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엽편소설 : 장풍
“그랬더니, 자기는 냄새로 생선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거야. 그래서 막 웃으면서 역시 둔하다고 남편을 놀려 줬지. 세상에 고등어 굽는 냄새랑 꽁치 굽는 냄새 구분도 못 하냐고.”
퇴근길 지하철에서 친구 사이 같은 30대의 여자 넷이 수다를 떨고 있다. 지하철은 통근자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에게 가려져 내 자리에서 여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목소리가 작지 않은 편이라 대화 내용이 또렷이 들린다.
“어머, 찡아. 그럼 너는 생선 냄새가 구분이 된다는 거야?”
“응? 곰탱이 너, 울 남편마냥 구분 못해? 이런 둔한 사람들 같으니~”
“아냐, 찡이 너, 그거 구분하는 사람 거의 없을 거 같은데? 큰먕, 넌?”
“나도 전혀 못 하는데...”
“거봐. 우리 중에도 너밖에 못 하잖아. 생선 냄새를 갖고 생선을 구분하는 사람 거의 없을 걸?”
그래 맞다. 생선 냄새로 어떻게 생선을 구분한다는 말인가? 구분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지!
“어머어머어머나! 난 어릴 때부터 구분이 자연스럽게 되어서,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았어. 갈치, 고등어, 임연수, 꽁치, 조기 냄새가 다 다르잖아. 생긴 게 다른 것처럼... 냄새가 휙 지나가면 생선 모습이 떠오르는데? 너네는 정말 안 그래? 맞다, 너네도 냄새가 다 달라.”
“뭐? 사람도 냄새로 구분해? 향수 냄새나 샴푸 냄새로 아는 거야?”
“아냐, 향수 냄새가 있으면 오히려 방해되는걸. 그 사람만의 냄새가 있어. 살 냄새라고 해야 하나, 땀 냄새라고 해야 하나. 보자, 지금도 너네 냄새가 구분되는데? 이건 곰탱이 냄새, 이건 큰먕 냄새, 이건 짝먕 냄새. 아, 나 옛날에 대학 다닐 때 비밀 CC 눈치챘던 거 냄새로 알았던 건가봐. 학교에서는 떨어져 다녀도 서로의 냄새를 묻히고 다니니까.”
저건 거의 초능력 수준이군. 서로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친한 여자들이니까 어릴 때부터 친구였을 것 같은데, 그런 친구들끼리도 몰랐던 비밀 커플이 있었단 말이지?
“야야, 장난치는 건 아니지? 좀 소름끼친다. 이건 거의 사람 코가 아니라 개코다.”
“장난은 무슨! 진짜야! 난 너희들이 더 신기해. 사람마다 이렇게 발달한 부분이 다를 줄이야.”
“하긴, 찡이 너 방향감각은 영에 수렴하지. 요즘엔 출퇴근은 무사히 해? 얘, 학교 오는 길에도 헤매던 거 생각하면, 크크크. 개코로 길은 못 찾는 거니?”
길 못 찾는 건 내 아내랑 똑같은 수준이군.
“출퇴근은 뭐, 지하철로만 다니니까 큰일은 없지. 난 지도 잘 보고 길 잘 찾는 사람 보면 초능력자 같더라. 저번에 남편 회사 앞으로 가다가 길 잃어서 엄청 헤맸을 때 짝먕이 우연히 마주쳐서 나 구해줬잖아. 그 때 짝먕이 위대해 보였음.”
“응. 난 지도 보고 고개를 들어서 거리를 보면 지도가 쫙 3차원으로 펼쳐진 것처럼 느껴져. 너네들은 안 그래? 크크크.”
좋은 재능이군. 내 주변에도 지도 잘 읽는 사람이 있는데, 누구더라..
“어휴. 난 지도랑 실제랑 동서남북을 딱 맞춰놓고 지형지물을 하나씩 짚어나가지 않으면 도저히 못 알아봐. 몇 정거장 남았니?”
“세 정거장.”
흠. 나랑 같은 역에서 내리는군.
“있잖아, 세상엔 음치도 있고 절대음감도 있는 거잖아. 음치가 보기엔 세상의 음악이 전부 미스테리겠지. 나 빼놓고 모두 벌거벗은 임금님 놀이를 하는 것 같을 테고.”
그러고 보니, 내가 음악 쪽에는 약하게 타고난 것 같다. 음색 구분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으니까.
“얼굴맹이라는 것도 있대. 얼굴인식불능증이라던가. 어떤 유명한 화가도 얼굴맹이래.”
“얼굴을 구분 못하는데 어떻게 그림을 그려?”
“그냥 풍경처럼 바라보면서 그리는 거래. 예를 들어 눈동자는 턱과 이마 사이 5분의 3 지점에 검은 색깔을 칠한다, 눈썹에 해당하는 부분은 9도 정도의 경사가 져 있구나, 325*210 지점 픽셀에 갈색, 이런 식으로. ‘눈이다’ ‘코다’하는 인식 없이 그리니까 오히려 사실적으로 그리게 된다던데. 야, 다음에 내려야 한다.”
나도 일어나서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어? 떠들던 여자들은 아내와 아내 친구들이었다. 찡이가 아내였고 짝먕이라고 불리던 여자는 미영이었다. 나는 목소리로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아내도 나를 발견했다.
“어, 자기야, 지하철 같이 탔었네. 어느 구석에 있었길래...”
아내가 순간 코를 킁킁거렸다. 나를 향해 한 번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미영을 향해 숨을 들이마셨다. 아내의 눈이 커졌다. 입술이 달싹거렸다.
“너... 당신....”
아내가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몇년 전에 썼던 파일을 우연히 찾은 김에 올려봅니다.
제목을 왜 장풍이라고 달았는지 저도 맥락이 기억나지 않네요. ㅎㅎ 모자이크같은 연작소설 중 하나였나?
부인이 남편의 가슴에 장풍을 쏘지 않았을까
아.. 그런가요?
생선들을 보면 그때서야 구분을 하지만 안보고는 구분 못하겠는데요.
입체치라서 지도는 평면이지만 좌우를 짚기가 힘들어요.
무슨 사건이 있었을까요 개코 부인이 당황한게.
어... 상상하시는 바로 그 사건입니다. 어른들의 사정.
단편영화용으로 딱이네요!
즐겁게 읽었습니다 ㅎ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게시판 리뉴얼에 동참하고자. ㅎㅎ
짝먕=미영=소현이겠죠?
으헉. 소현은 고쳤습니다. 세상에, 이 손바닥만한 글에서 내가 지어낸 등장인물 이름을 중간에 까먹고 바꿔 쓰다니. ㅠ.ㅠ 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