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역덕후의 쇼핑몰 - 어느 젊은 혁명가에게 바치는 애가

루이 앙투안 레옹 드 생 쥐스트(1767~1794)의 초상, 피에르 폴 프뤼동, 1793년, 리용 박물관 소장
.....프랑스는 공화정이다. 이는 불가분의, 나눌 수 없는 하나의 공화국....공화국의 원리는 자유와 인민주권이다.....
오늘날 프랑스 헌법의 전문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이죠. 이 문구는 바로 혁명가 생 쥐스트가 본인이 저술한 <프랑스를 위한 헌법>, <프랑스 혁명과 헌법정신> 전문에 명시한 문장입니다. 생전에 보인 과격한 정치적 행동과 극단적 선언으로 지금도 이 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양 극단을 달리지만 이 문장 몇 구절만 봐도 그가 일생 가졌던 공화국 정신과 시민적 자유관 그리고 공화국에 대한 이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스물 여섯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사람이지만.... 생전에 그가 이뤄놓은 일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가히 숨이 막힐 정도이군요.
영화 <프랑스 대혁명(1989)>에서 로베스피에르와 대화하는 생 쥐스트 (크리스토퍼 톰슨)
이 영화는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해서 특별히 만들어진 (그러니까 헐리웃의 감독과 각본가와 스타들을 전격 기용해서) 작품입니다. 당근 말도 많았죠. 당시는 대혁명에 대한 수정주의적 해석이 한참 기세를 올릴 때라 200주년 기념 역사 학회도 반토막이 나서 (수정주의 학자들이 격한 논쟁 끝에 아예 학회에 불참해 버리는 사태가...-_-;;) 이런 마당에 영화판이라고 조용할리가 없었죠. (요약하면 당통을 영웅적인 혁명가로, 로베스피에르나 생 쥐스트는 무슨 독신 사이코들처럼 묘사해놨다고 비판이 상당했습니다. 뒤의 두 사람은 공포정치라는 여전히 논쟁적인 행적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해석도 유효할 수 있긴 합니다만, 당통을 영웅적으로 묘사한 건 역사왜곡이죠...-.,-...)

생 쥐스트는 1792년 의회에서 국왕 루이 16세의 처형을 강력히 주장하는 연설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 직업이 국회의원이라는....;; 지방 법원의 검사 출신이기도 하죠)

역사학자 미쉴레는 그에게 '죽음의 대천사'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대혁명기 공포정치의 모든 책임을 생 쥐스트와 몇몇 정치가들에게만 돌릴 수는 없겠지만 혁명 그 자체를 구하는데는 그 길 밖에 없었을 거라는 역사적 결론이 나오고 있으니 뭐라 할 말이 없군요.
생 쥐스트는 로베스피에르 그리고 쿠통과 함께 공포정치기 삼두체제를 주도한 혁명가입니다. (이 분 역시 지방 출신 변호사 - 한 때는 판사이기도 했고) 주명철 선생(서양사학자, 프랑스 혁명사)은 언젠가 이들을 가리켜 '국회의원들'이라고 했습니다. 프랑스 혁명기는 어느 때 보다도 국회의원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시기였습니다. 이들의 혁명적 이상과 방안은 모두 국회에서 논의가 되고 법안이라는 형식이 되어 국가를 움직이는데 근본 동력이 되었습니다. 서구 역사에서 무엇보다도 의회가 행정부를 능가하면서 국가에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는 유례없는 시대가 된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행정부란, 국왕과 귀족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기존 왕정의 행정부를 말합니다. 부언하자면, 혁명으로 행정부의 기능이 정지되었기 때문에 의회가 단순 입법의 역할만이 아닌 행정 집행의 일까지 도맡게 된 것이라는 얘깁니다. 그리고 이런 권력 구조는 혁명정부 내내 지속되게 됩니다.

로베스피에르와 생 쥐스트는 법률가 출신 국회의원답게 오늘날에도 프랑스 헌법과 숱한 법령들에 그들의 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나폴레옹 제정기에 이뤄진 민법전은 이들이 만든 행정법에 여전히 근거하고 있구요. 더 기가 막힌건 현재 한국의 헌법을 비롯한 법령들도 이들이 만든 프랑스 혁명 법전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본을 거쳐 들어온 독일 법이 행정법의 영역에서는 대혁명 시기의 프랑스 법전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겁니다. (일례로 지금도 종종 언론에 오르내리는 공직자의 품위 유지에 대한 법령 말입니다. 가끔 공직자들이 매춘을 한 혐의로 적발이 되서 곤욕을 치르지 않습니까...사실 전 이게 정말 궁금했어요. 공무원들이 성매매를 하다가 적발이 되면 처벌하는 조항이 있는데 대체 이게 어디서 기원이 된 법일까...한국이나 일본이나 그냥 만든것 같지는 않은데...그런데 그 기원이 여기 이 분들이더군요. 로베스피에르는 혁명가들 - 국회의원을 비롯한 공직자들 전부 - 즉 국가의 공무를 수행하는 자들은 모두 청렴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어서 성매매도 할 수 없도록 행정법에 규정했는데 이 조항이 놀랍게도 그대로 나폴레옹 법전에 계승이 되었고 독일을 거쳐 전 유럽의 근대 행정법에 초안을 이루면서 (물론 일본을 통해) 오늘날에 한국의 행정법에도 이르렀다는 겁니다.
이렇듯 수 백년전에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났던 일인데도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적지않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을 돌아보다 보면 그 역사적 연속성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그런데....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된 쇼핑몰입니다.....
언젠가 좀 심술이 나서 프랑스 명품 좋아하신다는 분들께 "그럼 프랑스 혁명도 좋아하세요?" (여기 듀게에서 어느 분이 한 얘기죠 ㅎ) 라고 물어본적이 있었는데 이런 쇼핑몰이 다 있네요.
멋지군요.





그래서 현시창이라는 말이…
자신도 단두대에서 끝났군요.
어쩔 수 없죠 뭐…공포정치 기간에 손에 묻힌 피가 워낙 대단해서…그런데 깨는 건 생 쥐스트와 로베스피에르를 죽인 저 반동파들도 이들 못지않은 공포 정치의 주역들이란 겁니다.
생쥐스트의 저 유명한 초상화는 피에르 폴 프루동의 작품 아닌가요?
여기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도트로슈의 작품이라고 나와있는데요. 출처는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입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409929&cid=46702&categoryId=46753
그런데 도트로슈는 19세기에 이 초상화를 그렸으니까 프뤼동이 그린 원전을 모사한 그림인가 보군요. (프뤼동과 생 쥐스트는 동시대인이니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생쥐스트에 대한 가장 멋진 묘사는 김혜린의 <테르미도르>에 나오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루이는 루이인 것만으로 죽어야한다..." 생 쥐스트의 저 대사는 바로 1792년 국민공회에서 한 연설에서 따 온 것입니다. 국왕 루이 16세의 처형을 촉구하는 의정연설 중에 나온 얘기인데, 대충 요지는 ....전제군주는 군림하던가 아니면 죽든가 둘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었죠. 그는 공화국 체제에서 왕이 살아있다는 것은 곧 혁명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부언도 했는데, 전제왕정 세력과의 싸움에 배수진을 친 그의 단호한 심정을 엿볼 수 있죠.

...단일이자 불가분인 공화국(생 쥐스트)
...자유, 평등, 박애 아니면 죽음 (로베스피에르)
공화국 헌법 전문이 무슨 시 한수 읊는것 같습니다. 김혜린이 테르미도르에서 이 시절 이야기를 정말 아름답게 그린듯.
김혜린은 생 쥐스트가 유제니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그의 마지막 나날을 그렸죠. 물론 이 에피소드는 가상으로 만든 것인데, (저도 그 장면에서 묘사된 생 쥐스트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베스피에르마저도 순교자 이야기를 꺼내는 마당에 자신이라도 정신차리고 중심을 잡아야겠다는 얘기가 인상깊게 남더군요. 실제 역사에서 그는 정말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공포정치에 헌신했고 (테르미도르 9일째가 되는 운명의 날 직전까지도 방토즈 법(빈농에게 반혁명파의 재산을 몰수하여 무상분배하는 토지개혁법)의 단서조항들을 수정 보완하는데 총력을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법이야 말로 공포정치를 계속 속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해서... 이런 행적은 후세의 학자들 - 미쉴레(19C)부터 한나 아렌트(1906~1975)에 이르는 보수주의 성향의 - 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죠. (로베스피에르는 인권 변호사 출신답게 이 기간 죽어간 사람들 때문에 진심 슬퍼했었는데 말이죠. 심지어 공공장소에서도 종종 우는 모습을 보일 정도...)
김혜린의 작품 속에서는 정말 멋지게 그려지긴 했는데, 역사 속의 실제 인물 생 쥐스트에 대해서는 더 많이 알아보고 더욱 더 다각적인 면에서 살펴봐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저 분은 정말이지 너무나 젊은 나이에, 역사에 너무나 큰 발자국을 제대로 남기고 갔으니 말입니다.
초상화가 참 앳되보이네요. 첫인상으로는 카일로 렌이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