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대극)
1.휴...너무 많이 말하는 것 같지만 심심하네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심심함이라는 것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것 같아서요. 부슬비 같은 심심함이 아니라 초당 10회씩 몸에 쏟아지는 듯한 심심함이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되어가듯이 나도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것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거든요.
2.이럴 때는 가끔 최고로 빛날 수 있었을 나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해요. 지금의 내 모습이 최고로 빛나는 나의 모습이라곤 여기지는 않아요. 이 메가로폴리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잠재력을 북돋워 주는 곳은 아니니까요. 욕망을 부추켜주는 건 잘 하지만요.
빛을 끌어내지 못한(또는 끌어내지지 못한) 사람이 뭘 하면서 살겠어요. 다른 사람의 노력을 비웃고, 다른 사람의 진지함을 비아냥거리기나 하면서 사는 거죠. 비아냥거리기나 하고, 작은 모욕은 절대로 참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잔인하게 보복할 궁리나 하며 살다가 끝날 거예요. 메가로폴리스의 주민이 되어버린거죠.
3.누군가는 이럴 수도 있겠죠. '빛이 끌어내지지 않다니...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왜 환경 탓을 하는 건가?'라고요. 흠...글쎄요.
만약 손석희에게 박근혜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손석희는 어떤 세상에서 살았던간에 좋은 언론인이었겠죠. 하지만 박근혜에게 파괴된 세상이 없었다면 손석희가 얼마나, 어디까지 빛날 수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을거예요. 손석희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아무도 모르고 끝났겠죠.
나는 누군가의 진가가 끌어내지려면 그자의 진가를 끌어낼 수 있는 대극이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4.휴.
5.'그럼 적당한 대극만 주어졌으면 너도 진가를 보일 수 있는 사람이었단 건가?'라고 묻는다면, 그야 모르죠. 아무도 모를거예요. 나를 '잘' 몰아붙이는 무언가가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말이죠.
굳이 '잘'을 붙이는 건 나는 레이스가 조금만 안 될 것 같으면 경기장을 나가버리는 사람이니까요. 뭔가...내가 결코 떠날 마음이 들지 않는 단 하나의 경기장을 만나서 끝까지 레이스를 펼쳤다면 결국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곤 해요. 빛을 발할 수 있었을지, 아니면 그 바닥을 떠도는 유령이 되어버렸을지요. 가끔 유령이란 표현을 쓰는데 유령은...그곳을 새로 찾아오는 자들에게 '난 저렇게 되지는 않을 거야'라고 여겨지는 그런 사람을 칭할 때 내가 쓰는 표현이예요.
6.왜 이런 글을 쓰는 거냐고 묻는다면 빛은 중요한 거거든요.
자신에게 빛이 있다고 믿고, 그 빛을 언젠가는 자랑할 수 있을거라고 믿으며 살던 시기가 끝나면 그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거죠.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류의 헛소리와는 다른 거예요. 어쨌든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는 거죠.
요즘은 그래서 다들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버리는 건가 싶기도 해요. 책임감이라도 가져야 인생에 의미를 느끼며 살 수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닐까 하고요.
7.오늘은 압구정에 갔어요. 무슨 갤러리가 있었는데 들어가서 비웃는 말을 해볼까 하다가...발끈해서 내게 덤벼들 다혈질인 남자 작가가 안 보여서 말았어요. 그런 게 없으면 조소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8.어쩌겠어요. 이제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됐어요. 언젠가 말했던 '카지노의 유령'이 되지 않기 위해서요.
빛나는 것에 대해 빛이라고 명확하게 단정하지 않습니다.
달의 빛이 태양빛이건 혼자 내건, 그러니 빛이 뭔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