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디악을 두 번째 보고

  데이비드 핀처의 조디악을 두 번째로 보았어요. 첫 번째 볼 때도 매력적이지만, 두 번째 볼 때 더 매력적인 영화였어요. 최근에 이동진&김중혁 영화당에서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 특집을 다루었는데, 두 분 모두 조디악을 핀처의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뽑았어요. 제가보기에는 이동진 씨가 견해가 바뀐 것 같아요. 조디악 처음 나왔을 때 별점을 4개 밖에 안 주었는데, 최근에 왓챠에 보니 5개로 별이 올라갔더라구요. 그런데 전 이해해요. 조디악은 진짜 두 번째 볼 때 더 재미있는 영화에요.


 전 조디악이 살인의 추억보다 훨씬 잘 만든 것 같아요. 살인의 추억도 두 번 보았는데, 뭔가 감정만 잔뜩 폭발시킨다는 느낌이 강해요. 조디악과 같은 건조하고 드라이한 리얼리즘 계통 영화를 제가 좋아해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제가 보기에는 우리나라에서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를 만들면, 결국은 살인의 추억과 같은 작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 조디악을 보면, 이건 미국에서만 만들 수 있는 영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과 스포트라이트 같은 영화를 만든 내공이 있는 나라에서 말이죠. 이런 리얼리즘 거의 초기작중에 92번가의 집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혹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과 조디악, 스포트라이트 좋아하시는 분들은 좀 오래됐지만 92번가의 집 찾아서 보세요~

    • 말씀하신 영화당 보고나서 조디악 봤는데 왜 핀처의 최고작으로 뽑았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미국적인 영화라는데 동의하고도 또 동의합니다. 하지만 저는 언젠가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더군요. 그만큼 좋은 영화였습니다. 말씀처럼 언젠가 다시 봐야 할 거 같네요.

      • 임순례 감독의 제보자가 비슷한 톤이긴 한데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 저도 <살인의 추억>보다 <조디악>이 훨씬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살인의 추억>에서는 송강호의 유머나 김상경의 심각함이 좀 과해서 영화의 흐름이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조디악>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서서히 긴장감을 고조시켜가는 프로의 향기가 느껴졌고요. 저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다른 영화들은 (파이트 클럽 외에는) 별로 인상 깊게 보지 않아서 ^^ <조디악>에서 보여준 감독의 테크닉이 이 영화를 좋은 영화로 만든 전부인 것 같지는 않아요. 만약 <조디악>의 주제가 <살인의 추억>의 영향을 받았다면 오리지널에 어느 정도 빚 지고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 조디악은 저도 최고로 손 꼽는데 이걸 두번 볼 엄두는 안 나네요.


      보는동안 내내 숨이 턱턱 막혔는데, 처음 관람 후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깊게 남아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 저도 조디악을 보고 경탄해 마지 않았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92번가의 집 추천 ㄳ ㄳ

    • 안 그래도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조디악에 비하면 자신의 작품은 유치원 어린이가 똥 싸는 수준이라고 뭐 그런 비유를 했더랬습니다. 

      • 아, 그 말은 조디악과 살인의 추억을 비교한 것이 아니라, 세븐과 조디악을 비교하면서 봉준호 감독이 한 말이었어요~

        • 아 그랬던가요. 근데 그 인터뷰에서 살인의 추억 얘기도 하지 않았나요. 자신을 엄청 낮추면서 계속 조디악 칭찬을 했던거 같은데 

          • 두 분 말씀 다 맞아요.


            허문영 : 아까 연쇄살인범 장르의 5대 걸작 말씀하실 때 〈조디악〉을 포함시켰잖아요. 〈조디악〉이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 〈씨네21〉의 모 평자가 20자평에서 "왜 〈살인의 추억〉이 훌륭한지 알겠다"라고 썼던 게 기억납니다. 그 논평을 보면서 정작 〈살인의 추억〉을 만든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 까 궁금했습니다.


            봉준호 : 〈조디악〉의 살인범은 제가 알아요. (모두 놀라자) 아, 물론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일동 웃음) 알고 지냈다는 게 아니라, 워낙 연쇄살인범 리서치를 많이 했잖아요. 굉장히 슈퍼스타급 살인범이거든요. 그런데 핀처가 그걸 다룬다니까 흥분했지요. 〈쎄븐〉도 물론 멋진 영화였지만 〈쎄븐〉을 보다가 〈조디악〉을 보면 〈쎄븐〉은 완전 아기 영화, 유치원 애가 똥 싸는 영화예요. 두 영화 사이의 그 12년 동안에 이 사람이 무슨 일을 껶었기에 저런 거장의 리듬, 호흡을 갖췄을까. 좀 다른 의미가 되겠지만 저는 〈소셜 네트워크〉도 재미있게 봤거든요. 말로 하기 참 어려운데, 그런 리듬이라는 문제가 논리적인 분석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 같아요. 폴 토머스 앤더슨의 〈펀치 드렁크 러브〉를 봐도 그래요, 물론 저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고 저하고 차이가 있다면 약을 좋아한다는 거! 현장에서 약을 하다가 모니터 앞에서 막 쓰러지고 그런대요. 〈펀치 드렁크 러브〉도 완전히 약 영화지요. 약기운으로 완벽한 영화를 찍은 거다, 라고 저를 자위하죠. 완벽한 리듬의 음악을 보는 것 같은 거지요. 단 한 프레임을 늘리거나 줄일 것도 없는 것 같은 느낌. 편집뿐 아니라 숏의 설계나 사운드라든가, 어어 하다가 끝나버리거든요. 〈조디악〉도 그런 경험이었거든요. 〈조디악〉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느릿하고 그 어떤 흥분이 없어요. 〈살인의 추억〉은 어떻게든 흥분시켜보려고 아등바등 애를 쓰잖아요. 감정적이고 질질 싸고. 〈조디악〉은 차분히 가라앉아서 리듬을 장악하는데 완전히 충격이었어요. 〈쎄븐〉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이 사람은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 사람 영화야 늘 재미는 있었지만 〈조디악〉 보고 호흡이나 리듬이 정말 부러웠어요. 놀라운 경지였어요. 마지막에 제이크 질렌홀이 상점에 가서 남자가 일하고 있는 걸 보고만 나오잖아요. 그 행위만 보면 얼마나 심심한 행동인지. 하지만 그 영화를 2시간 넘게 보면 주인공이 조용히 범인을 대면하고 뒤돌아 나올 때 그 뒷모습에서 묵직한 바위 같은 느낌이 있더라고요. 화성살인사건을 다시 찍는다고 하더라도 난 결코 그렇게 찍을 수는 없겠다라는 생각도 들고. 리듬을 장악하는 게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결국 그런 거 못해보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마크 러팔로 등 배우들도 놀랍지만 감독이 더 놀라웠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냥 그렇게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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