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며느리를 본 후의 단상

나름 장안의 화제인 ‘B급 며느리’를 보러 갔다가 운 좋게 감독과의 대화까지 얻어걸려서 구경하고 왔습니다.

끝난 뒤의 감상은, “선 감독님, 어머니께 좀 더 잘 하세요”.

내용은 감독의 말마따나 “전형적인 고부갈등”입니다. 시어머니 조경숙은 체면을 중시하는데 새로 들어온 며느리 김진영은 본인이 정한 선을 넘은 요구에는 절대로 응하지 않습니다.
시비는 김진영이 먼저 걸었으나 조경숙은 김진영의 일보 후퇴에도 굴하지 않고 완벽한 굴종을 요구합니다. 김진영이 이에 반발하여 조경숙이 내뱉은 ‘앞으로 우리 보지 말고 살자’ 소리를 낼름 받아서 “예 어머니 어른이시니까 하신 말씀은 꼭 지키십쇼” 라고 질러버리고 시댁 행사에 대한 파업에 돌입합니다....

며느리 입장인 김진영이 이 후천적으로 맺어진 가족관계로 인하여 얼마나 큰 희생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부당하며 등등은 영화를 본 사람마다 하는 이야기이고, 인터뷰마다, 감상평마다 나오는 말이니까 저는 생략하겠습니다. 참고로 정말 부당하고 정말 희생이 큽니다.


저는 시어머니 조경숙이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물론 쉽게 동정할 만한 분은 아닙니다. 영화 내에 등장한 내용만 하더라도, 임신한 예비 며느리의 직장에 전화를 걸어서 우리 아들과 결혼하려면 키우는 고양이를 버리고 오라고 한 시간 동안 전화를 하는 캐릭터입니다. 김진영의 거듭된 거절에도 불구하고 조경숙이 전화를 매듭짓는 말은 “그러면 그 고양이 보낼 데는 내가 알아봐줄게”. 시작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GV에서 감독의 입으로 나온 뒷이야기는 더욱 범상치 않습니다. 손주가 예쁘다고 어머니가 아무때나 집에 쳐들어오셔서 진주하고 앉아있던 것이 고부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이고, 전화를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걸거나, 아예 집으로 찾아와서 왜 연락을 받지 않느냐고 소리를 지르고, 2주에 한번씩 아이고 내가 죽겠다, 또는 네가 잘못했다며 화를 내는 분이랍니다.


이런 조경숙이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만은 진짜입니다. 아들인 선호빈은 다큐멘터리 감독입니다. 항상 돈에 쪼들립니다.
자식까지 낳은 다 큰 아들이지만 조경숙은 선호빈에게 영화 제작비와 생활비 조로 추정되는 돈을 빌려줍니다. 계-속. 김진영은 남편이 시댁에서 돈을 빌려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자 선호빈은 조경숙에게서 김진영 몰래 돈을 꿉니다.

조경숙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체면입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2차에서 불합격하고 딱히 고정적인 직업이 없는 채로 며느리가 된 김진영에게 조경숙은 ‘친척들에게는 네가 7급 공무원 공부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해두었으니 말을 맞춰라’고 합니다.
김진영이 명절 불참을 선언하자 조경숙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식들이 내려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외국에 나가 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고 싶어합니다.

그런 조경숙이 선호빈의 다큐멘터리 제작에 동의했습니다. 찍어도 된다, 만들어도 된다, 상영해도 된다. 심지어 조경숙의 롤은 메인 빌런입니다. 집안의 치부가 까발려지는 것은 물론이고 조경숙 본인이 상식적이지 않은 짓을 하는 것이 필름에 고스란히 담겼을 뿐 아니라 아들과 며느리가 인터뷰를 하면서 필름에 안 들어갔던 조경숙의 비인격적 처사들을 폭로하고 다닙니다.

조경숙은 떨려서 영화를 아직 못 봤답니다. 전주국제영화제에 부모님 석을 마련하고 초대를 했는데 자리에 앉았다가 영화관 불이 꺼지자 용기가 없다고 나갔답니다.
그리고 요새 정식 상영이 되면서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고 연락을 주니까 걱정이 되는지 아들한테 이틀에 한 번씩 전화를 해서 걱정을 한다고 합니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선호빈 감독은 조경숙에게 엄마가 돼서 아들이 잘 되는데 그거 하나 못 참냐고 그만 좀 하라고 짜증을 냈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역시 감독과의 대화에서 선호빈 감독은, 고부갈등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 보면 사회적 갈등 구조가 작용하고 있다며, 부모 세대보다 적게 버는 자식세대이기 때문에 부모님한테 온전한 발언권이 없었다고 합니다. 청년 실업과 구조적 빈곤이 문제라고 하면서요.

고부갈등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의 개인적인 잘못이 아니고 시스템적인 문제라는 부분에는 동의하지만, 과연 이것이 청년실업이 불러온 문제인지, 청년실업이 해결되면 해결될지, 젊은 아들에게 수입원을 줘서 노모의 발언권을 박탈하면 고부갈등이 끝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그리고 감독의 이 얄팍한 현실인식에 짜증이 납니다.


고부갈등은 가부장제에,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들에게 퍼붓고 투자한 나이 많은 여자가 아들을 키워낸 값(아들에게 쏟았으나 돌려받지 못한 애정, 사랑, 관심, 존중, 경제적 여유)을 나이 적은 여자에게서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들들이 알아서 갚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입니다. 조경숙은 나이를 먹어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가면서도 선호빈한테 생활비 조로 돈을 쥐어주는데 선호빈은 조경숙의 생일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김진영은 선호빈과 함께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데 풀타임 양육을 맡고 있는 것은 김진영입니다. 영상은 촬영기사가 찍은 풋티지와 선호빈이 카메라를 직접 잡은 풋티지가 섞여 있는데,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선호빈이 양육에 참여하는 장면은 시댁에 갈 때 운전을 하는 것이 유일합니다. 기타 아이의 목욕 아이의 식사 선호빈의 식사 아이의 놀이는 모두 김진영이 맡습니다. 감독 본인의 말에 따르자면 선호빈이 일이 많이 없어서 집안에 있는 시간이 긴 편인데도 그러합니다.

고부갈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구조는 청년실업이 아니라 가부장제일 것이고, 가부장제는 여자가 가진 것을 뽑아서 남자에게 몰아줍니다. 조경숙은 많은 희생을 하면서 선호빈을 키웠습니다. 김진영은 많은 희생을 하면서 선호빈을 보필하고 선해준을 키웁니다.
선호빈은 청년실업의 피해자로서의 본인을 그만 보고 가부장제의 수혜자로서의 본인을 빠르게 인식하고, 김진영에게 추가적인 피해가 오지 않도록 조치하고 조경숙의 그간의 노력에 대해 정중히 보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영화 많이 걱정되지,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이라고 물어보는 전화 한 통부터 어떨까요.

그리고 이 아사리판에서 교통정리를 해 낸 김진영씨의 투지와 능력, 그리고 너그러움에 경의를 표합니다.
    • B급 며느리 아직 안봤는데 이 글 보니 보기 싫어졌고 안보길 잘했네요. 저는 며느리분이 감독인 줄 알았더만 아들이자 남편인 사람이 감독이라고요? 고부갈등의 원흉이 주제파악 못하고 카메라 들이밀면서 구경이나 하고 있군요. 에피소드 보니 엄청난데 그 상황에서 아들이자 남편인 분은 무슨 역할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본인이 고부갈등의 원흉이라는 자각도 없는 듯 합니다.


        http://m.huffpost.com/kr/entry/19035924#cb


        개봉 후에 한 허핑턴포스트 인터뷰인데, 아직도 스스로를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로 보고 있습니다. 김진영씨가 이의를 제기하자 그제서야 고래 세 마리라고 하기는 하는데 사실 동물 비유를 들자면 거머리가 붙은 다리 두 개(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거머리를 떨구려고(시할아버지 제사를 누가 치르느냐) 서로 부비고 문지르고 부딪히는 와중에(고부갈등) 조용히 숨어있는 거머리(아들/남편) 쯤이어야 맞겠습니다.


        영화 안에서는.... “그 얘기를 왜 나한테 따져, 어머니한테 따지는 것이 아니고”라거나, 어머니한테 오늘 처가댁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가 봐야 하니 오늘은 못 찾아뵙겠다고 전화를 걸었다가 그 얘기는 못 하고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애를 데리고 어머니를 보러 가서 늦게 돌아온다거나.... 뭐 그런 일들을 합니다.
    • 진짜 모든 것은 가부장제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감독이 진짜 저렇게 말했나요? 하나...뻔뻔하거나 ㅎㅎ 말씀하신대로 생각하는 게 알팍하거나 아휴... 


      영화 자체는 재미있었어요. 김진영씨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짜증이 너무나 이해되고, 친구면 소주라도 한잔 사주고 싶더라는.

      • 맞아요. 감독은 본인은 아닌 척 하지만 가부장제의 아바타 같은 인물 같아요. 가부장제는 남자에게 자기 엄마와 부인으로부터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잖아요. 보통은 생활밀착적인 요구가 많고 그런 경우에는 가부장제의 작용으로 아들에게 비대한 권리를 주는 것인지 아니면 가족제도의 작용으로 이정도는 해 줄 수 있는 일인지의 경계가 흐려지는데 이번에는 일을 같이 하다보니까 가족제도와 분리되어 감독이 자기 어머니와 와이프에게 한 요구가 보여요.

        영화의 소재가 된 이 고부갈등은 최경숙의 ‘체면’과 김진영의 ‘자유’ 사이에서 무엇이 더 우선시되어야 하느냐의 충돌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체면과 자유는 두 사람의 포기할 수 없는 가치죠. 그런데 선호빈 감독은 최경숙의 체면은 내다 팔고, 김진영의 자유를 담보잡혀서 이 영화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감독이 하는 멘트는 ‘엄마인데 이것도 희생 못하냐’ㅎㅎㅎ (김진영씨도 개봉 후에 얼굴이 생각 외로 너무 알려져서 당황스럽다던데, ‘진영이는 강한 애니까 걱정 안합니다’ 라고....)

        엄마의 체면을 갖다 팔 것이 당연히 자기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인지ㅎㅎ 어머니의 체면과 와이프의 자유를 희생시켜서 얻은 결과물인데 두 사람한테 미안해하지도 않고 고마워하지도 않아 보이던데 참..

        전 감독이 뻔뻔한 쪽이라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어요. 알면서도 이렇게 굴면 완전히 악인이죠. 생각이 짧아서 그렇겠거니....

        그런데 악인의 행동을 하면서 난 나쁜 사람 아니야, 선량한 희생양이야, 나도 고생 많이 했어 하는 모습을 보니 모르고 한 짓이라도 많이 싫어요.
    • 남의 편이 자기 엄마 등쳐먹고 부인 등쳐먹고 개이득 보고 사는 것도 모자라.. 엄마니까 더 희생하라며 영화로 망신주기.. 제 자식이었으면 인연 끊었을 것 같은데요...
    • “개인과 개인과의 갈등이지만 사회적 구조의 문제인데 그게 세대갈등에 청년실업이 어쩌구저쩌구...” 진짜 웃기고 있네요. 감독 본인이야말로 사회적구조 파악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데다 수혜자인 것도 인지 못하고 반성도 없군요.

      남탓만 하고 이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불쌍하다고 노래부르는 쫌생이 중노년남성이 되기 딱이네요. 어휴 지겨워.

      아무래도 남자들은 말 할 기회가 많고 여자들은 말 할 기회가 적은게 문제네요. 저 카메라는 감독 본인이 아니라 어머니나 아내분이 돌리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정말 말 할 기회가 차고 넘치니 낄데 안낄데를 구분 못하고 다 건드는군요.
    • 저는 못보겠다 싶은 영화네요. 저희 부모님 모시고 산지 7년쯤 됐고.. 고부갈등이라는 것도 겪어봤고 아이들 양육때문에 합가해서 살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성장환경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끼리는 뭔가 부딪칠수밖에 없는게 당연하고 그게 집집마다 각각 다른 양상들일 것 같아요




      대부분의 고부갈등을 제공하는 건 사실 남편입니다. 남편이 해야할 역할은 사소한 집안일부터 돈문제, 교육문제, 가끔씩 외식 스케쥴 잡는것 부터 각자의 기념일을 챙기는 것까지 다양해요. 그런데 이걸 제대로 해내지 못하죠. 그렇다면.. 문제의 원흉이 나라는 인식부터 해주는게 이런 갈등을 줄이고 서로간에 합의점을 찾을만한 출발점이 되는데 그것도 쉽지는 않구요. 




      결혼은 상대방을 보고 하게 되지만 원만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면 역시 각자의 집안이나 가정 환경도 봐야 한다는건 말안해도 알 일이지만.. 그걸 뼈에 사무치게 실감하는 건 역시 결혼한 이후가 됩니다. 결혼전에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죠. 그리고.. 내가 과연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모든 혼란과 예측 가능한 문제에 대해 대처할 자신이 있는가..도 고민해 봐야 하구요. 




      쓰고보니.. 결혼할 생각 뚝 떨어지게 만드는 댓글 같습니다만.. 나름의 장점도 있습니다. 그게 뭔지는 다음 기회에.. ㅎㅎ

    • 본의 아니게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고부갈등을 고발하는 영화를 만들어놓고, 감독이 실제로는 저런 대책없는 사고방식과 현실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게 굉장히 어이가 없네요;; 그쵸... 아무것도 안 하면서 상관없는 구조적문제를 들이대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거(처럼 보이고 그렇다고 착각하며 사는)겠지요..
    • 아... 글과 댓글과 거기 딸린 글들을 읽는 것으로 됐다, 라고 생각합니다. 전형적이네요 여러 의미로.

    • 영화는 안보고 인터뷰만 봤지만 그렇게 답 없는 분은 아닌 것 같아요. 


      감독 스스로도 과거 자신에 대한 반성의 기록이라고 했고 고부 갈등을 바라보던 남편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없어졌다는 진영 씨의 인터뷰를 보면요. 


      그리고 아들들이 알아서 갚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말씀에 저는 완전히 동의하지 않아요.


      아들이 안부전화를 잘해도 며느리에게 따로 요구하는 걸 한두번 본 게 아닌지라.. 


      요즘 유행하는 효도는 셀프라는 말이 부모 세대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그 생각을 밀고 나가려면 남편의 협조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부모 세대와의 소통과 이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영화 속 시어머니 캐릭터가 빌런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참 우스꽝스럽고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시집살이를 겪었던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이 안됐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다고 그들처럼 적당히 참고 맞추면서 살면 쌓인 감정이 언젠가 보상심리로 돌아올테니 우리 세대에서  나쁜 고리를 끊어야겠죠.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남편이 잘해도 안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의식구조가 그렇게 박혀버린 거...
    • 와. 원글도 댓글도 굉장합니다 진짜.
    • 음.. 전 고부갈등에 무기력하고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남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자아비판 같은 영화라고 생각했는데요.. 


      어머니에게 돈 받아 쓰면서 어머니 생신도 잊는 주인공이 욕먹는게 당연하고 감독이 의도한 반응이 아닐지요.   


      그런데 그런 본인의 태도에 대해 구질구질 변명이 많았나 보네요. 

      • 그 왜, 발자크의 리얼리즘의 승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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