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테이션게임, 캐롤, Her 감상 소감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은?
정답 : 성소수자가 주인공
이미테이션게임은 사람이 죽는 장면이 안 나오는 밀리터리 첩보물?의 탈을 쓴 너무나도 특별하였던 인물의 위대하면서도 비극적인 일생을 다룬 영화인데 영화를 관통하는 메세지는 남과 많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세상과 불화하면서 견디어 내는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이해? 였어요.
성적 지향도 특별했지만 타인과 어울리고 소통하는 것도 너무 달라 힘겹게 살지만 그 와중에도 그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있어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영화의 내용은 관객들에게 간결하고도 분명한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는거 같군요.
영화는 대부분 라디오 공장으로 위장한 암호해독기지 내에서 이루어지느라 장면 장면이 참 답답하고 지루하고 칙칙할 수도 있고
암호해독을 하는 과정 자체도 너무나 복잡하고 일반인들이 아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인데
영화의 몰입도는 굉장합니다. 이런게 연출의 힘이겠죠.
그런데 아...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었던 2차세계대전중과 그 이후인 1950년대의 미국은 동성애가 범죄였네요.
이미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에서 만들어진 그런 시절을 배경으로한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수천만명의 목숨을 살리고 현대적 기술혁명의 시조격이었던 사람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는걸 보다 캐롤이란 영화를 이어 보면서 감회가 더 깊어지는군요.
캐롤은 두 사람의 감정이 어떻게 동요하고 고양되며 폭발하는지 정말 잘 보여준 잘 만든 멜로 영화였어요.
영화를 보던 그 시간 한국의 서울시청 광장에선 퀴어축제가 열리는 한 편에 보수기독교단체의 동성애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죠.
캐롤이 살고 있는 미국은 이제 동성애가 범죄는 아니지만 아이를 양육권을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심각한 도덕적 결격 사유가 되는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앨런 튜링처럼 범죄자가 되어 화학적 거세를 당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거나 피붙이 딸의 양육권을 포기해야하는 선택을 강요받는건
한 개인의 입장에선 국가와 사회의 야만적인 폭력앞에 무기력한 개인으로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네요.
캐롤에는 굉장히 멋진 섹스신이 나옵니다. 남성적 시선을 전제한 눈요깃감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박찬욱의 아가씨에 나온 레즈섹스신과 비교되는
그런 멋진 장면이었어요. 그냥 보면서 사랑하면 저럴 수 밖에 없겠구나라고 절로 공감이 되는 그런
그리고 캐롤역의 케이트 블란쳇은 정말 눈 부신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녀를 통하여 만들어진 캐롤은 남성에 의하여 대상화되는 모든 여성상을 다 무너 뜨리기에 충분한 카리스마와 매력을 보여주는군요.
Her 는 SF의 탈을 쓴 색다른 성적소수자의 멜로영화입니다.
멜로영화의 문법을 별로 색다를거 없이 진부하게 답습을 합니다만 그 대상이 인공지능이라는게 모든 진부한 멜로적 문법을 신선하게 전달하네요.
SF의 탈을 썼다고 하지만 왠만한 SF 물들보다 매우 진지하고 전교하게 인공지능과 근미래에 사람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거 같아요.
가짜와 진짜라는 케케묵은 화두도 들어가 있지만 사실 진부함은 진실의 또 다른 이면인거 같아요.
인상적이었던 연기자는 주인공의 같은 동네 사는 절친역의 에이미 아담스였는데 너무나 낯익고 반가운 인상인데 기억이 나질 않는거에요.
필모그라피를 뒤져보니 왜 그런지 알겠더군요. 비교적 최근(10년 이내) 출연작중에는 제가 본 영화가 하나도 없었는데 한참을 거슬러 가보니
캐치 미 이프 유 캔에 디카프리오의 약혼녀로 잠간 등장했었군요. 보아하니 대부분의 역할이 존재감 별로 없는 띨한 백인여성 캐릭터를 맡아 온거 같던데
Her에서는 라스트 엔딩까지 맡으면서 아 나도 이웃집에 저런 절친 하나 있었음 좋겠다 싶은 연기를 보여줬어요.
흠... 멜로라는 장르는 식자층에서 다소 격이 떨어지는 취급을 받지만
가끔씩은 메마른 감성에 적절한 보습제 역할을 해주는거 같습니다. 자기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관계에 대하여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도 갖게 해주구요.
위 세 작품들은 소재의 평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의미에서 상당한 보편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거 같아요.
* Her 에서 배경으로 나오는 근미래도시는 상하이에서 촬영되었다고 하는데 대략 두 지역에서 주로 촬영된거 같더군요.
하나는 푸동 뤼자주이 금융지구 또 하나는 우지아창 상업지구, 자주 등장하는 원형육교 대부분의 컷은 뤼자주이 동방명주앞 사거리를 한번에 횡단할 수 있는 육교에요. 육교 너머 고가도로에 UFO 비슷한게 걸쳐 있는 곳은 우지이창. 그 외 마천루 파노라마 상당부분은 푸동 뤼자주이 금융가의 빌딩군들입니다. 날씨 좋고 미세먼지 덜한날 직접 보면 영화에서 보여진 거보다 더 멋진 곳이죠. 주인공이 전 부인과 이혼합의를 위해 마지막으로 만나 식사를 하던 풀밭위 식당은 뤼자주이 금융가의 강변쪽 카페지역으로 보이는데 얼마전에 시작한 프로젝트가 바로 그 위치의 그런 레스토랑이라 잠시 몰입에 방해가 된; 그래서 가끔 친숙한 지역, 공간이 영화에 나오면 개인적 기억과 추억이 오버랩되는게 영화 몰입에 참 방해가 되네요
저런, 에이미 아담스 지못미. 더 파이터 추천하고 가겠습니다.
오홋! 추천 감사합니다!
하긴 자유롭기로는 포르노가 짱이죠
캐롤이야 대도시 거주+중상류계급 배경이라 그 정도의 (상대적으로 은밀한) 억압이었던 듯. 맥카시 이후 50년대 아타스카데로 주립병원이라는 곳은 동성애자판 다하우 강제수용소라 불릴 정도로 악명 높았다고 해요. 가족에 의해 강제입원되어 전두엽 절제술, 화학적/물리적 거세 등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이게 다 합법이었다고. 아우팅당했을때 린치, 강간 등 혐오범죄에 노출, 취업에 제한은 물론이고, 대학 내에서도 신입생들 상대로 동성애 성향 테스트가 있었다고 하니까요. 미국 법은 주법과 연방법 복잡해서 각종 반동성애적 법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그 중 대표적인 sodomy 법은 2003년까지 14개 주에 존재했다네요. 여기서 sodomy는 항문섹스 만이 아니라 "모든 비정상적" 섹스형태를 지칭하기 때문에, 어떤 주에서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무기징역까지 살 수 있었다고.
그렇죠 her는 가슴 찡하게 만드는 성적소수자 소재의 sf멜로드라마. 겨드랑이 섹스를 그렇게 그려내는 인공지능을 어찌 거부하리오.
에이미 아담스는 <다우트>에서도 끝내주는데요. 이 영화를 안보셨을리가 없는데.
에이미 아담스 아카데미 후보가 몇번이고 골든글로브가 몇번인데요. Enchanted 이후로 볼 때마다 반가운 배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