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아무 거나 대충 육아 잡담.txt
- 분명히 제목에 txt라고 적었습니다. 사진은 기대하지 말아 주세요. ㅋㅋㅋ
- 참으로 배우는 게 빠른 23개월 딸래미는 너무 빨리 배워서 그런지 자꾸 역행을 합니다. 놀랄만한 타이밍에 숟가락으로 능숙하게 오만가지를 집어 먹기 시작하더니 요즘엔 자꾸 손으로 다 먹으려 들구요. 한참 전부터 안아줄 필요 없이 침대에서 놀다 잘 자더니 요즘엔 자꾸 안아달래요.
오늘도 침대에서 한참을 몸부림치다가 결국 안아달라길래 안고 거실로 나왔는데. 어렸을 때 아빠 엄마 할매들이 안고 등 두드려준 게 좋았는지 그 조그만 손으로 제 등을 토닥토닥합니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저도 등을 두드려주고 싶었지만 못 했습니다.
너무 무거워서요.
이미 오빠의 체중을 초월한지 오래인 자이언트 베이비라서 두 팔로 받쳐 안고도 힘들어요. 팔이 저리고 허리가 따끔따끔.
이래서 육아도 좀 젊을 때 해야(...)
- 이제 3년 7개월을 채운 아들래미는 뒤늦게 뛰어 놀기에 재미를 들였습니다.
사실 부모 탓이죠. 아기 때부터 그림책을 보여주면 너무 좋아하고 집중해서 잘 보길래 '아. 얘는 책 보기를 좋아하는구나' 라고 놀아줄 때 줄창 책만 읽어주다 보니 얘가 밖에서 뛰어 노는 재미를 잘 모르고 크면서 덤으로 운동 능력 발달이 탁월하게 늦어졌습니다. 그래서 어린이집에서 맨날 동갑들에게 치여 살기만 하다 보니 친구도 없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밥 먹으며 '책 보는 게 좋아 나가서 노는 게 좋아?' 라고 물어봤습니다. 어차피 답이 뻔했기 때문에 별 의미 없이 그냥 던진 말이었는데 제 의도와는 반대로 1초의 주저도 없이 '나가서 노는 게 좋아'라는 겁니다. 그래서 데리고 나갔더니 정말 열광의 도가니가 펼쳐졌고 그 날 밤 저는 제가 참으로 죄 많은 아비임을 깨닫고 참회의 시간을 보냈죠.
아들아, 아빠가 게을러서 미안해. 난 니가 나랑 똑같을 줄 알았... (쿨럭;)
- 애 둘을 키우는데 둘이 너무나도 반대라서 참 재밌습니다.
첫째는 또래들 중에 살짝 키가 작은 편이고 하지만 아빠 닮아서 머리는 대빵 크 체중은 많이 덜 나가는 편인데 둘째는 그냥 자이언트 베이비에요. 어린이집 단체 사진을 보면 첫째는 티 나게 작고 둘째는 반을 잘못 찾아 앉아 있는 아이인양 거대합니다. 첫째는 힘이 약하고 운동 능력이 떨어져서 친구들에게 맞을까봐 걱정이지만 둘째는 제발 누구 좀 안 때렸음 합니다. 첫째는 뭐 하지 말라고 하면 세상에 둘도 없이 슬퍼지는데 둘째는 씨익 웃으면서 그냥 지 맘대로 하다가 혼나고 바닥을 구르며 분노를 터뜨립니다. 첫째는 그림 그리라고 하면 죽어라고 색을 칠하고만 있는데 둘째는 동그라미, 네모 같은 선을 꽤 정확하게 그려요. 첫째는 세상에서 밥 먹는 시간이 제일 싫고 둘째는 밥을 먹기 위해 삽니다. 첫째는 벌레를 보면 잡으려고 달려가고 둘째는 벌레! 벌레!!! 라고 소리치다 벌레가 가까이 오면 울어 버려요.
이렇게 다르다 보니 둘째도 꼭 처음 키우는 애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신선하고 재밌으면서 피곤해 죽겠습니다.
- 전문적으로 따지고 들면 참 위험하고 예민해질 이야기지만 '그냥 제 자식 둘만 보고 하는 잡담입니다!' 라고 미리 쉴드를 쳐 놓구요.
대학 때 들었던 교육학 관련 강의들, 그리고 또 당시 한참 불타오르던 페미니즘적 시각에서의 양성 평등 이야기들의 영향으로 저는 '성차라는 건 그리 결정적인 게 아니고 사람의 특성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습득되는 것' 이라는 신념을 갖고 살아 왔습니다만. 이 두 놈을 키우면서 그 신념은 사실상 폐기 직전이 되었습니다.
첫째도 대체로 '남자애들 다 그렇지'에 많이 해당되는 캐릭터이긴 한데 특히 둘째가... 뭐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 어린이' 스테레오 타잎의 현신 같아요. 근데 저흰 맹세코 정말 그렇게 안 키웠거든요. 오히려 '여자애 답게'라는 류의 교육이나 잔소리를 의도적으로 열심히 피해가며 키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뭐... 그렇습니다. =ㅅ=;
덧붙여서 성별 차이는 둘째 치고 그냥 애초에 사람 성격이란 게 거의 90% 이상은 타고 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네요.
첫째와 둘째 모두 갓난 아기 때 표정이나 행동 보고 넘겨 짚었던 성격 그대로 자라고 있거든요. 그리고 그 성격이, 위에서도 말 했듯이 판이하게 달라요.
역시 같은 부모가 거의 비슷비슷하게 키우고 있는데도 말이죠. 흠...;
-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진리를 몸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 이 언제냐면 집에서 혼자 둘째 하나만 보고 있을 땝니다.
분명히 둘째 나오기 전에 첫째만 키울 땐 혼자서 애 보는 순간순간이 피로과 고통의 연속이었는데,
한참동안 둘을 키우고 나니 혼자사 하나만 보고 있으면 그냥 쉬는 기분이에요. 도대체 이게 왜 힘들었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ㅋㅋㅋㅋㅋ
- 근데 정말 인간은 왜 이토록 무능한 생명체인 것이며 도대체 이런 주제에 어떻게 지금 이렇게 지구를 맘대로 굴리며 말아 먹고 있는 걸까요.
도대체 태어난지 3~4년씩 된 생명체들 중에 이렇게 무능한 게 또 있나요. 도대체 얘들은 언제쯤 사탕 봉지를 스스로 뜯을 수 있게 되는 겁니까!!?
이제 첫째는 2년 반 뒤면 학교 다녀야 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
- 위에서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첫째의 운동 능력 부족은 이 집안 식구들의 꽤 진지한 고민거리입니다.
친구들은 다 폭주 기관차마냥 뛰어 다니는데 얘는 아직도 목도리 도마뱀 같은 포즈로 아래에서 위로 뛰거든요. (발은 엄청 빠릅니다. 다다다다다. 그러면서 초저속 전진!) 계단 오르내리는 데에도 아직 자신감이 없고 실제로 수시로 넘어집니다. 그래서 난간이 없으면 꼭 손 잡아 달래고 그래요.
문제는 그냥 '얘가 운동을 못 해' 가 아니라 이 아이의 이런 특성이 이 녀석의 친구 관계나 성격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겁니다.
위에서도 말 했듯이 친구들이랑 같은 룰로 뛰어 노는 게 불가능한 가운데 아직은 '배려' 스킬 같은 게 탑재되기 전의 나이인지라 친구를 잘 사귀지 못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친구들에게 항상 치이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지고 소심해지는 게 눈에 보여요. 안타깝죠. 게다가 이게 다 아빠 잘못이니
이제사, 지금부터라도 최대한 밖으로 데리고 나가 뛰어 놀게 하려고 신경을 쓰고 있긴 한데 뭐 금방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저녁 먹이고 놀이터에 데려갔죠.
여전한 목도리 도마뱀 주법으로 신나게 뛰어 간... 것 까진 좋았는데.
놀이터의 메인 놀이기구(왜 그냥 미끄럼틀, 원통 미끄럼틀에 뭐 붙잡고 오르내리고 뛰어다닐 수 있는 종합 놀이기구 있잖습니까)를 이 녀석보다 두어살 많아 보이는 힘차고 거친 어린이들이 장악하고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어요. 오늘 운수는 망한 거죠.
조심조심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와중에 술래잡기 애들 때문에 멈췄다가 비켰다가 다시 오르다가.
미끄럼틀 한 번 타 보려는데 아래에서부터 미칠 듯한 스피드로 우다다다 뛰어 올라오는 애 때문에 깜짝 놀랬다가.
그렇게 계속해서 밀리고 치이고 하는 꼴을 보고 있으니 참 답답하고도 미안하고 뭐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얼른 꼬셔서 집에 데려가 씻기고 잠이나 재워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아들을 쳐다봤는데.
그렇게 밀리고 치이고 비켜 주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자기 맘에 드는 자리는 지키고 있더라구요.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주변에 다른 아이들이 없어질 때마다 저를 쳐다보고 한 손으론 철봉을 잡고, 다른 한 손을 제게 뻗으면서 '스파이더 매앤 매앤 매앤 매앤 매앤~' 이라고 외치며 뿌듯하고 신난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습니다.
음...
그래서 결국 아들놈이 계속 밀리고 치이는 걸 구경하면서, 같이 웃어주며 한참을 마주 보고 서 있었습니다.
내 눈에야 어때 보이든 본인이 즐거우니 저러고 있는 거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한참을 그러다 결국엔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더니 제게 다가와 자기가 먼저 '이제 집에 가 볼까?' 라길래 '응.' 하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덥석 제 손에다 뽀뽀를 하더니 자기 뺨에 갖다 대고 '아빠가 최고야!' 라면서 씩 웃더군요.
왠지 별로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 눈엔 그냥 모자라 보이기만 했었지만. 사실은 본인도 나름대로 애쓰고 나름대로 극복하면서 나름대로 즐겁게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 하지만 역시 자식들이 가장 예쁠 때는 1) 어디 멀리 가서 화상 통화를 할 때. 2) 잘 때. 3)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랑 놀고 있을 때죠.
아마 모레랑 글피에는 지금보다도 3배로 사랑스럽지 않을까 싶습니다. 존경하옵는 저희 집 마님께서 애들을 데리고 친정에 갔다 오기로 하셨거든요.
할렐루야. 찬양합니다 마님. 충성을 맹세하겠어요.
저희 아기도 뭐 한것도 없는데 갑자기 바퀴 좋아하고 자동차 좋아해서 사주기 시작한 자동차 장난감이 한트럭이네요.. 남자들 DNA 에 자동차 좋아하라고 박혀 있는건지..
저희는 어린이집도 아직 안보내고 24개월까지 TV도 안보여줄때도 이미 남자아이라 그런가? 라는 기질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광속으로 늙고 있습... (쿨럭;)
오랜만에 보름달님 댓글 봐서 반갑습니다. 하하.
그렇다면 우리 애도! 라는 생각에 정말로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되네요.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ㅠㅜ
악. 다른 부분 보다도 '십년 넘게'에 꽂혀서 부럽다는 생각만 들고 있습니다. ㅋㅋㅋ 저는 첫째도 아직 4년을 못 채워서요. ㅠㅜ
암튼 뭐 교육의 중요성은 절대 무시 당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럼에도 타고나는 부분의 거대함(...)에 놀라고 있는 요즘입니다.
둘을 키우면서 서로 다르게 키울 수밖에 없더라구요. 아기 때부터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