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자]를 봤습니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어요. 참고하세요. (_ _)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순응자]를 봤습니다. 이 감독의 다른 작품은 제목 정도만 들어봤고 영화로 만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저는 영화를 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영화를 만날 때의 두려움이었어요. 물론 이전에도 친구의 추천으로 보게 된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라든지,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라든지 정말 좋아했던 영화들도 있었지만 아무튼 영화는 다른 취미에 비해서 실패할 확률이 높았어요. 그것도 좋든 싫든 온전히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영화만을 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점이 지금껏 제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어요.

이런 사족으로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첫째로, 저는 영화에 관한 경험도 식견도 부족하기에 혹시나 제 무지나 오해로 인한 잘못이 드러나거든 넓은 아량으로 지적해 주셨으면 하는 것이고, 그리고 둘째로 훨씬 더 중요한 이유이자 이 글을 쓰는 목적이기도 한 것인, 이 영화를 추천해 주신 oldies 님에 대한 제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에요. 짧은 댓글이었지만 제게 쉽지 않은 일이었던 새로운 감독의 새로운 영화를 만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어요.

영화로 돌아와 일단 [순응자]는 제게 조금 불친절했어요. 안 그래도 전날 [자객 섭은낭]을 극도로 좌절하며 본 터라 과연 이 영화도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어요.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를 이리저리 오고가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지만, 제게 더 곤란했던 것은 영화 전반에 흐르는 차가움이었어요. 비현실적으로 보일 만큼 거대하고 인공적인 건축물을 뒤로 하고 선 인간의 모습은 너무나 왜소해 보였고, 영화 내내 맑은 자연광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날카롭게 새파란 빛만이 공기를 채웠던 것 같아요. 게다가 더 이상했던 것은 이러한 냉소를 일부러 깨는 듯한 장면들이었어요. 첫 장면에 나오는 스튜디오에서의 노래도 그랬고, 제게 가장 이상했고 동시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술집에서의 춤 장면이 그러했어요. 살인이 벌어지기 직전 펼쳐지는 고혹적인 춤사위라니.

제 취향의 영화냐 물으신다면 아마도 아니라고 대답할 거에요. 하지만 스릴러로서 긴장감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꽤나 재미있었고 빛과 어둠이 교차되는 화면들, 아직까지 의문이 풀리지 않은 그 아름다운 춤 장면, 그리고 절망에 찬 마지막 눈빛이 좋았어요. 또다른 기회가 온다면 베르톨루치 감독의 다른 작품도 한번 보고 싶어졌어요.
    • 수요일에 볼 예정이었는데 집중해서 봐야겠어요
    • 오, [순응자] 감상이다! 하면서 들어왔는데 제 아이디를 언급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o@;; 사실 좀 잘난 척도 하고, 때로는 비겁하고 위선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영화라서 저도 다시 볼 때마다 '과연 이걸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품으면서도 하여튼 아직까지는 좋아하는 영화인데, 인상적으로 보셨다니, 헛된 시간 안겨드리지 않은 듯하여 다행이에요. (정작 저는 이번에는 아직 못 보았던 터라 뒤늦게 한국어 자막 번역 상태를 걱정하기도 했고요.)


      베르톨루치 감독의 다른 영화들은 저는 딱히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몽상가들]이 꽤 인기가 있더라고요. 예쁜 백수들이 나와서 영화 퀴즈 내는 영화라서 그런지^^; 훗날 기회가 닿는다면 한 번 보시는 것도.

    • 순응자 오래전에 영상자료원에서 보고 너무 좋아서 이번 개봉때 또 봤네요. 족족 명장면이 터지죠. 평범함을 갈구하는 주인공을 놀리는 듯 종종 웃기기도 하고

      장 루이 트린티냥의 얼굴이 심각하고 서늘한데 미소지을때 야비하고 속이 컴컴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번에 보면서 크리스토프 발츠가 생각났네요. 두 배우 표정이 비슷해요.

      교수 부인이 숲에서 도망치는 도중 주인공의 차를 발견하고 비명지르는 모습 진심 무서웠네요. 주인공은 그 모습 보고 잠이 올까 모르겠어요. 참 저런장면 처음 본다 싶었습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영화를 다 본건 아니지만 본 작품중에는 가장 좋아합니다. 무척 재밌기도하고요.
    • 전 오늘 봤어요... 어제 화니와 알렉산더를 보고 오늘은 순응자를..

      저 역시도 베르톨루치 영화는 많이 보진 못했지만 두 영화 다 고등학생 때 부터 보고싶어했던 거라 좀 실망해도 꼭봐야지하며 미뤄둔 숙제처럼 보게 되었네요. 춤추는 장면, 숲속 장면 모두 인상적 이었고 생각보다 현대적인 느낌이라 놀라웠어요.. 기회가 되면 다시 보고 싶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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