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석상에서 불편한 이야기 하기 - 베르사이유 특별전(2010년)

(그런데 정작 화면에 보이시는 분은 왕비가 아니고...퐁파두르 부인입니다.)




지난 2010년 서울에서 열렸던 <베르사이유 특별전> 도록 머릿말을 읽다가 흥미로운 구절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장 자크 아야공, 국립 베르사이유 궁 대표의 인사말이었죠.

장 자크 아야공 대표는 전직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기도 합니다. 그의 인사말은 베르사이유 소장 미술품에 대한 평범한 소개글로 시작하는데, 한국과 프랑스의 역사적인 인연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실은 여러 분들도 아시겠지만, 한국과 프랑스의 첫 만남은 그렇게 즐거운 것이 아니었죠;;
구한말 대원군 정권 때 프랑스 선교사 9명을 처형한 결과 - 조선인 천주교 신자는 8천명이나 처형했지만 - 프랑스 함대가 쳐들어왔고 그게 바로 병인양요(1866년)
(그 때 강화도의 외규장각이 털렸고 프랑스 군이 고서들 털어간 건 어쩌려고…―,.― )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프랑스 국립 베르사이유 특별전이 오는 5일부터 내년 3월 6일까지 서초동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된다. 4일 오전 프레스오픈을 통해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베르트랑 롱도 프랑스 국립 베르사이유 궁 전시 커미셔너, 홍성일 지엔씨미디어 대표, 장 자크 아야공 프랑스 국립 베르사이유 궁 대표, 정동혁 예술의전당 사업본부장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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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 얘기를? 했는데, 역쉬 정치가답게 잘 비껴나가더군요…그리고 그가 한 이야기,

" …그러고 보니 한국과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닮은 점이 많은듯 합니다. 특히 10세기 무렵, 한국의 역사에서 918년에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웠을 때, 프랑스에서는 카페 왕조가 987년에 나라를 통일했었지요…"

읭? 진심 뭥미스러웠습니다;;

경사스러운 자리에 굳이 지나간 역사의 불편한 얘기야 할 필요는 없지만, 왜 최초의 통일 왕조 얘기를? 그것도 같은 시기라 해봤자 하나는 10세기 초, 하나는 10세기 말경인데…;; 그것도 시기만 비슷했지 아무 연관도 없이 지구 반대편에서 각각 일어난 일인데, 여튼 그냥 같은 10세기경에 일어난 일이라고, 워낙 할 얘기가 없어 그냥 꺼내왔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이 말이 제 귓가를 맴도는 겁니다. 두 나라의 최초의 통일 왕조…



그러다가 문득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더군요.
역사의 이해에서 사실 어떻게 보면 최초의 통일 왕국 성립 시기가 중요하긴 하거든요. 그 때부터야 비로소 하나의 왕국 하나의 언어 하나의 역사를 공유하는 단일 국가 체제가 형성되어 민족의 동질성, 그러니까 국가 구성원의 동질성이라는 개념이 성립되는 것이니까요.

( 물론 이건 우파 사관에서 말하는 개념입니다. 좌파 역사학자들은 시민혁명 이후의 근대 국민국가 건설 시기는 되야 민족주의가 형성되는 것이고, 신분제도를 폐지하고 우리는 모두 같은 평등한 시민이라는 의식이 생긴 그 때가 되야 비로소 민족이라는 개념이 선다고 보고 있죠.)

그런데 왜 하필 신라의 삼국통일이 아니라 고려의 후삼국 통일을 짚었을까? 아마도 자기네 프랑스 왕조의 통일 시기랑 맞추느라 그랬겠지만, 이 분이 우리 역사의 발해의 존재도 알고 있어서 그렇게 얘기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기분이 급 좋아지더군요.

사실 프랑스는 서유럽 국가들 중에 '동양학'이 가장 발달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대학의 역사 분과에서 자기네 서양사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동양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편이죠. 그래서 지난 80년대 후반에는(90년대 초반인지 헷갈리는군요) 한국의 '동학농민전쟁'을 자국의 '프랑스 혁명'과 비교하여 조선의 쁘띠 부르주아가 일으킨 시민혁명이라고 결론 내린 박사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었죠.

( 조선의 쁘띠 부르주아가 누구냐면, 바로 몰락 양반 세력들을 가리킵니다. 실은 조선 말기 농민 봉기들 모두 이들이 이끌었죠. 최초 봉기인 홍경래의 난부터 마지막 봉기인 동학농민전쟁까지. 신분은 지배계층인 양반이지만, 몰락해서 일반 농민과 다를 바 없이 살아야 했던 이들이죠. 사실, 그들이 근본은 양반이었다는게 중요하긴 합니다. 집안은 비록 몰락했어도 근본이 양반이라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그랬으니까 조정이 감히 잘못했다고 외치면서 칼을 빼들 수 있었죠.)

아무래도 이 베르사이유 궁 대표께서는 역사학자이거나 아니면 학교 다닐때 역사학을 전공했거나…했을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튼 이 분이 던진 최초의 통일 왕조라는 화두를 생각해 보니, 태조 왕건이 천 년전에 얼마나 큰 일을 해냈던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의 고려 왕조 성립은 450년의 단일 왕조 그리고 그 이후의 550년의 조선 왕조가 이어가면서 여기 한반도에 천 년 동안 단일 국가, 하나의 정치체제 그리고 하나의 언어로 이루어진 하나의 역사가 흘러오게 했죠. 그래서 비로소 오늘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도 형성하게 됐구요.

물론 이웃 중국이나 일본을 보면 이게 엄청 대단한 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 중국은 이미 기원전 진시황 때,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통일 왕조가 들어섰죠 - 유럽과 비교해 본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거든요.

영국은 스코틀랜드와 통일된게 아직 300년도 채 안됐습니다. 독일은? 비스마르크가 통일한게 불과 150년 전이니까요. 스페인도 통일 왕조는 500년 전에나 처음 등장하구요. 이탈리아도 독일과 비슷한 19세기에나 겨우 통일 왕조를 이룹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도 비교해 봐야겠지만, 그래도 유럽 주요 국가들에 비해 훨씬 전에 동아시아에 단일 국가 체제를 만들고 역사를 영위해 왔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집니다.(그 전에는 그냥 당연하게만 생각해 왔었는데, 요근래 스코틀랜드 독립 소동을 구경하고 나니...이게 그냥 당연하게만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프랑스 국립 베르사이유 특별전이 오는 5일부터 내년 3월 6일까지 서초동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된다. 홍성일 지엔씨미디어 대표, 장 자크 아야공 프랑스 국립 베르사이유 궁 대표가 4일 오전 프레스오픈을 통해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프랑스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태양왕 루이 14세부터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에 이르는 유럽 왕실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20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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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가 저 베르사이궁 대표님 얘기를 마냥 킬킬거리면서 할 수는 없는 상황에 닥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거든요. 지난해 말 모 국립기관의 연수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맡은 일정에서(나폴레옹과 조제핀 - 엠파이어 스타일로 보는 프랑스 제 1제정 문화정책) 오프닝 부분에 한불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추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었거든요….이런!....



하지만, 뭐...저야 국내 분들 모시고 하는 얘긴데, 얼마든지 할 수 있죠. 그까짓 불편한 이야기라도....




그래서.....



TroisConsuls.jpg

Louis-Charles-August Couder (1790-1873), Installation of the Council of State, 25 December 1799 (1856)






이 스토리와 아래의 이야기를 엮느라.... 좀 고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부터 사실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는데, 근대 제국주의 국가 모델이 나폴레옹의 제정기부터 시작되었던 만큼 역시 제국주의 국가들의 문화재 약탈도 나폴레옹에서부터 시작되거든요.(정확히는 1799년의 이집트 원정에서부터) 그런데 우연찮게도 병인양요(1866년)가 나폴레옹의 조카 나폴레옹 3세때(프랑스 제 2제정) 벌어진 일이더란 말입니다.




급하게 준비하느라 고생은 좀 했는데...덕분에 전부터 생각해오던 걸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죠.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단 말입니다. 언제부터 대체 왜 서양인들이 자국과 관련이 없는 타국의 역사 문화재들을 '보물'이라고 인식하게 됐는지 말이죠.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지난 2010년에 반환된 외규장각 의궤 중에서 - 아리랑 TV)





1866년 프랑스 해병대의 강화도 상륙, 앙리 쥐베르 작(당시 해군 소위 후보생), 1873년 르 트루드몽드지에 연재된 조선원정기 중에서)


FranceGanghwa.jpg

    • 저도 왜 남의 나라껄 목숨 걸고 안주려하는지 이해가 안가지만 그들의 세계사적 안목도 이해합니다. 

      • 직접적인 이유는 일단 이게 전례가 되면 루브르를 비롯한 박물관들이 텅텅 비는것부터 해서…제국의 위상이란게 있지 않습니까. 무릇 제국이란 여러 나라들을 거느린다는 의미가 있는데, 제국답게 여러 나라의 보물들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거죠.
    • 하나 더 덧붙이자면, 시민혁명으로 종교 지배체제가 무너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혁명정부의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 등 여러 가지 종교 해방령 때문에 카톨릭 일원 체제(더 나아가서는 기독교 전체)가 무너지면서 그 자리에 역사라는 개념이 들어앉게 된거죠. 그 때까지 국가의 영혼이라고 생각했던 신분제도와 그를 뒷받침하던 종교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그를 대신해서 역사(국사)와 언어(국어)가 국가의 정신을 규정짓는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정신이라는게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죠. 어린 시절부터 교회 다니면서 성경책 읽던 사람들이라…그 대신 신앙심이 사라진 자리에 역사 의식이 남게 되었고 성경을 역사서로 분석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 첫번째 시도가 저 1799년의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으로 나타났고 이후 이어진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주로 이라크 - 여기가 바빌론, 앗시리아등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심장부 지역) 고대 문명 탐사로 나타납니다. 이와 같은 관념에 의해서 제국주의 시절 내내 서구인들의 중근동 지역 고대문명 탐사가 시작된거죠.

    • 서양인들이야 자기네 경전의 무대가 되었던 그 지역들을 -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 -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지만, 정작 바다 건너 날벼락을 맡게 된 이집트 인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그들은 '무신론자들'이라는 외계인들을…처음 만났던 겁니다! (나폴레옹이 그렇게 발표했거든요)그리고 그 외계인들이 무척이나 신기해하면서 자기네 옛 조상들이 남긴 문물들을 눈이 휘둥그레져서 정신없이 찾아다니는 걸 목격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후 벌어진 그들의 침략행위를 겪으면서 이들에게도 서구인들과 똑같이 민족의식이라는 것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바로 아랍 민족주의라는 것이죠. 이런 과정은 사실 한국도 비슷합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인들은 '피지배민족'이라는 민족 정체성을 갖추게 되었으니까요.

    • 그래서 민족주의를 보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하는 듯 합니다. 그 민족이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이들은 '지배민족'의 정체성을, 또 어떤 이들은 '피지배민족'의 정체성을 갖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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