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작가)


 1.어떤 사람이 있었어요. 아직 어렸던 때 친구였던 사람이었죠. 그와는 만나서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대학교 시절이었나...어느날 미래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그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나중에 부자가 되면 진짜 병맛이란 게 뭔지 보여줄 거야. 티코를 타고 다닐 거거든. 단, 벤츠 네대를 사서 내가 탄 티코를 호위하듯이 감싸서 도로를 달리는 거지."


 그리고 서로 하하하 웃었지만 저는 그가 그러지 않을 걸 알고 있었어요. 왜냐면, 그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 그렇게 할 수 있었거든요. 이미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데 나중에 하겠다는 건 안한다는 말과 동의어니까요.


 휴.


 하지만...저는 달랐어요. 하고싶은 일들을 할 수 있을지 하지 않고 싶은 일들을 안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함이 늘 마음 속에 맴돌았죠. 



 2.어른이 된 뒤에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람들은 아마 될 수만 있다면 다들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할 거라고요. 뭐...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꽤 많은 사람이, 모든 분야의 재능을 다 가지고 태어났다면 작가를 제법 고르지 않을까? 싶긴 했어요. 


 아마 저도 그런 종류의 사람인 거 같아요. 좋은 스포츠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재능,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는 재능, 좋은 과학자가 될 수 있는 재능을 다 가지고 태어났다면 작가를 골랐을 거예요. 


 한데 저 세개 중 한가지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그나마 잘할수 있는 걸 해야 했어요. 잘하지 못하는 일에 도전하면 비참해진다는 걸 감안하면, 그건 정말 잘한 거예요. 



 3.한데 갑자기 뜬금없는 전환이지만, 지금은 작가 일을 하긴 하고 있어요. 2번과 3번 사이에 뭔가 이것저것 많이 쓰긴 했는데 그건 좀 쓸데없는 이야기 같아서 지웠어요. 


 예전에는 어떤 직업이든 직업을 가지게 되면 그 업계에 대해 잘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되어 보니, 작가가 되었다고 해서 이 업계를 정확히 알게 되는 건 아니예요.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납품하고 돈을 받는 회사에 대해서만 알 수 있는거지 나머지들은 떠도는 이야기들을 가끔 들을 수 있을 뿐이죠.


 

 4.흠.



 5.모든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고 봐요. 술자리에서 사람 앉혀 놓고 이미 여러 번 주워섬긴 레퍼토리를 한번 더 꺼내는 상사든, 대학교 선배든, 평소에 말이 없던 우중충한 사람이든 기회만 되면 자기 얘기를 길게 하고 싶어하죠.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끼리 충돌하다가 싸움도 나는 거거요. 현실 세계에서는 계급이나 입장에 따라 말할 기회와 분량이 이미 할당되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그러니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돈까지 받아 가면서 하는 작가라는 직업은 꽤 괜찮은 직업 같긴 해요. 물론 모든 직업이 그렇듯이 가지지 않을 수 있으면 가지지 않는 게 더 좋겠지만요. 이런 면에서 보면 한국 웹툰 작가란 건 꽤나 좋은 거예요. 아마 돈을 받아 가면서 작가를 하는 나라 중에 제일 터치가 적은 분야가 현재의 한국 웹툰 작가가 아닐까 싶어요. 지나치게 사회적 물의를 빚는 표현만 하지 않으면 어떤 이야기를 어떤식으로 하든 편집부가 영향력을 가하거나 인기가 떨어졌다고 잘라 버리거나 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이 점은 얼마든지 좋게 작용할 수도 있고 악용될 수도 있지만요.


 편집부가 마음대로 하게 놔둔다는 건 상업적인 기준이나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고 실험적인 이야기의 세계를 펼쳐나갈 기회이기도 하지만, 한 회의 전개를 방만하고 밀도 낮게 만들어버리고 여가 시간을 더 챙길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6.언젠가 말했듯이 제가 가진 최고의 재능은 걱정하는 재능이예요. 걱정할 필요도 없는 걸 시뮬레이트해서 걱정하는 거 하나만큼은 남들보다 잘 하죠. 뭐...이 능력은 이야기 쓰기보다 다른 분야에서 빛을 발휘했지만, 이 글과는 상관없으니 다음에 써보죠. 


 어쨌든 이 일을 하면서도 가끔 업계에 대해 생각(걱정)해보면 소름끼치곤 해요. 많은 사람들이 웹툰 작가를 하고 싶어하잖아요. 그리고 한국형 웹툰의 구조상 괜찮은 연재처는 늘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거고요. 그러면 그냥 전문적으로 웹툰을 노리는 과들...만화과 졸업생만 해도 한해에 몇백명씩 술술 쏟아져나오고 있는 중이예요. 미술 계열인 시각디자인과나 공업디자인과, 컨텐츠학과, 건축학과, 패션디자인과, 섬유디자인과에도 그 과 졸업생의 10분의 1만 웹툰 지망생이라고 쳐도 이미 천명단위의 웹툰작가 경쟁자가 1년 지날때마다 나타나는 거고요. 관련 분야 대학생이 아닌 일반 도전자들은 다 빼도요.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지만 헬조선에서는 웹툰 작가가 정말 좋은 직업인 편이라고 느끼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연간 수천명 단위의 경쟁자가 나타나는 곳에서 내가 일하고 있다니 하고 놀라곤 해요. 


 

 7.옛날에도 이야기꾼은 있었었죠.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새 마을에 가면 적절한 과장이 섞인 썰을 풀고 동전 몇 닙을 받거나 했겠죠. 나도 혹시 옛날에 태어났다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귀신을 본 얘기 같은 걸 뻥을 좀 섞어서 실감나게 해주곤 했을 거예요. 옛날에는 전기가 없어서 보름달 밤이 아닌 밤엔 무지 어두웠잖아요. 그러니 밤에 숲길을 갈 때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면 좀 겁을 먹다가도 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은 걸 '내가 말이야,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두 눈을 보았다네. 뒤도 안 돌아보고 뛰다 보니 이 마을에 와 있더군'같은 이야기로 발전시켜서 다음 마을에 가서 썰을 풀거나 했을 거예요.









   

    • 부럽네요, 웹툰업계에서 일하신다니.

      듀게에서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계시니 틀림없이 작가의 재능이 있으신 겁니다.
    • 너무 그저그러니 안하지 않고 할 수 없이 나중에 하며 삽니다.


      작가고 과학자가 다 싫은데요 왜 애써 지이야기를 각색하고 없는걸 찾으려 골치 썩이며 살까


      베스트셀러 작가로 노벨상 수상자로 내일 아침 탈바꿈 되어있다면 해보겠네요.


      나도 재능이 좀 있긴 있는거 같긴 한데요.


      조카한테 이야기를 꾸며서 끝없이 몇시간 동안 줄줄줄 해줍니다 너무 재밌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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