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용마 기자의 글을 보니 비로소 박영선 의원의 행보가 이해가 되네요.
민주당의 갑작스런 필리버스터 중단 소식 이후, 박영선 의원은 모든 비난을 자신에게 달라며 울면서 발언을 한 바 있었습니다.
이 눈물은 감동적이기 보다는 무척 뜬금없이 느껴지는 것이어서, 찬물 끼얹어진 판에 영웅이라도 되려는건가 싶기도 하고 좀 의아했더랬죠.
그런데 한밤중에 '필리버스터 중단'이라고 언론에 흘려 기사가 나가게 만든 이가 바로 박영선 의원이었다는걸 알고 나니, 비로소 그 눈물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김어준 총수는 박영선 의원을 이렇게 평한 적이 있지요. '피해자 코스프레에 능하다.'
그리고 2011년도 즈음에 주진우 기자가 이런 트윗을 했었던 것도 기억났습니다. '나경원 의원이 울 것 같아요. 시기가 문제인 것 같아요. 정치인의 눈물에는 많은 역학관계가 있죠. 문득 생각이 듭니다.'
한 때 똑부러지게 일 잘하는 여성의원으로 각인되기도 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중요한 고비마다 이상한 결정과 이상한 말을 하고 다녀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박영선 의원이었는데, MBC 선후배 관계인 이용마 기자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보니, 이 양반은 그냥 김한길 따라 국민의 당 갔어야 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드네요.
이 분이 지금 민주당 비대위원을 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당의 결정권자로 있는 한 민주당은 영원히 쫄보 무기력 당에서 못벗어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https://www.facebook.com/iyongma/posts/1035361339838551?fref=nf
박영선 선배
선배를 맨 처음 만난 건 2001년 5월쯤이었을 겁니다. 당시 경제부에서 금융권을 담당하던 제가 선배를 만난 건 어쩌면 대단한 행운이었습니다. 선배가 진행하던 <경제매거진>의 마지막 방송에 제가 갑자기 파견되어 방송을 했지요. 제 아이템은 구조조정과 관련된 노동자 문제였던 걸로 압니다. 선배는 제 아이템에 대해 좋은 평을 해주셨고, 저 역시 <경제매거진> 폐지에 저항하던 박 선배의 심정을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인연이었는지 다른 팀원들과 함께 선배의 집에 초대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뒤 박 선배는 경제부장으로 영전했습니다. 저는 대단히 짧았지만 인상 깊었던 만남으로 인해 선배에게 인간적인 호의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선배가 경제부장으로서 보여줬던 모습은 너무 큰 실망이었습니다. 재벌의 이익을 옹호하는 논리에서 한 치의 벗어남이 없는 경제부 기사에 깜짝 놀랐습니다. 박 선배의 경제부 논조는 조중동의 반복 그 자체였습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지요. 박 선배와 제가 경제문제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함께 경제부에서 일을 한 적도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기대와 너무 다른 박 선배의 경제관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경제부를 운영하던 박 선배가 어느 날 열린우리당에 입당했습니다. 이것도 사실 놀랄 일이었죠. 야당과 비슷한 경제관을 가진 분이 갑자기 여당으로 갔기 때문이지요. 정치권 입문 배경에 관한 소문도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제 기사 때문이란 소문이었지요. 박 선배와 관련된 한국IBM에 대한 검찰 수사 소식을 뉴스데스크 톱뉴스로 두 꼭지나 보도하자, 마침 입당제의를 받던 차에 화를 내고 떠났다는 미확인된 소문이 당시 파다했습니다.
그런데 박 선배는 저를 또 한 번 당혹하게 만들었습니다. 박 선배가 국회 재경위를 맡아 재벌을 비판하며 심상정·김현미 의원과 함께 주목받는 여성 의원 3인으로 거론되었기 때문이지요. 경제부장 시절 누구보다 재벌 비호에 앞장섰던 분의 갑작스런 변신이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막후에서 시민단체 출신 비서관이 박 선배에게 재벌 비판 논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그럴듯한 소문도 들렸지만 그러려니 했습니다. 국회에서 좋은 일을 하면 그만이니까요.
그 뒤 정치권에서 승승장구하던 박 선배가 저를 다시 놀라게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원내대표가 되어서 세월호특별법 협상을 할 때입니다. 세월호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박 선배가 보여준 나이브함과 과단성에 무척 당혹했습니다. 주변에서 함께 논의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나 하는 의혹이 들 정도로 소통이 되지 않는 독단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연속 말이지요. 세월호 사안은 여야가 적당히 주고받을 가벼운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박 선배가 세월호 때 보여주었던 문제가 이후 정치과정에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내에서 소위 비주류가 합법적으로 선출된 주류 당 대표를 흔들 때, 적당히 중립지대를 차지하면서도 비주류에 편향된 많은 행보들을 보았고, 안철수 의원이 탈당할 때 함께 나가지 않으며 좌고우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급기야 이번에는 여야의 중간지대에 서서 필리버스터를 그만두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셨더군요.
박 선배는 항상 저를 놀라게 하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분입니다. 그건 아무래도 적절한 타이밍의 결단력과 과감한 추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박 선배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두고 보좌를 잘 받으면 추진력이 있어서 큰 일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독단으로 인해 대형 사고를 칠 수 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문제나, 이번 필리버스터 중단 문제가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하기 전에 많은 소통이 필요합니다. 특히 박 선배의 개인적인 정무적 판단이 많이 작용한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박 선배에게는 조중동의 사고방식이 이미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열린우리당에서 재벌을 비판하던 때를 제외하면 박 선배의 모습은 사실 일관됩니다. 조중동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죠. 재벌 비판으로 잠시 가려졌을 뿐이지요.
이런 얘기가 이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박 선배 주장대로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입니다. 다음달 투표할 생각이 뚝 떨어졌습니다. 제가 돌아가야할 MBC를 생각하면 야당이 과반을 차지해야 하고, 그럴 수 있다고 지금까지 스스로를 독려해왔지만, 필리버스터 중단으로 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생각입니다. 누가 바보에게 지휘봉을 맡기려고 하겠습니까? 야당이 여야 지지자 양측에서 모두 비난을 받으니 야당 심판론이 정권 심판론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오늘밤은 잠이 쉽게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