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 편이 아니야 & 어머니 글2

1. 숙제를 하랬더니 대뜸 이러네요.

'엄마는 내편이 아니야.
우리집은 어른이 4명이고 어린이는 나 혼자여서 아무도 어린이 편은 없어
엄마도 어른이어서 어른편만 들잖아.'

그래서 제가

'우리집에 어린이가 한 명 더 있어서 들레 편을 들어주면
우리 들레 조금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아?' 했더니


'아니, 지금 그말이 아니잖아.' 라고 하네요.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



2. 지난 번 시어머니 글 올렸었는데 어머니께서 댓글반응 보시고 꽤 좋아하시더라구요.

하나 더 올려봅니다.


<참고 : 지난번 글 링크 : 손녀는.

http://www.djuna.kr/xe/board/13347154>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

 

나는 가끔씩 혼자 어디론가 차를 타고 다니고 싶다. 시외버스를 타고 어디든 가고 싶으면 당일코스로 잠깐 다녀온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은 그렇게 기분이 좋은 날은 아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터미널에 내리면 먼저 편의점에 들러 우유나 빵을 먹고 초콜렛 서너개를 사서 나온다.

 

이렇게 다니다 보면 운좋은 날도 있다.

장날이 되면 그 고장의 특산물들을 시장에 내다 팔고 집으로 가는 아주머니들이 짐들을 한아름씩 안고 버스를 기다리고 앉아 있다.

어쩌다 마음씨 고운 아주머니를 만나 짐도 들어주고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 보면 어디서 왔느냐, 어디에 사느냐, 그러다 아주머니가 살고 있는 마을까지 구경을 하고

편의점에서 사 두었던 초콜렛도 나누어 먹으며 마을의 정서와 동네 집 값, 논밭시세까지 알고 돌아오기도 한다.

한 번은 할머니 짐을 차에 실어주려고 들고가다가 내 보따리 내놓으라고 소리질러 놀라고 무안할 때도 있었다.

 

재미는 이것 뿐 아니다.

기사 아저씨는 어느 승객은 이 마을, 어느 승객은 저 마을, 어디에 내리는 것 까지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고 차를 세운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면 어그정 어그정 양손에 짐을 들고 내린다. 앉아 있는 손님도, 내리는 손님도, 기사님도 모두 느긋하게 기다려 준다. 앉아 있는 승객들은 잘가세이 너나 없이 인사를 한다. 모두가 한 집안 같다.

오고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구가 아파서 서울 아들네 있는 병원 가면서 소밥 좀 주라고 해 밥 주고 나오다 대빗자루에 걸려 넘어져 지금 병원에 누워있다 거나,

또는 올해 깨가 잘돼서 우리 먹고 남을 것 같아 세 되 팔아가지고 호미 세 개 사고, 영감 허리끈이 없다 해서 한 개 사가지고 온다, 참깨 울매 받았노, 한 되 이만 삼천원 주더라, 잘 받았네...

 

나는 승객들의 이야기에 귀를 열어 두고 눈을 스쳐 지나가는 창 밖을 멍히 구경한다.

어쩌다 흙담 넘어 칸나 단국화 키다리 꽃이 울을 친 장독대가 보이면 나무하러 가신 어머니 기다리던 내 어릴 때 모습이 그 집 마루 끝에 앉아있다.

남쪽 하늘에 해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빨리도 가고 있는데 어머니는 언제나 오실지, 노오랗게 빛바랜 얼굴로 동네 어귀 나서면 머리에 인 나무단을 먼저 만난다.

어머니 나무단 위에는 언제나 진달래 꽃가지 한 웅큼이 꽂혀 있다. 집에서 기다리는 막내 딸을 위해 꺾어 오셨으리라.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면 난 시골 버스를 탄다.

이미 이 세상에 게시지 않은 어머니를 가슴에 담은 채 지금 내 나이가 그 옛날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서야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고된 삶이 었는지를 알 수 있기에 가슴이 저며오며, 남몰래 눈시울을 적시곤 한다.

어디쯤 인지 알 수 없는 곳에 나를 내려놓고 버스는 산모퉁이를 쏜살같이 달아난다.

목적지 없는 길을 걷기 위해 호젓한 산길을 나는 또 걷는다.

    • 숙제를 실수로 반페이지라도 더 하면 억울해 죽으려고 하는 아들놈이 생각나네요. 너무 귀엽습니다.


      결국 어머님은 이사를 하셨군요. '아이들이 아픈 사랑을 하게 하지 않게 하겠다' 는 그 말씀. 손주와 며느리도 넉넉하게 품으시는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그 어머님도 그리운 어머님이 계셨었네요. 사랑을 받아 보신 분이 또 이렇게 사랑을 베푸시니 세상이 아직은 희망이 있나봐요. 저도 그런 사랑 조금은 배우고 싶네요.
    • 오늘은 제가 운이 좋은 날이로군요 :)
    • 어머니께 제가 팬이 되어부렸다고 전해주세요
    • 메마른 듀게에 단비같은 글이네요...


      링크된 지난글까지,,,,감사합니다.

    • 1. 저라면 그냥 "그러게 말야 들레말이 딱 맞네 ㅎㅎ" 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선 "들레 그래서 외로운거야?" 하면서 대화를 이어가고요...엄마가 생각한, 엄마의 해결책 제시보다는(그게 들레를 위한 거라고 엄마는 말하지만) 그냥 들레의 감정을 표현하고 공감받고 싶을 거라 생각이 들어요..
    • 어머니가 왜 작가가 되지 않으셨는지 이상할 정도로 글이 아름다워요.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어머님 수필이 너무 좋다는 글 달려고 nn년차 유령회원이 로긴했습니다. 이전 글은 전에 올라왔던건 못보고 이제사 봤습니다. 링크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절필 마시도록 꼭 말려주세요ㅎㅎㅎ
    •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또 올려주세요!
    • 어머님 글 너무 잘 봤습니다. 지난 글까지.. 찬찬히 읽다보니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괜히 울컥하기도 하네요. 언젠가 책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기다리던 내 어릴때 모습이 그 집 마루끝에 앉아있다..라는 구절은 정말 기가 막히네요. 감사하다고 말씀 좀 전해주세요. 

    • 저번 글도 아기와 엄마와 할머니의 마음이 절절하게 이해가 되어 울컥하면서 봤는데 이번 글도 눈물나네요. 아이를 보면서 답답할 때마다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목적없는 여행을 다녀오곤 하던 저희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을 감추려 급 화장실행...ㅠㅠ

    • 맞아요 어머니도 어머니가 그리운 마음은 똑같은 건데... 눈물이 납니다 

      • 저두요. 어제 이거 보다가 눈물이 나서 혼났네요.
    • 어머니 연재해주세요~ 이글을 읽으니 집에서 온 택배안에 들어있던 국화 몇송이가 생각나요. 항상 우리 엄마 생각하면 꽃이 떠오르는데 어머니의 어머님도 꽃과 같은 분이시네요.
    • 일반적인 소재인데도 문체나 태도가 아주 따스하고 진실되게 느껴져요. 이런 글을 보면 고국이 그리워지죠.
    • 저도 몇년만에 우연히들렀다가 로긴을....

      진짜 좋은 글이란게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참 좋네요...링크도 가서 늦게나마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론 더더더 글을 써주시면 감사하겠지만....ㅎㅎㅎ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7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1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7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4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9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8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8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3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