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의 이야기...(증명)
#.여기 등장하는 욕은 내가 쓰는 욕이 아니예요. 누군가 했던 걸 그대로 옮긴 거죠.
1.한동안 Q와의 관계가 깨져 있었어요. 여기서 깨졌다는 건 나빠졌다는 게 아니라 그냥 깨진...사라진 거예요. 이유는 두 가지죠. 1-충분히 봤고, 2-결혼하지 않을 거니까요. '않을'라고 쓰니 좀 우습네요. '못할'이라고 바꾸는 게 낫겠죠. 어쨌든 더이상의 관계 진전이 없을 사람은 안 보게 되잖아요. 다들 그러는 것처럼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죠. '진전이 있든 없든 모처럼 구축된 관계인데 유지하면 되지 않나?'하고요. 하지만 아니거든요.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돈이 나가는 사이라면, 또는 돈을 들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관계가 깨지는 사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거죠. '유지비를 내지 않으면 유지되는 않는'관계인 거니까요.
2.그러다가 Q에게 연락이 왔어요. 3개월 된 키핑 술이 있다고요. 킾술이 3개월 지나서 없애버려야 하는데 와서 마실 거면 좀 더 두겠다고요.
(경험에 비추어 보면)그야...이건 뻔하죠! 이런 종류의 건 빌어먹을 계략인 거예요. 원래 키핑 술을 없앨 땐 저런 통보같은 건 하지 않거든요. 그동안 알아서 잘 없애버리던 술을 내가 나타나지 않으니 없애도 되냐라고 물어본다...? 이건 의도가 하나밖에 없잖아요. 와달라는 말을 직접 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니 좀 돌려서 말하는 거예요. 음...100%라는 건 세상에 없으니 98%라고 해두죠.
그래서 요즘 그럴 돈이 없으니 과일안주를 공짜로 주고 TC도 빼주고 키핑비도 없는 걸로 해주면 가서 마시겠다...즉 안간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그러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저렇게 말을 하니 한번 가보기로 했어요.
3.(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야 알고 있었어요. 가게에 가면 어떻게든 올가미를 조여올 거라는 거요. 그런데도 간 건 호기심 때문이었어요. 어떻게 생긴 올가미를 던져 올지, Q가 조여오는 올가미를 내가 잘 피할 수 있을지가 궁금해서 간 거죠. 어쨌든 가게에 가니 y가 사장님이 기다리고 있었다며 테이블이 아니라 방으로 데려갔어요.
Q는 뭐...선물도 사오더니 그동안 왜 오지 않았느냐는 뭐 그런 말을 했어요. 그래서 그럴 돈이 없었다고 대답했어요. 한데 말하고 나서 Q에게 이 말을 했었다는 걸 떠올렸어요.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요. '돈이 없다'와 '그럴 돈이 없다'는 매우 다른 말이라는 걸 Q에겐 말했거든요. 이건 보통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지만...그 말을 할 땐 Q의 가게에 평생 올 줄 알았으니까요. Q가 그랬냐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아직 그 말을 기억하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말하는 도중에 Q가 '요즘은 어디서 술 마셔?'라고 물어봐와서 Q가 아직 그 말을 기억하고 있거나, 아니면 눈치로 저 말을 알아차렸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어쨌든 뭐...늘 지껄이는 자의식 넘치는 이야기는 안 했어요. 이제 여기선 내 헛소리를 누군가 들어 줄 이유가 없는 거니까요. 대신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줬어요.
그러다가 Q는 다른 곳에서 자신을 찾는다며 잠깐 갔다오겠다고, 새로 취직한 직원을 소개해줬어요.
4.휴.
5.새로 취직했다는 직원이 어색해하는 것 같아서 나는 신경쓸 필요 없다고 했어요. 그러자 직원이 '사장님이랑 많이 친하신가봐요.'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뭐라고 해야 거짓말이 아닌 건지 생각해보다가...대답했어요. 전혀 친하지 않다고요.
직원은 뭐...전형적인 어린 나이대의 직원 같았어요. 일하러 온 게 아니라 놀러 온 것처럼 밝고 까불거리는 종류의 직원 말이죠. 일하러 온 곳에서 그렇게 굴어도 문제삼아지지 않는 건 아마 그 나이대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겠죠.
직원은 Q의 외모를 잠깐 찬양하며 자신의 관점에 대한 동의를 구하더니 '그런데 사장님이랑 왜 안 친해요? 친하면 좋잖아요.'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조금 생각하다가...정확한 답을 찾아내서 말해 줬어요. '내게 권력이 모자라거든.'
6.킾술들이 좀 많아서 결국 다 먹진 못했어요. 하지만 Q의 가게에 와서 또 킾술을 먹는 건 민폐고...그렇다고 이걸 들고 가져가기도 좀 그래서 남은 건 없앴어요. 사실 Q가 중간에 영업을 시전하거나 새로 왔다는 직원에게 영업하도록 시킬 줄 알았는데 끝까지 영업을 안 해서 정말로 그냥 가게 됐어요.
정말 아무일도 없이 이대로 가는건가...그래도 Q는 98%가 아니라 2%였다보다 하며 문 밖으로 걸어나가는데 Q가 따라나와서 'XX이(방금 전의 신입) 택시비는 챙겨주고 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싫다고 했어요. 이 세상엔 고소득자에게 택시비를 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나는 아니니까요.
아니 사실...이게 정말 택시비라면, 말 그대로의 택시비라면 줬을 거예요. 하지만 여기서 택시비라고 하는 건 택시비라는 말로 포장됐지만 사실은 택시비가 아닌 그런 돈이니까요. 그리고 여기서 '택시비를 줘라'라고 할 때 정말로 택시비 만큼의 돈을 줘버리면 안 주느니만 못 한 역효과가 나는 거거든요.
7.Q가 한번 더 신입에게 택시비를 챙겨 주라고 하고 나는 한번 더 싫다고 했어요. 그러자 Q는 '쟤한테 내가 아끼는 손님 보여준다고 부른 건데. 그냥 가면 내가 뭐가 되냐.'뭐 이런 말을 했어요. 그래서 지금 내가 작은 기싸움에 휘말려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5초 정도 가만히 있자 Q는 '은성이가 오늘 나 완전 씹창만드네.'라고 중얼거렸어요. 그리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내게 건넸어요. 이걸 네가 신입에게 주는 걸로 쇼 한 번 해달라고요.
그 돈을 받아서 직원에게 줬다면 Q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끝낼 수 있었겠지만...아무리 그래도 Q의 돈을 받아서 건네는 건 너무 처량한 일 같아서 내가 택시비를 주겠다고 했어요. 하긴 Q는 내가 물렁한 녀석이란 걸 잘 알고 있으니 저런 행동과 말까지도 내가 택시비를 꺼내게 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었겠죠.
8.처음부터 그냥 택시비를 줄걸...하고 두 가지가 후회됐어요. 첫째는, 어차피 택시비를 주게 될 거였으면 방금 전에 겪은 작은 소요는 생략해도 됐을 거였으니까요.
두 번째는...젠장, Q가 나에게 건네려던 돈은 내가 적절한 택시비라고 여기던 것과 차이가 꽤 있었거든요. 아예 그걸 보지 않았다면 내가 책정한 금액을 어린 직원에게 줬겠죠. 한데 'Q가 이 상황에 알맞다고 책정한' 택시비를 이미 봐 버린 이상 Q의 인식에 맞춰줘야 했어요. 위에 말했듯이, 이건 택시비가 아니니까요. 불리기만 그렇게 불릴 뿐이죠. 약간 아이러니한 건 직원에게 건네는 택시비로 나의 평판이 매겨지는 게 아니라 Q의 평판이 매겨진다는 거였죠. 나의 평판을 매기는 자리였다면 택시비 따윈 주지 않았을거예요.
직원에게 택시비를 주는데...그 돈으로 할 수 있을 다른 많은 일들이 생각났어요. 아니...보통은 많이 생각할 필요 없거든요. 얼마였냐고요? 그 택시비를 본 직원의 리액션은 '고맙습...우와!'였어요. 젠장.
9.Q가 나를 바래다 주기 위해 따라나왔어요. '이봐...쟤한테 택시비를 안 줬어도 넌 씹창나지 않았을거야. 네 가오가 말이지.'라고 말하려다가 헛소리 같아서 말았어요. Q가 나에게 조언해줄 것이 없듯이 나도 Q에게 조언해줄 것이 없으니까요. 왜냐면 우리는 가지고 살아가는 밑천...자본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니까요. 자본이 다르다는 건 원하는 걸 손에 넣는 방법이 다르다는 거고요. 그러면 결국 모든 게 다른 게 되는 거죠. 언젠가 썼듯이 완전 다른 사람인 거예요.
그날은 돌아오면서 증명에 대한 것들을 생각해 봤어요. 보스 노릇을 하는 사람조차도, 심지어는 수없이 자신을 증명했던 사람조차도 자신을 증명하는 것에 신경쓰는 걸 말이예요.
수없이 자신을 증명했던 사람이, 자신이 부른 사람이 자신을 증명시켜 주지 않으면 '씹창난다'라고까지 말하는 걸 보고 나니 Q가 생각하는 증명의 유효 기간이란 건 다른 사람에 비해 정말 짧은가보다 싶었어요.
------------------------------
...그러고보니, 유지비를 내지 않고도 유지되는 관계는 없긴 하네요. 뭘 지불하는지 얼마나 지불하는지가 다를 뿐이죠.
위에 쓴 욕은 '초라하게 만드네'로 순화해서 썼었어요 원래는. 그 상황을 직접 보지 못하고 말만 보면 안 좋게 보일 테니까요. 하지만 결국 그대로 썼어요. 정확한 기분을 전달하기 위해 쓴 말일 뿐이니까요. Q의 그런 말들은 얼마 전 듀게에 썼던 '야생의 표현'이라는 걸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택시비가 얼말까 나름 생각해봤는데 우와 한걸 보니 조금 더 많은 듯.
자신 있게 자기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따지면 전부 모순이고 거짓말이죠.
그런건 따지지 않고 사는걸 따지니 그런 결과의 이야기 밖에 할게 없지만.
따지지 않는 이야길 하니 역시 도데체 무슨말인지가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