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 (Room)

예전에 읽은 어떤 글에서, 등소평이 유배되었을 때에 관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제기 지금 조금 술에 취한 지라 기억은 정확하지 않아요) 등소평은 조그만 집에 유배되어 있었는데, 그 집 주변에는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등소평은 자기에게 주어진 조그만 자유, 그러니까 집 주변 울타리 안을 매일매일 걸어요.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울분을 다스리기 위해서였을까요. 등소평이 국가지도자가 된 것은 그의 나이 일흔 네 살 때의 일입니다. 일흔 네 살(74)이요. 


그는 매일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는 인생이 답답할 때면 그 구절을 기억하고 저녁 노을 지는 중에 오두막 주변을 걷는 등소평의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그는 누구를 생각했을까?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는 무엇을 꿈꾸었을까? 그는 어떤 희망을 가졌을까? 


룸 (Room)은 등소평에 못하지 않게 일상을 꾸려가는 여성 조이(Joy)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조이는 열일곱살 때 올드 닉이란 사람에게 납치됩니다. 그리고 일곱해 동안 닉의 집 뒤뜰에 있는 헛간에 감금됩니다. 헛간의 철문은 코드로만 열려요. 납치된 지 1년 째에 조이는 임신하고, 2년째에 출산하여, 7년째에는 다섯살짜리 아들 잭을 갖게 됩니다. 잭과 조이는 매일매일 같은 일 (Routine)을 반복함으로써 자기들을 지켜요. 운동하고, 청소하고, 몸을 씻고, 빨래하고, 요리하고, 잭을 벽장에 넣어 재우고, 조이는 납치범에게 강간당하는 루틴입니다. 운동이랬자 좁은 헛간 안에서 하는 운동이란 건 스트레칭 정도. 그리고 어린 잭에게 이쪽 벽에서 저쪽 벽까지 달리라고 했다가 다시 방 전체를 빙글빙글 돌라고 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다 잭과 조이는 탈출해요. 헛간을 탈출한 후 조이는 자기가 빼앗긴 시간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아 잭에게 보여주지 않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잭이 태어난 후 5년간 조이는 지극히 참았습니다. 그리고 올드 닉으로부터 잭을 보호했죠. 혹시라도 올드 닉이 잭을 성폭행할까 두려워서 철저히 보호했습니다. 그리고 잭이 정신적으로 상처입지 않도록 가짜 이야기를 만들어서 가르쳐줬죠. 하지만 세상으로 나온 조이는 이제 잃어버린 시간들, 잃어버린 자기가 너무나 분한 겁니다. 한편, 잭은 어머니의 스트레스와 함께,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방 바깥의 세상을 받아들이는 이중의 스트레스를 감당합니다. 다행히도, 언제나 그렇듯이 아이들은 우리 생각보다 더 강해요. 카메라는 잭의 시선을 따라갑니다. 


방을 나와 보니 세상은 너무나 빠르고, 사람들은 서두르라고 말한다. 하지만 괜찮아. 당신(엄마)과 내가 있으니까. 라고 다섯살 잭이 말합니다. 그 순간 눈물이 터졌죠. 


There's so much of "place" in the world. There's less time because the time has to be spread extra thin over all the places, like butter. so all the persons say "Hurry up! Let's get going! Pick up the pace! Finish up now!". Ma was in a hurry to go "boing" up to Heaven, but she forgot me. Dumbo Ma! So the aliens threw her back down. CRASH! And broke her.


세상에는 "장소"라는 게 진짜 많다. 이렇게 장소가 많기 때문에, 모든 장소에 쓰일 시간은 버터처럼 얇게 퍼져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서둘러! 빨리 가자! 따라 잡아! 지금 끝내!"라고 말한다. 엄마는 천국에 "퐁"하고 들어가기 위해 서둘렀다. 그러다 엄마는 나를 까먹었다. 엄마 바보! 그래서 외계인이 엄마를 던져버렸다. 팍! 그리고 엄마는 망가져버렸다. 



그 순간뿐 아니라 영화 보는 내내 눈물이 흘러내려 뺨을 적셨습니다. 저뿐 아니라 같은 극장에 있는 다른 여자분들도 많이 울더군요. 특히 마지막 장면에 안녕 변기야, 안녕 방아, 안녕 화초야 하고 작별인사를 하는 장면은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Goodnight Moon" 동화를 연상시켰어요. 


제 생각에 우리는 모두가 어딘가에 갇힌 존재죠. 그리고 매일매일 어떤 루틴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방 밖에 나갈 수도 있죠. 그리고 방 안에서 받은 트라우마 때문에 조금은 미쳐버릴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는 괜찮아요. 당신과 내가 있으니까요. 


There are so many things out here. And sometimes it's scary. But that's ok. Because it's still just you and me...

여기는 이렇게 많은 것들이 가득해요. 그래서 거의 무서울 정도예요. 하지만 괜찮아요. 왜냐하면 당신과 내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이 좁은 울타리 안을 매일매일 걸을 수 있는 거죠. 

    • 등소평이 권좌에 올랐을 때가 무려 74세였군요! 대단하네요. 모택동이 죽은뒤, 강청을 비롯한 4인방을 체포하고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이 정말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문혁때 그렇게 유배생활 하면서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최소한 "…청산에 살어리랏다…는 아니었을 테지만…"
    • 조이의 이야기는 읽기만 하는데도 숨이 가빠지고 손이 떨릴 만큼 끔찍하네요.. 인간이란 존재는 그 하찮음에 비한다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악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반대급부로, 그 하찮음에 비해 경탄이 나올 정도로 선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요즘엔 그닥 위로가 되질 않구요..

      • 이 이야기는 그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클리블랜드에서 일어난 실제 이야기가 있어요.


        https://en.wikipedia.org/wiki/Ariel_Castro_kidnappings 

      • 동감입니다. 얼마전에 스웨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더군요. 다행히도 수십일만에 경찰에 검거되서 해결은 됐습니다만…진짜 그 악랄함에 기가 막혀 말도 안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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