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적평형 독서모임 6월 정모 후기_역대급 발제
한달에 한번 있는 동적평형 독서모임 정모가 어제 있었습니다. 주제 도서는 이영도 작가의 "오버 더 호라이즌" 이라는 작품이었구요. 발제자가 팬심+지성으로 가득하신 분이라.. 역대급 발제문이 나왔네요. 일단 발제문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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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5년쯤 전인가, ‘달샤벳’이라는 걸그룹이 처음 나왔을 때 기획사에서 언플용으로 자주 써먹었던 캐치프레이즈 중의 하나가 ‘제2의 소녀시대’ 였어요. 제 2의 은방울자매도 아니고, 제 2의 서울시스터즈도 아니고, 왜 하필 그룹의 아이덴티티를 지금까지도 엄연히 현역인 소녀시대의 후발주자 내지는 대항마로 포지셔닝 했을까요. 이 세상에는 이미 9명의(지금은 8명이지만.) 소녀들이 사바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중인데 말이죠. 저는 볼 때마다 그게 궁금했어요.
2.
대부분의 사람들이 작가인 이영도를 ‘한국형 환상문학’의 대표주자 쯤으로 꼽고 있지요. 헤이 김치 월리어 헤이 고추 걸~처럼 아예 소재의 원산지(?)가 한국이여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그냥 작가가 한국인이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어 자체만 놓고 보면 실로 앞서 언급한 달샤벳과 소녀시대 간의 관계와 비슷한 정서, 즉 순수문학의 열화판의 열화판이라는 느낌이 팍팍 오는 네이밍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단은 제가 ‘발제자’이니, 제 개인적인 감상보다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와 더불어, 이 텍스트를 ‘한국형 환상문학’이라는 레테르를 벗어나 보다 보편적 ‘환상문학’의 한 양태로서 온전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흥미로운 개념들 몇 개를 소개하는 것으로 발제를 진행하겠습니다.
3.
작가와 작품 소개 : 이영도 작가는 1972년 4월 27일, 마산 출생이고요. 대표작으로는 1997년 연재했던 <드래곤 라자>를 시작으로 <폴라리스 랩소디>, <새 시리즈> 등이 있습니다. 2008년 <그림자 자국> 이후로 몇 편의 단편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사실상 창작 활동을 중단한 상태로 부모님의 과수원 일을 도우며 놀고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애초부터 환상문학이라는 내재적 리얼리티를 선택한 이유 자체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 더 편하게 마음대로 쓰기 위함이라고 작가 자신이 공언한 만큼 이 작가는 ‘불친절함.’ 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본인이 쓰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쓰고, 쓰고 싶지 않으면 안 쓰고, 심지어 전자의 경우에도 충분히 쓸 만큼 썼다. 는 생각이 들면 독자고 나발이고 상관없이 딱 하고 이야기를 끝내버려요. 그래서 몇 안되는 장편들 중에서도 완결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 거의 없습니다.
작품 줄거리 및 가이드라인 :
이제 이번 달 주제도서인 <오버 더 호라이즌>으로 넘어가 볼게요.
책 전체는 보안관 조수인 티르 스트라이크가 등장하는 오버 더 뭐시깽이 시리즈와 데뷔작인 드래곤 라자에서 등장한 핸드레이크와 솔로처가 등장하는 실험실 시리즈의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혹시 책을 다 안 읽은 분이 계실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꼭 읽어보시라고 줄거리는 스포일러를 배제하고 진짜 간단하게만 짚고 넘어갈게요.
1) 오버 더 호라이즌 -> 티르네 마을에 호라이즌이 칼 들고 악기 죽이러 오는 이야기.
2) 오버 더 네뷸러 -> 지지리도 재수없는 애가 마법사가 되려는 이야기.
3) 오버 더 미스트 -> 개와 고양이 사이에서 새끼가 태어났는데 이게 고양개인지 개양이인지를 놓고 싸우는 이야기.
구요.
4) 골렘 -> 행사 뛰러 나가야 하는 데 골렘이 길막하는 이야기.
5) 키메라 -> 봄 청소 하다가 실수로 만들어낸 키메라의 성별을 찾아주는 이야기.
6) 행복의 근원 -> 처방전 없는 의약품은 함부로 주워 먹으면 큰일 난다는 의약분업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이야기.
...입니다. 하하하;
앞서 이영도의 소설은 그 근간이 되는 구성 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 모두가 작가가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 의식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저는 이걸 이영도의 작품들을 출판 순서대로 개괄해 보았을 때
1. 던전 앤 드래곤 세계관 차용 2. 관념의 물화 3. 독자적 세계관의 설정 및 확장
이라는 세 가지 양태로 나타나며, 종속의 정도, 다시 말해 주제 의식이 표출되는 강도는 중-> 강 -> 약 정도로 간단하게 정리해 봤습니다.
이번 달의 주제도서인 <오버 더 호라이즌> 은 출판된 시기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페이즈 2와 페이즈 3의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제 의식도 비교적 또렷하게 드러나는 편이고, 서사가 진행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데 진입장벽이 그렇게 높지는 않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뭐 사실 저는 이 작가의 팬이기도 해서 이 책만 족히 수십번은 읽은 터라 좀 무덤덤한 편이긴 한데, 처음 접해보시는 분들이나 소설을 감상할 때 좀 디테일하게 세밀한 부분까지 보시는 중에서는 혹시 어떤 이질감 같은 거를 느끼신 분들도 계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표제작인 <오버 더 호라이즌>에 등장하는 ‘호라이즌’ 캐릭터만 봐도 좀 그렇지 않나요. 미중년 애꾸눈 엘프에, 악기 살해자라는 타이틀까지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만한 요소는 차고 넘치지만, 본질만 보면 결국 ‘자아는 타자를 자신의 수준으로 격하시켜 이해하려고 한다.’ 는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심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서만 작동하고 있다는 거지요. 뭐 따지고 보면 모든 이야기들이 다 그렇긴 한데, ‘행복의 근원’에 등장하는 문장을 인용해 보면 ‘다섯 개의 시약을 동시에 투입해야 하는 경우 그것들을 한 그릇에 섞는 대신 즉석에서 제자를 한 명 늘리는 마법을 만들어내는 것’같이 too much하다는 느낌이 좀 있죠.
흔히 ‘필력’이라고 표현하는 유머러스한 문체나 좀 있어 보이는 설정들은 그런 이질감을 효과적으로 커버하는 알리바이 같은 거고요. 그래서 이따 감상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있겠지만 나쁘지 않게, 혹은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이런 작가의 화법에 암묵적으로 동의하셨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4.
마지막으로 감상을 돕기 위한 몇 가지 흥미로운 개념들을 소개하겠다고 했는데 이게 사실 좀 부끄럽네요. 저는 뭐 **님이나 다른 분들처럼 문학에 깊게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원래도 좀 멍청한 애라서, 그냥 제 감상의 연장선 정도로만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흔히들 문학작품을 세분화 할 때 순수문학 / 환상문학(혹은 장르문학) 정도로 나누는데, 저는 이 말이 잘 이해가 안 됐거든요. 뭐 여기저기 찾아보면 뭐라뭐라 솰라솰라 나름대로 정의에 대해서 길게 적어놓은 것들은 많은데, 좀 공허하다고 해야하나.
결국 순수문학 : 장르문학이 아닌 것, 장르문학 : 순수문학이 아닌 것 정도로 의미가가 0이다. 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보다 직관적인 개념으로 한국형 장르문학이니 어쩌니 하는 말이 나온 것 같아요.
대충 드래곤 날아다니고 엘프가 활쏘고 오크가 취이이익 울고 하니까 어 너는 환상문학이야. 하는 건 좀 이상하잖아요. 지난 달 주제도서였던 <고래>만 놓고 봐도 좀 비슷한 경우고요. 그래서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에 대해 일단 동의한다는 전제 하에, 과연 환상문학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 외에 지니는 속성 외에 +@로 또 뭐가 있을까 하면서 그냥 겉핥기 식으로 대충 공부했던 적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톨킨이 사용한 개념들에 대해서 좀 있어보이게 살짝만 언급하고 발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톨킨은 환상문학이 다른 문학보다 더 많이 간직하고 있는 문학적 기능으로 환상Fantasy, 회복Recovery, 도피Escape, 위안Consolation을 말하고 있습니다. 환상, 도피, 위안은 단어 자체에서 뭔가 직관적으로 소구하는 느낌이 있어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는데, 뭘 회복하는 건지 잘 와닿지 않더라고요. 회복이라는 건 뭔가 손상되었거나 상실했음을 전제로 하니까요.
사실 발제문을 쭉 쓰면서도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일전에 **님께서 말러와 베토벤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실 때 하셨던 말씀이 문득 기억났습니다. 베토벤의 시대와는 달리 말러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더 이상 세계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정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작법에서 차이를 보이고, 이것을 감상하는 방법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하셨거든요.
루카치는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 인간의 총체성(자신이 속한 세계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 정도의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은 상실되고, 상실된 총체성 속에서 자아를 찾아 고독히 방랑하는 모험의 내러티브가 바로 소설의 발생과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대가 현대로 이행될수록 소설문학에서 등장하는 서사시적 총체성은 파괴되고, 파편화된 자아가 총체적 모험을 감행하는 고독한 방랑의 길이 바로 소설미학이라고 루카치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루카치는 이러한 현대 이전의 아무런 '불안과 두려움이 없는' 그리스적 시대를 낭만적 문학성으로 상정하는데, 이런 낭만성으로의 회귀가 바로 톨킨과 여타 환상문학 작가들이 말하는 '회복'이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결론을 정리해보면, 환상문학이란 ‘환상’이라는 내재적 리얼리티를 통해서 실제 세계와 비슷한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합니다. 복잡하고 정교하긴 하지만 세계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요. 따라서, 파편화된 개인은 이를 접하고 그 세계를 온전히 이해함으로써 총체성이 존재하는 시대로의 회귀를 경험하게 되며, 이것이 환상문학의 본령이자 문학적, 미학적 기능이 아닐까... 정도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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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인데 내용조차 훌륭한 발제였습니다. 가히 역대급 발제라는 생각이 들었구요. 더 보탤 말이 있나 싶을 정도로 훌륭한 준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수고해주신 **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루카치의 자아의 총체성 개념이 발제에 등장할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흠..
아무튼 발제를 마치고 각자가 읽어낸 작품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실 오버 더 호라이즌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드래곤라자를 먼저 이야기해야 겠지요. 환상문학이라고 통칭되는 장르문학의 카테고리안에서 드래곤라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큽니다. 다들 어떤 한 시점에 만난 드래곤라자의 이야기와 함께 오버 더 호라이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구요.
개인적으로 오버 더.. 로 시작하는 세편의 이야기는 웨스턴과 환타지 장르를 섞어 작가가 애정하는 캐릭터들을 듬뿍 때려넣은 이야기, 뒤에 나오는 핸드레이크와 솔로처의 실험실 소동극은 발제자가 언급한 관념의 물화를 가장 심플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마지막에 실린 행복의 근원은 마치 길고 긴 드래곤라자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이라는 물음의 답같기도 하구요. 네.. 인간은 섬이 아니다, 나는 네가 있어 존재한다..는 거죠. 찬잔은 채울 수 없고 빈잔은 비울 수 없다는 명문이 등장합니다.
명문..하니 다른 분이 언급해주신 "젊은이는 과거가 없기에 신념에 기대고 늙은이는 미래가 없기에 경험에 기댄다"는 말도 인상적이었다고 다들 동의해주시더군요. 어디선가 본듯하지만.. 읽어보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네크로맨서 이영도의 능력같기도 합니다.
오버 더 호라이즌은 시간을 때우기에도 뭔가 새로운 자극을 두뇌에 부과하기에도 이영도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기가 좋아했던 편린을 작품 여기저기에서 찾아보기에도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간 되실때 한번 보셔도 좋을 것 같구요.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다음달 주제 도서를 정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일단 소설, 가벼운 읽을거리를 몇달동안 한것 같아 좀 무거운 책을 추천해주십사 했고 그 결과 다음의 도서가 추천되었습니다.
우주로부터의 귀환_다치바나 다카시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_싯달타 무케르지
괴델과 아인슈타인_펠레 유어그라우
지상 최고의 맛_로완 제이콥슨
총, 균, 쇠_재레드 다이아몬드
투표 결과 괴델과 아인슈타인이 다음달 주제 도서로 뽑혔습니다. 기대가 되네요.
공식적인 정모를 마치고 주변의 음식점으로 이동해서 간단하게 2차를 마치고 귀가했습니다. 지적인 자극과 즐거운 웃음이 함께 한 자리여서 좋았구요. 모처럼 신입회원도 한분 오셔서 더욱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다가오는 여름이네요. 동적평형의 여름은 더욱 뜨겁고 즐겁고 유쾌하기를 기대하며 후기를 줄입니다.
듀게에 이영도 작가 팬이 별로 안 계신가 봐요. ^^ 저도 처음 들어보는 분이네요. ^^
이영도 작가가 이 글을 보면 기운이 펄펄 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