과는 달리 선술어적 경험은 저런 맥락에 비유적 표현으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백가흠 같은 경우는 아예 멀리 간 것 같네요, 말씀하신 대로 문맥상 선행 경험이나 그냥 경험이라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후설이 말한거군요. 선험적이라는 단어는 칸트도 말한것 같아서 대충은 감이 오는데 선험적 경험이라는 표현이 따로있는줄은 몰랐습니다.
말씀대로 저경우는 알아듣기 어려운 질문이 돼버렸을뿐 이상하게 됐을 뿐이네요.
donut, catgotmy, 이수_ 칸트를 다시 살펴보고 했는데 제가 틀린게 맞습니다. 역사 청산 계통의 책들에서 비슷한 단어를 제가 가정한 정의로 썼던 기억이 있는데 아무래도 다른 단어일 거란 생각이 드네요. (개인 이상으로 확장한 경험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쨌든간 부끄럽군요. 음.
선험적 경험이란 말도 있나요? 동어반복인데요. 후설이 원조도 아니고요. 그냥 대륙철학의 영원한 화두같은거죠.주로 donut님 댓글에 말씀하신 의미로 사용되고요. 소설쓰기에 선험이 왜 동원돼야하는지 궁금하긴 하군요. 잡지를 사봐야하나.
"소설을 쓰는 우리는 소설이 단지 그냥 상상력으로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작가의 선험적인 경험과 체득이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소설에서는 당신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당신의 과거를 어떻게 짐작해야만 하는가?"
쓱 훑어보시면 알겠지만 '선험적인' 4글자를 빼야 말이 됩니다(비문이기도 해서 교열을 봐야겠지만). 아니면 '선험적 지식과 체득한 경험'을 잘못 말한 거겠죠. 하지만 억지로 원래 의도가 그거였다고 우기면 할 수 없지만, 뒤따라오는 질문으로 보아 아무래도 아프리오리 아포스테리오리하고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데요.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의 체득'을 잘못 말한 게 아닐까요.
선험적 경험은 동어반복이 아니라 형용모순이고요. 위 댓글에서 후설 운운한 건 예전에 편집하던 원고에서 굳이 저 표현을 고집하던 모 평론가분이 해주신 설명입니다. 대충 대륙철학에서 아프리오리 아포스테리오리가 대립항으로 내려오다 후설에 의해서 하나로 통합된 개념을 의미한다는 것 같았어요.
경험(驗)은 선험의 대립항이 아니죠. 선험(아프리오리)의 대립항에 굳이 넣자면 후험(아포스테리오리)이 맞아요. 이 둘의 동류항에 驗이 있는 거고요. 驗은 경험한다는 의미도 안고 있지만 현상을 인식하는 행위의 준거라는 쪽에 방점이 찍히거든요. 선험적 경험이란 말을 형용모순이라 할 순 없죠.
따옴표로 인용하신 문구가 잡지에 있는 건가 보지요? "작가의 선험적인 경험과 체득" 이란 말은 뭘 뜻하는지 제대로 알고 한 소리인지.. 도대체 뭔 소리를 한건지 더 알쏭달쏭해지네요.
진짜 잡지를 사봐야 하나..
음 개인감정이라기 보단 지루한 술꼬장 같았어요. 왠지 익숙한 그 느낌적 느낌에 백씨 부분은 걍 흝고 넘겼네요. 요약하자면 백씨는, 너의 개인사가 작품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인정하고 나에게 다 털어놔, 라는 전형적인 먹물 아재 술주정을 시전.
음... 게이로서 (로써가 맞나요?) 백가흠씨의 소설에 묘사된 동성애 묘사가 너무 소름돋게 촌스러워서 낄낄댔던 기억이 나네요. 거의 장정일만큼이나 촌스러웠죠.
늘 타자화되는 걸 감수하고 사는 입장이지만 구리게 타자화되는 건 견디기 힘들어요. 뭐니뭐니해도 전 게이니까요.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