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사랑과 연민)
1.오늘은 정말 홍익궁중전통육개장의 전골을 먹게 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못먹었죠. 자고 일어나니 전골을 먹고 싶어하던 나는 없고 새로운 내가 되어있었으니까요. 몇시간만에 말이죠.
2.그래서 노후대비는 하고 있느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피식 웃곤 해요. 몇십년 후 노인이 된 나는 지금의 나와 상관도 없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다른 누군가일 거거든요. 그냥 다른 사람인거죠. 나와 상관도 없는 어떤 초라한 노인의 처지를 위해 돈을 아끼거나 저금을 한다는 건 내 관점에선 완전 넌센스예요.
그 노인이 그때도 정말 나 자신이라면, 알아서 잘 살아남는 법을 잊지 않았겠죠. 그 경우에도 역시 노후대비는 할 필요 없는 거고요. 결국 어떤 경우에도 노후대비따윈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3.어떤 가게에 갔는데 이른바 로테이션 바라는 곳이었어요. 직원들을 지명하지 못하고(물론 늘 예외는 있지만) 그냥 적당히 돌아가며 직원들이 술상대를 해 주는 곳이죠.
사장이 출근하더니 새로 들어온 직원이 마음에 들 거라며 소개를 시켜줬어요. 과연...그 직원은 똑똑했어요! '똑똑한 게 중요한 건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똑똑한 건 예쁜것보다 중요한 거예요. 아니 뭐 거기서 일할 정도면 어느정도 예쁘긴 할 테니까 애초에 예쁠지 예쁘지 않을지를 걱정할 필요는 없죠.
어쨌든, 인간의 감각은 쉽게 지치잖아요. 후각의 경우를 예로 들면 아무리 맡기 싫은 냄새라도 1분에서 2분이면 거의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려요. 예쁨을 느끼는 감각의 경우에도 5분 정도 지나면 잘 느낄 수 없게 되어버리는 거예요.
흠.
'하, 그러면 똑똑함을 느끼는 너의 감각이란 것도 몇 분이면 지치게 되겠군?'하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아요. 똑똑함은 캐치볼에 관한 거거든요. 공을 보내고 받고 공을 보내고 받고 하는 것과 관련된 능력이죠. 토론은 승부지만 대화는 승부가 아니기 때문에 포인트를 따기 위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계속 공을 주고받는 것 같은 대화의 랠리가 이루어져야 해요. 그리고 대화에서는 타구의 속도와 방향성, 의외성이 다양하게 발현되어야 계속 재미있는 거고요.
4.휴.
5.그날은 다른 고객을 상대하고 있던 그 직원을 소개시켜준다고 잠깐 불러온 거라서, 30분 정도 후에 다시 원래 있던 직원이 왔어요. 그런데 그 직원이 무언가가 고까웠던 건지...대뜸 소름끼치는 말을 꺼냈어요.
"오빠, 쟤 여기 오기 전에 노래방 나갔었대요."
라는 말이었어요. 소름끼쳤던 건...그 직원은 2년 반 정도 알고 지냈거든요. 그리고 그 직원은 악당이 아닌 사람 카테고리로 분류해놓고 있었어요. 그런데 저런 악의에 가득 찬 말을 건네다니, 내가 이렇게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다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슬펐어요.
6.그 말을 듣고 스티븐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의 일화에 나오는 한 따돌림당하던 소녀가 떠올랐어요. 따돌림당하던 소녀가 방학이 끝나자 예쁜 옷을 입은 예쁜 모습으로 등교했는데 그 사실을 참지 못한 학교의 학생들이 다시 그 소녀를 방학 전의 우중충하고 따돌림당하는 소녀로 기어이 돌려놓았다는 이야기요.
사실 이건 내가 조금 멋대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노래방에 나갔다는 말만으로는 정확히 무슨 일까지 했는지 알 수 없는 거니까요. 하지만 이런 곳에 오는 다른 남자들이 저 말을 듣는 순간 그 새 직원을 얼마나 가볍게 여겨버릴지는 알아요.
"오빠, 쟤 여기 오기 전에 노래방 나갔었대요."라는 말은 다른 사람이 되어보려는 사람을 후려치면서 "어딜 가? 니 자린 어차피 여기야."하는 말과 같은 거예요. 그리고 그 말을 듣는 남자들에게 함께 후려치자고 꼬드기는 비열한 행위죠.
7.한데...갑자기 궁금해졌어요. 바보도 아닐 텐데 이런 곳에 굴러온 돌로 일하러 와서 박힌 돌들에게 자신이 노래방에 나갔었다고 굳이 이야기를 했다는 게요. 그냥 적당한 토킹바에서 일했다거나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뻥치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후로 그 직원을 몇 번 지명해서 이야기를 해 봤는데 똑똑함에도 여러 종류가 있구나 하고 주억거리게 됐어요. 아는 게 많은 타입과, 아는 게 없지만 번뜩이는 감각이 있거나 짐승같이 눈치가 빠른 타입이요. 사실 대체로 그런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후자죠.
8.가끔은 사랑보다도 완전한 감정이 연민이 아닐까 해요. 사랑의 감정은 보상심리나 지배욕과 소유욕, 집착의 감정이 결합되면 이상한 형태가 되어버리거든요. 하지만 연민의 감정은 연민의 대상에게 준 것을 되돌려받거나 보상받으려는 마음이 덜 드는 거 같아요. 꽃에 물을 주는 것처럼 꽃이 물을 머금고 생기를 띄는 걸 보는 것만으로 기뻐지는 거예요.
이것이 사랑의 감정이었다면 "이봐, 내가 너한테 1L의 물을 줬으니 뭐 돌아오는 게 있어야지?"같은 말을 언젠간 했겠죠.
하하 그렇네요 나 아닌 늙은이를 위해 미리 뭘 할 필요가 있을까 당신이 알아서 잘 살아남겠지.
연민 밖에 사랑을 모른다 해도 과히 나쁜 일생은 아닐 듯 합니다.
노래방이나 토킹바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