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봤어요(스포많음)

1. 재미있습니다. 한 시간짜리 영화로 느껴질 만큼 지루하지 않게 봤네요.

2. 박찬욱, 하면 저에겐 화려한 기교의 테크니션이에요. 기가 막힌 장면전환이나 낯선 느낌마저 들게 하는 구도라든가 등등... 그런데 아가씨에선 이런 특유의 기교가 절제된 인상을 받았어요. 대신에 스토리 몰입감이 좋습니다. 이전작들이 지나치게 유려한 문장과 상징 때문에 스토리가 잘 안 들어오는 순문학 소설 같았다면 이번작은 간결한 문체로 몰입감 있게 끌고나가는 대중소설 같다고나 할까. 확실히 상업적으로 많이 안배된 영화였어요.

3. 재미는 엄청 있는데 이게 좋은 각본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시점이 바뀌면서 생기는 구성상의 문제인데 상대의 마음을 훔쳐보고 싶어하는 심리를 충족시켜주는 장점은 있지만, 역시 군더더기가 좀 있습니다. 편집이 고군분투한 덕에 매끈하게 넘어가긴 합니다. 사실 이 군더더기도 큰 문제는 아닐지도 모르는 것이 어쨌든 속마음을 들쳐주면서 생기는 재미가 상당했거든요. 그래도 초반부 하정우와 김해숙의 입으로 블라블라 전달되는 설명들은 그닥... 박찬욱 영화에서 이런 설명씬은 생판처음 보는지라 외려 흥미롭더군요. 아무래도 고수님께서 이번은 대중을 위해 친절해야겠다고 작정하신 모양입니다...

4. 코미디 영화더군요. 특히 아가씨가 그림을 배우는 장면이요... 하정우가 "아가씨는 남이 보지 못 하는 내면을 보실 줄 알죠" 운운 하길래 전 스토커를 떠올리고 말았어요. 그런데 정작 아가씨가 그린 그림은.... 아아......아............
그것 말고도 배꼽 째는 장면들이 많았네요.

5. 2장에서 야설 낭독씬 말이죠. 그 장면에서 감독이 의도한 바는 길게 쓰지 않아도 다들 아실 거예요. 아가씨에겐 무척이나 비극적인 그 상황을 지켜보면서 전 어이없는 생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일본어가 아닌 생생한 한국어로 저 야설들이 낭독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일본어 대사 때문에 화면속 낭독회에 마음껏 탐닉하지 못한 불만족감에 갈증까지 생기지 뭡니까. 박감독님이 관객들에게 바란 반응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 텐데...

6. 화제의 노출씬은... 이미 내 영혼은 오래전에 음란마귀한테 헐값에 팔아치워서 그냥 그랬어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르겠죠.
폭력수위는 내부자들만도 못해 보였고, 일단 문제의 그 씬에서 조진웅이 너무 웃겨요.

7. 대놓고 질펀한 베드씬보단 욕조씬처럼 간질간질하게 야한 장면이 꽤 있어요.

8. 제가 사전지식 전혀 없이 이 영화를 봤다면 은근 박찬욱 느낌 나는 실력있는 감독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9. 아가씨에게 첫눈에 꽂혀 대놓고 군침을 질질 흘리는 숙희가 굉장히 귀여워요.

또 보러갈래요.
    • 4. 2장이었나에서 벚나무 아래 장면도 그렇죠, 명백한 코미디들 ㅎㅎㅎ 그림 배우는 장면에서 저도 뿜었습니다. 이 짤도 생각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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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로!!! 이겁니닷!!!!!!!!
      • 이게 뭐야요ㅋㅋㅋ
    • 금요일에 동생과 보기로 했는데 그렇게까지 폭력적이지 않다하시니 좀 안심이 되네요ㅎ;;

      영화 되게 궁금해지는 후기네요~~
    • 9. 저도 또 보러 가려구요.


      시점이 이동할수록(막이 바뀔수록) 사랑을 나누는 씬이 오히려 거칠어지는데 은밀했던, 남들에게 숨기고자 했던 욕망이 점점 분명해지는 과정이 기뻤어요. 특히 마지막 장면은 완전 대놓고 하니까요.

      그때 제가 느꼈던 건(?) 선정성이 아니라 기쁨이었어요. 캐롤처럼 서로에 의해 구원 받는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충실해져서 구원을 받는다-라는건 파우스트의 구원과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 공감합니다. 2부, 3부로 갈수록 아가씨와 숙희의 관계가 드러나고 발전하는 걸 보여 주기 위한 장치라고 해석되더라구요. 2부에서 들판을 달리는 두 사람의 앞모습이 제일 환희에 찬 것 같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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