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가 재미있어서 남은 분량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웠던 경험

안녕하세요. 한 10달? 1년 전쯤에도 비슷한 글을 올렸습니다만,

올해 읽은 책들을 한 번 돌아보자 싶어서 다시 한번 써 올려 봅니다.


정말 정말 재미난 책을 읽다보면, 너무너무 재미나서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읽게 되고 완전히 몰입해서 등장인물들의 사연에 안타까워하고, 책 속의 세상이 영영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할만큼 책 내용에 푹 빠져서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책을 읽으면서 남은 책 분량이 줄어드는 것이 아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쉽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자꾸 남은 분량을 의식하게 됩니다. 벌써 끝나면 안돼... 하면서 말입니다.


중독성있는 TV프로그램 볼 때에도 TV프로그램 끝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아쉽게 느껴져서 자꾸 시각을 확인하게 되는 것도 비슷한 느낌이지 싶습니다.


올해 제가 읽었던 책 중에 이 정도로 재밌었던 책들은:


1. "모두 어디있지?" - 우주가 이렇게 넓으니 외계인이 아주 많을텐데, 아직도 외계인의 존재가 확실히 명명백백히 과학적으로 검증된 적이 없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여러 이론들을 주우욱 소개해 놓은 책입니다. 그냥 비슷한 항목을 다룬 위키피디아 내용들을 줄줄 읽는 것과 내용상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 회의주의자의 사전 처럼) 그러나, 내용을 읽기 재미있게 잘 조직해 두었고, 다양한 소재들을 잘 버무려가면서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어서, 무척 재밌었습니다.


2.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 웃기고 풍자적인 글쓰기에 다양한 정보, 자료도 흥미롭게 제공하는 재미난 수필의 왕, 빌 브라이슨의 정통파 수필이라 할만한 책이었습니다. 자신의 어린시절을 특유의 문체로 읊조려 들려주는데, 빌 브라이슨 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산 지 꽤 된 책인데, 다 읽어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일부러 정말정말 참을 수 없을 때만 몇 페이지씩 보고 있습니다. 기행문 시리즈에서 빌 브라이슨의 솜씨를 워낙 많이 맛볼 수 있었기에, 비슷한 수법의 글을 계속 읽게 된다는 반복적인 느낌도 있습니다만, 뭐. 맛있는 음식은 어제 먹고, 오늘 또 먹어도 맛있지 않습니까?


3. "평형추 - 독재자 중에서" - 단편집 독재자에 실린 듀나님 글이었습니다. 신나는 전개와 화려한 볼거리에 대한 묘사들. 그러면서도 중후한 감상도 슬쩍슬쩍 건드리는 SF다움도 부족함이 없는 걸작이었습니다. 단편이라서 전속력으로 줄거리와 묘사가 내달리는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어가는 것이 정말 어찌나 아까웠던지요.


4. "픽션들" - 이제 고전으로 자리잡은 보르헤스의 단편집들 중에서도 역시 대표 단편집으로 손 꼽히는 책입니다. 몇몇 이야기들은 친숙했지만, 본격적으로 단편집을 줄줄이 읽어본 것은 사실 올해 들어와서 처음이었습니다. "픽션들"에는 소위 말하는 "전통적인" 단편들과 보르헤스스러운 기교적, 소재중심적, 소설들이 적절히 섞여 있어서 정말 푹 빠져 읽었습니다. 국내에 번역된 다른 4권의 단편집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분 좋을 정도로 "픽션들"은 즐겁게 읽었는데, 아쉽게도 저에게는 "픽션들" 이외의 책들은 재미면에서는 훨씬 더 딱딱하게 느껴졌습니다.


5.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 - 역시 고전이라면 고전으로 자리잡은 책입니다만, 올해 처음 읽은 책입니다. 적당히 로마사에 대한 배경을 알고 친숙해진 후 부터는 무시무시하게 빨려드는 소설이었고, 몇몇 장면의 감개무량한 연출은 역사 소설의 정도를 지키면서 극적인 묘미를 최대화하는 기가 막힌 대목들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황제"가 주인공이고 황제 주변의 인물들을 다루는 거대하다면 거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1인칭 시점 특유의 사실적인 심리묘사가 공감을 진하게 자아냈습니다. 이 책 보고 재미 붙이다보면, 역사 자체에 관심이 생기면서 "로마제국쇠망사"라든가 "로마인 이야기" 같은 책들을 탐독하게 되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나서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들춰보았더니, "너무 흥미위주로 단순화해서 썼다" 싶었던 "로마인 이야기"가 왜이렇게 지루하게만 읽히던지.


6. "최후의 신조/선택하지 않은 길 - 장르라고 부르면 대답함 중에서" - 대체 역사 소설의 왕이고 할 수 있는 해리 터틀도브의 단편 중 국내에 번역 소개된 근작입니다. 둘 다, "나치가 영국을 이기고 식민지 인도를 넘겨 받았다면" "다른 기술은 떨어지는데 우주 항해능력만 뛰어난 외계인과 지구인이 최초의 만남을 이루었다면" 이라는 중심소재. 그 소재 자체의 흥미거리로 돌진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소재 자체의 흥미로 사람을 사로잡는 솜씨에 비해, 중반, 결말은 그냥 제 갈길로 주욱 간다는 느낌이라서 단조롭다면 단조로운 맛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소재를 잘 잡아서 딱 정석대로 펼쳐 놓은 자체가 얼마나 재미났는지 모릅니다. 해리 터틀도브 소설만 있는 국내 번역작이 "비잔티움의 첩자"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 부아가 치밀만큼 재밌던 단편들이었습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이렇게 읽을 때 자체가 재미난 책만 정말 재미있는 책은 아닐 겁니다. 책보다 분량이 줄어드는 게 아깝지는 않고 그냥 느긋하게 본 책이라고 하더라도 감격이 더 큰 책도 있고, 보고 나서 계속 계속 또 찾아 보게 되는 책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는 자체가 너무 즐겁고 이야기 속에 빠져 있는 자체가 너무 신나서 남아 있는 분량이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의 느낌을 받는다는 것도, 이번에도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분명히 굉장한 마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러분께 여쭙습니다. 제 고교시절의 친구는 "무협지 빌려 볼 때 그런적 많았다"고 했습니다만, 무슨 책이건, 무협지나 판타지물이나, 만화 중에서도 그렇게 재미나게 본 책이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그런 느낌을 느끼면서 보신 책이 있었다면 무엇이었습니까?

    • 영웅문..그러니까 김용의 사조삼부작이요
    • "영웅문"은 영웅문 시절에 "사조영웅전" 부분을 꽤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김용 시리즈 최대 걸작이라고 손꼽히는 "천룡팔부"와 "녹정기"를 올해 좀 읽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천룡팔부는 1권은 그럭저럭 재미나게 읽었는데 2권부터 이상하게 재미가 없어서 못나가고 있고, 녹정기는 시작부분에서 계속 막히고 있습니다. "의천도룡기"나 "신조협려"는 시작 부분이 흥미진진했는데, 녹정기를 보자니 저는 시작부분이 자꾸 좀 안읽힙니다.
      • 녹정기는 저도 읽기 힘들었습니다..
    • 만화요 '도로헤도로' 처음 봤을 땐 너무나 낯설고 기괴한 만화 속 세계관에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먹었지만 보면 볼수록 재밌었습니다 더불어 보면 볼수록 여주인공이 예뻐 보이는 신기한 경험 ㅎㅎ
    • 남은 거 줄어드는 거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다 읽어버리는 단편보다는 장편이 그런 책이 많은가 봅니다. 삼국지나 토지, 반지전쟁같은 책들이 그랬어요. 픽션들도 정말 재미있었어요.
    • 저도 영웅문. 책읽느라 날새는 줄도 몰랐던 건 이때가 처음이었군요.
      녹정기는 팬들사이에서도 호불호가 좀 많이 갈리는터라...전 소오강호를 권해드리고 싶군요.
    • 이 만화의 여주인공은 슬램덩크의 채소연이나 드래곤볼의 부르마처럼 남주인공의 보조격 인물이 아닙니다 남쥔공과 함께 만화를 이끌어나가는 핵심적인 인물 싸움도 엄청 잘해요 ㄷㄷㄷ
    • 저는 '장미의 이름'과 '쥬라기 공원'이 그랬습니다. 쥬라기 공원은 친구네 놀러가서 밤새우면서 읽었죠.
    •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과
      엊그저께 구입한 이토 준지의 '욘&무'요. 2권 안 나오나? *_*
      참, 충사도요.
    • 십이국기- 도남의 날개 편이요. 지금도 종종 봅니다.
    • 가장 최근엔 '빌리배트 1권'
      2권도 얼른 나와야할텐데.
      현기증 나요.
    • 독짓는젊은이/ 아, 저도 충사요!!!!
    • 닥터슬럼프 / 빌리배트 2권 지난 달 말에 나왔어요.

      충사 받고 우주 형제 하고 절대가련 칠드런 올립니다.
    • 몰락하는 우유/ 헐! 감사 ㅋ
    • 유리가면................
    • 전 곽재식님의 '모살기'요. 스크롤이 점점 내려가면서 남은 분량이 얼마 안 되는게 어찌나 안타깝던지요. ^^;
    • 장융 교수의 '대륙의 딸들 Wild Swans'
      피에르 신부의 '단순한 기쁨'
      최정현 '반쪽이의 육아일기'
      프랜시스 윈 '마르크스 평전'
      그리고 한비야씨 여행기들이요.

      일단 생각나는 것은 이 목록이네요.

      그리고 곽재식님 오랜만에 글 올리셨네요. 반갑습니다! 모살기도 아껴놓고 있습니다. :)
    • 전 결말이 완벽한 스토리에 집착하는 스타일이라서, 재미있는 글일수록 읽는 속도를 가속화해 어떻게든 결말을 보고 나서야 만족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책장 넘어가는게 아까워요' 이런건 없는 것 같습니다.
      근데 단편소설집의 경우 아, 몇 편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라거나 이 사람 책 몇 권 더 읽고 싶어, 이런 건 있는 것 같아요.

      다카하시 카즈히토라는 일본 추리소설 작가의 글. 우리나라에 샤라쿠 살인사건이랑 붉은기억(현재 절판)밖에 번역이 안돼 있어 너무 아쉬워요. 스타일이 워낙 왜색이 짙어 번역이 어렵다고 하던가? 그랬던 것 같은데,,
      더글러스 애덤스의 '마지막 기회' - 멸종위기 동물들에 관한 생태보고서? 뭐 이런 에세이류인데, 더 많은 동물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주셨으면 좋겠지만, 돌아가시기도 했고 느무 아쉬워요. -_ㅠ
    • 픽션들 처음 봤을때의 그 충격과 떨림은 잊을 수가 없더군요.
    • 덕분에 모르고 있던 책 몇 권 알게 됐네요. 당장 사봐야겠습니다.
    • 켄 폴레트의 야하기로는 인류가 쓴 대하소설중 최고임에 분명한 '대지의 기둥'
      하인리히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김용 버전의 할리퀸 로맨스인 '신조협려'
      스티븐 킹의 'It'
      미카엘 엔데의 결국에는 끝이 있었던 '네버 엔딩 스토리'
    • 이 와중에 '먹는게 줄어드는게 제일 아까워...'라고 딴 생각해봅니다.ㅠㅠ
    • 다크타워 시리즈 3권하고 남쪽으로 튀어,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요.
    • 전 존 어빙의 책들. 특히 <사이더하우스>
    • 저도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읽어갈수록 읽을 분량이 줄어드는게 아쉬웠어요
      이영도의 오버 더 호라이즌도 아까웠죠. 더더 더 많은 에피소드를...이럼서
      최근에는 생물과 무생물 - 아까울 정도는 아니지만 재미있어서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다 읽었네요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님의 대화도 첫장을 펼치자 손에서 책을 떼 놓을 수 없었던 책이었어요. 기가 찬 근대 한국사에서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의 선생님의 인생과 굽히지 않는 치열한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지요.
    • 전 학창시절에 읽었던 <퇴마록> 이요.
    • sunset / 우왓 반갑네요. 저도 그 책 쓰려고 하고 있었어요. 그 두꺼운 책이 더 두껍지 않은 게 너무나도 서운했더랬습니다;_;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드래곤 라자,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
    • 바람의 그림자랑 푸코의 진자요.
    • <올리브 키터리지> 책장 덮고도 아- 했어요.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등장인물에 매력을 느끼게 되면 더 그런것 같아요. 마치 매력적인 사람보면 더 알고 싶듯이. 그런 의미에서 존 어빙책도 좋아해요. 특히 가아프.
    • 이사벨 아옌데의 <운명의 딸>이요.
    • liveevil / 켄 폴리트의 <대지의 기둥>은 재미있는 책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야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예전에 <사나운 새벽>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나온 걸로 봤는데 옛날 판본이라서 잘린 게 있었을까요?
    • 얼마전에 읽은 파묵의 <순수 박물관>이요. 어릴때 맛난 음식 없어지는게 아까워 맨 마지막에 먹던 그런 느낌이었어요.(사실 맛난건 배부르기 전 제일 먼저 먹는게 좋은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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