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프갤과 팍스넷)
1.프요일이군요. 프로듀스 101의 인기가 최극에 달하고 있어요. 저도 나름 프로듀스 101을 봤다고 자부하지만 5회 방영한 여기까지 와서도 아직 있는줄도 몰랐던 연습생이 튀어나오곤 하니까요. 광기에 가까운 반복감상으로 마이너한 연습생이 프레임 저 너머에 잡히는 장면들을 모조리 캡처해내는 걸 보고있으면 순수한 사랑이 느껴져요.
프로듀스 연습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평생 그 연습생과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영화를 같이 보러 갈 일이 없을 거예요. 그걸 알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순수한거죠. 그 순수함을 감상하러 프갤에 가면 왠지 기분이 좋아요. 다른 어느 곳에 가서 순수한 사랑을 볼 수 있겠어요?
2.프로듀스 101 갤러리에 가는 게 순수함의 광기를 보러가는 거라면 팍스넷에는 욕망의 광기를 보러 가요. 투자정보를 참고할 게 없어서 안가던 곳이지만 스마트폰을 사고는 밖에서 시세를 보기 위해 가고 있었는데 어느날 토론페이지에 가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사람들의 욕망이 그들에게 있지 않은 걸 보게 하고 있지 않을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는 거요.
그 중에서도 특히 재미있는 곳은 제약주 쪽이죠. 제약주는 바람이 한번 불면 멀리, 빠르게 날아가니까요. 한데 이 세상은 늘 거짓말이 판치는 곳이잖아요. 바람이 불면 멀리 날아가는 종이비행기가 있다면? 그리고 종이비행기가 멀리 날아갈수록 돈이 생긴다면? 종이비행기를 팔고 다니는 사람들이 바람이 곧 불 거라고 거짓말을 해대겠죠. 실제로 바람이 불든 불지 않든 상관없어요. 사람들이 바람이 불 거라고 믿는 게 중요한거죠. 굳이 설명할 것도 없지만 여기서 말하는 바람은 호재죠.
한데 이건 솔직이 외부인이 보면 종교의 영역이거든요. 시총은 천억 정도에 어디 들어본 적도 없는 회사가 당뇨병을 완치할 약을 개발했다거나 거의 국가 레벨의 제약회사들도 쩔쩔매고 있는 줄기세포 치료법을 풀어냈다? 이런 건 현실이 아니죠. 어른이라면 이런 말을 믿지 않아요.
그러나 주식을 하다 보면 이상한 최면 상태에 빠지곤 하는 법이예요. 그 최면 상태에 한번 빠지면 들어본 적 없던 회사가 꿈의 신약을 거의 개발했다는 뉴스를 믿게 되는 거죠. 이건 누구의 탓도 아니예요. 판도라라는 멍청한 여편네가 세상에 풀어놓은 것 중 제일 악질적인 것, 바로 희망 때문이죠. 이 희망이라는 녀석이, 냉소적인 어른들을 소풍 가기 전날의 아이처럼 만들어 버리는 거죠.
3.이것 또한 다른 곳에 가서는 할 수 없는 구경이거든요. 다 큰 어른들을 진짜로 설레게 만들고 어린아이처럼 환호하게 만드는 걸 볼 수 있는 곳...팍스넷 게시판에 가서 그걸 보고 있으면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돼요. 팍스넷의 움틀거리는 욕망은 프로듀스 101의 순수함과 놀랍도록 비슷하곤 하거든요.
로또는 사실 되지 않아도 다들 별 탈 없죠. 로또가 되지 않았다고 토요일날 한강에 가는 사람은 (거의)없잖아요. 하지만 주식은 현실화될 수 있다는 희망때문에 믿음의 무게에 가속도가 붙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달리는 열차에서 그냥은 내릴 수가 없어요. 내리는 값으로 다리몽둥이 하나쯤은 부러져야죠.
4.휴.
5.하지만 어쩌겠어요. 지난번에 말했듯이 이 세상이 침몰해간다는 사실을 잊으려면 우리에겐 열병이 필요하거든요. 위에는 마치 아닌 것 처럼 써놨지만 실제로는 나 또한 그래요. 내가 주식을 산, 극동의 작은 나라에 있는 회사가 세계의 내노라하는 기술력을 가진 업체들과 '곧'어깨를 나란히 할 거라는 찌라시를 읽으면 믿어버리거든요. 왜냐면 기분이 좋아지고 싶으니까요.
장이 끝난 다음에 그런, 믿고 싶어지는 뉴스가 뜨면 그 다음날엔 일찍 일어나요. 그리고 주식이 올랐는지 보죠. 올랐을 때도 있고 안 올랐을 때도 있지만 사실 여기서 진짜 중요한 건 올랐는지 안 올랐는지 같은 게 아니예요. 여기서 중요한 건 오늘 내가 일찍 일어났다는 거죠.
사실 주식이 올라봐야 뭘 하겠어요? 조금 더 비싼 곳에 가고 조금 더 비싼 술을 마시고 조금 더 비싼 음식을 먹는 것밖엔 없어요. 내가 일찍 일어났다는 것, 아직 나를 일찍 일어나게 만드는 뭔가가 하나쯤은 남아있다는 것...그게 중요한거죠. 이제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고 소풍가는 날 아침 같은 건 인생에 없으니까요.
4. 이 글자 하나가 다른 문단들과 같은 무게로 읽힌다는 게 굉장하네요. 슬프기도 하구요.
3.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계신 모 기자님이 어떤 게임관련회사의 불법자금 의혹을 기사화한 적이 있었어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사무실로 잔뜩 전화를 해서 항의를 하더랍니다.
패턴은 뭐, 왜 썼느냐, 확인된거냐, 이런 내용의 반복이었는데 내용은 한결 같았죠.
"주가 떨어지면 책임질 거냐. 누구한테 사주받은 거 아니냐"
N모 포털 관련 게시판에는 본인이 그 기자님을 혼냈다는 묘한 증언이 나오고...
(정작 사무실에서는 있는 취재된 사실들에 대해 정확히 고지했다고;)
돈을 받았느니 어쩌니 하는 억측이 쏟아져 나오고.....
그리고 다음 날,
작전세력이 주가를 떨어트리려고 한다는 소문과 함께 외려 주가는 상승했더랍니다.
(해당 기자님에 대한 조롱은 끊이질 않았지만 어쨌건 항의전화는 그쳤다던...)
저도 최근에 우연찮게 팍스넷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대출금리와 예금금리를 확인하려다 보니..) 저는 가계부 게시판이 재미있더라구요. 제가 아는 가계부 게시판은 네이버 밖에 없어서 조회수 열자리대의 소박한 대화들만 봤는데, 와 천에서 만자리수의 조회수에도 자신의 금융 내역을 적나라하게 올리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제공해주면 감사하기야 하지만은..
개인 부채에 흥미가 당겨서 개인 금융자산의 비율을 살펴봤었는데, 주식에서 가계가 처분하고 빠져나가는 추세더라구요. 요즘은 연금/보험으로 돈이 몰리는 경향. 실제 주식 시장은 어쩐지 궁금하긴 하네요. 말은 안전자산이라고 하는데, 은퇴 기간이 다가오나 자식의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이 공포를 헷지시키려고 들어오는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게 잘못된 선택이라거나 하는건 아니지만요. 잘 되시기를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