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많은 것들을 이고 살고 있었다니
이사를 몇 달 전에 하고 정리를 완전히 하지 못했어요. 원래 살던 집의 책꽂이 공간에 여유가 있어서 거기 책 뿐 아니라 온갖 서류와 잡동사니들이 올라가 있었죠. 뛰어난 실력의 이삿짐 아저씨들이 책과 잡동사니를 완벽하게 고대로 옮겨줘서 그것을 이고 몇 달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비어있는 거실에 책장을 새로 들이면서 기존 책장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일단 거실 책장엔 좋아하는, 오래 두고 볼 책들을 골라 먼저 옮겼습니다. 문이 달린 아랫칸에는 크기가 작거나 당장은 안 볼 책,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파일, 수첩, 노트 등을 넣었어요. 남은 책들 중 상당수는 기증하려고 박스 포장을 했고 동시에 학교에 기증할 건 별도로 골라뒀어요. 일차 기증할 것만 세 박스나 나왔어요. 그리고 이제 잡동사니들. 학부 때부터 쌓아온 것들이라 정말 난장판입니다. 수업 자료, 교과서, 세미나 자료, 논문, 거기다 온갖 계약서와 서류 영수증들이 있어요. 그리고 잡다한 메모지, 자석, 잉크, 스티커, 스탬프, 사진, 엽서, 다이어리, 양초, 심지어 수틀까지 혼란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분류하고 동시에 세 개의 서랍장에 차곡차곡 넣었어요. 남은 것들은 한꺼번에 모아 재활용 쓰레기로 버렸구요. 참 서랍과 펜꽂이와 여러 개의 필통에서 엄청난 양의 펜이 나왔고 모아보니 서랍 하나를 꽉 채울 정도입니다. 이것들을 이고지고 살았다니요. 별도로 정리해서 어딘가로 좀 보내야겠어요.
이제 기존 책장 중 네 개가 비었어요! 마음이 아주 홀가분합니다. 주말 이틀을 다 투자한 정리 작업이 거의 막을 내렸어요. 다음 주에는 블라인드와 책상이 도착할 겁니다. 거실에 놓을 거에요. 이제 거실에서 좀 여유 있게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을 거에요. 지금 쓰는 책상은 좁아서 모니터 두 개로 꽉 찼거든요. 지금 이 글은 며칠 전에 산 새 키보드로 씁니다. 그 동안 십여개 키보드를 거쳤는데 마음에 쏙 드는 놈이 없었어요. 키 눌리는 느낌이 끈적하거나, 키 위치나 크기가 손에 여간해선 익지 않아 오타가 난다거나. 그래서 열심히 검색해서 이걸 사 봤어요. 아주 마음에 듭니다. 적당히 찰칵거리고 오타가 적고 무겁고 안정감이 있어요. 이 글을 쓰면서 오타가 거의 나지 않았다는 걸 방금 깨달았어요.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정신적인 부분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는 글을 며칠 전에 봤어요. 어르신들이 카카오톡 같은 걸로 서로 좋은 말씀을 주고받거나, 꽃사진을 찍기 시작하거나 동양 고전을 읽기 시작하는 게 그런 이유일까요? 저도 요즘 논어를 읽고 있습니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잘 모르겠어요. 주변에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헌신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는데 존경스러우면서도 내가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마냥 즐기기엔 인생을 낭비하는 느낌이 편치 않아요.
아.....!
새로 구입한 키보드는 어떤 제품인지요? 궁금합니다. ^^
저도 비슷한 이유로 논어를 폈다가 주례를 힐끔씩 보고 있습니다. 수양하려고 읽었는데 또 삼천포로 빠지고 있네요. 그릇이 글러먹었나 봅니다.
뜯지 않은 제품을 중고거래로 싸게 샀어요. 사실 저희 어머니도 엄청나게 버리는 분이라, 저희 집에 가끔 오시면 버리지 못해 안달을 하셨었죠. 부모님 집이 냉장고 내용물이 제 반도 안 될걸요. 심지어 쓰던 것, 읽던 책도 도 막 버리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