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 수업에 관한 추억

그냥 잡담입니다. 여성학에 관련된 주제는 아니구요.

페미니즘 얘기가 많이 나오다 보니 생각나 그냥 심심해서 적어봅니다.

지울지도 몰라요.


대학교때 여성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계절학기때였죠.

100여명 정도가 수강을 했는데 10명씩 조를 짜서 발표로 점수를 매겼습니다.


대부분 학점 때울려고 듣는 수업이었죠.

40대로 보이는 여성학 강사도 수업에 별로 관심이 없어보였는데요.


조원들 분위기는 참 좋았습니다. 수업 끝날 때마다 술마시고 얘기들을 많이 했죠.


조원중에 정말 이쁜 여학생도 한 명 있었죠.

계절학기다 보니 지방캠퍼스와 교차수강이 가능했는데 지방캠퍼스에 있는 광고디자인과에 다니는 여자였죠.

같은과 남자 선배랑 같이 수업을 들었었는데 남자친구로는 전혀 생각이 안들었습니다.

둘이 전혀 어울려 보이지도 않았고 결정적으로 그 여자애가 남자친구 없다고 했거든요.


친구들 중에 지방캠퍼스에 다니는 친구가 몇 명 있어서 슬쩍 말했습니다.

여성학 수업 듣는데 광고디자인과에 다니는 애가 너무 맘에 들더라.

근데 친구 중에 그 여자를 아는 애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말하기를 그 여자애 유명한 애라고.

동거한 남자들이 엄청 많다고. 같이 다니는 키작고 뚱뚱한 남자 있지 않냐고.

지금은 둘이 동거하고 있다고.


그 얘기를 듣고 좀 놀라기는 했지만 갑자기 화가 나더군요.

그래서 '그러면 어떤데?' 라고 짜증을 냈습니다.


그 친구가 '너 진짜 좋아하나 보다' 하면서 킥킥 댔습니다.

그 친구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튼 꼭 그 여자애한테 잘 보일려는 생각이었던 건 아니었지만 저 혼자 열심히 발표준비를 했습니다.

페미니즘과 연관이 있는 영화를 골라 편집해서 그 영상을 틀고 준비한 나레이션을 읽기로 했죠.


프리티 우먼

델마와 루이스

조이럭 클럽

파니 핑크


이렇게 네 편이었죠. 프리티 우먼은 페미니즘으로 살짝 포장했지만 반페미니즘 영화로 컨셉을 잡았구요.

아는 사람한테 비디오 플레이어를 빌려서 플레이어 두 대로 열심히 편집했죠.

나레이션도 혼자 열심히 쓰고.


발표는 다른 여자애 한 명과 같이 했습니다.

그 수업을 듣는 100여명 중에서 계절학기 수업에 나처럼 열심히 발표준비한 애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열심히 준비했죠.


그래서 발표는 성공리에 끝나고 강사한테도 칭찬을 많이 받고, 학생들한테 박수를 많이 받았죠.

조원들이야 나 혼자 다 해줬으니 당연히 좋아했죠.

다른 조 발표할 때는 산만했는데 우리 조 발표할 때는 다들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더라. 출발 비디오 여행 보는 것 같았다 등등.


뒷풀이 자리에서도 분위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사실 광고디자인과 그 여학생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 여자애가 나한테 호감을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런 생각이 안들었다면 좋아할 생각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고백을 한다든가 뭐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100프로 확신이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뒷풀이를 마치고 극동방송국 앞에서 버스를 타려고 가는데 그 여자애가 제쪽 방향으로 같이 가는겁니다.

이전까지는 항상 같이 다니는 그 선배랑 반대쪽 방향으로 갔거든요.


그래서 둘이 극동방송국 앞에서 버스를 같이 탔습니다.

설레였지만 그때도 고백같은 걸 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버스를 탔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같은 과 동기 여자애가 탔습니다.

저랑 친한 여자애였는데 그 여자애가 나한테 일행이 있다는걸 모르고 내 옆에 와서 계속 말을 걸었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냥 그 동기 여자애랑 이야기를 했습니다.

속으로는 옆에 서 있는 광고디자인과 여자애를 생각하면서 애가 어디서 내릴까 동기 여자애보다 빨리 내리면 안되는데 그런 생각을 했죠.


그러다가 이대역에서 그 여자애가 '저 여기서 내릴께요.' 인사를 했습니다.

아쉬웠지만 '예. 그동안 재밌었어요. 안녕히 가세요.' 뭐 대충 그런 인사를 했죠.


근데 그 여자애가 나를 보더니 '왜 여자친구가 없는지 알겠어요.' 하고는 내렸습니다.

순간 이 말이 무슨 의미인가. 정말로 이 여자애가 나한테 관심이 있었나? 저렇게 이쁜 애가 설마?


그렇게 여자애는 가고 그날 설레임과 아쉬움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긴 밤을 지샜지만 그냥 그게 끝이었죠.

썰렁하죠. 그냥 작은 추억이죠. 생각해보변 참 순수했던 시절이었는데. 너무 순수해서. 좀 덜 순수했었어야 했는데. ㅎ



 

    • 용기 있는 사람은 미인을 얻고 수줍은 사람은 추억을 얻는 것 같아요. ^^ 


      지나고 보면 이상하게 고백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오래 기억에 남거든요. 


      (고백하고 거절 당하면 하루만에 훌훌 다 털고 잊어버리는데 ^^)


      그나저나 저런 경우, 동기가 버스에 탔을 때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지 


      듀게 연애박사님들이 한 말씀 해주시면 수줍은 청춘들에게 도움이 될 터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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