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 (스포일러 주의)

1. 이창동, 유아인, 하루키 다 안 좋아합니다. 그냥 오랜만에 극장에 가는 게 목적이었죠.


2. 스티븐 연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열정 없는 표정과 말투... 교포 발음 잘 흉내낸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미국에서 활동하는 분이었군요. 유아인은 얼굴 자체가 보기 싫은데 이 영화에서는 연기 안 하고 멍한 표정으로 있는 게 괜찮더군요. 전종서는 불안해 보이고 우는 것 같은 목소리가 역할이랑 잘 어울렸는데 유인영 데뷔했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3. 최승호 mbc 사장이 나오고 TV에 트럼프가 나오고 유아인이 멍청한 표정 짓고 있다가 갑자기 똘똘한 표정으로 '이 사회에 개츠비가 너무 많아'라고 말하고 여주인공이 갑자기 옷 벗고 춤 추고... 영화가 전반적으로 좀 웃기더군요. 특히 최승호 mbc 사장 나올 때는 장난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4. 그래도 스릴러 형식이라 영화 자체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살짝 긴 느낌이 있지만 끝까지 긴장감을 잘 유지하더군요.


5. 올해 본 영화 중에서는 아직까지 '곤지암'이 최고입니다.

    • 사전 정보 없이 봐서 스티븐 연이 한국말로 연기하는지 몰랐는데, 괜찮았어요. 약간 어눌하고 중간중간 단어 선택이 어색했지만 오히려 그게 배역에 어울렸던 것 같기도 하고..


      여주인공 옷벗고 춤추는 건 그냥 노을과 어울려서 예쁘게 보인다는 생각만 했어요..




      그 이야기를 2시간 28분에 걸쳐 한 거면 꽤 느리게 한 거긴 해서.. 제가 느끼기에도 좀 길다 생각했고 시계 보는 사람도 꽤 있더군요.


      결말이 좀 과격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물론 중간에 복선을 한번 깔긴 했지만..

      • 결말은 저도 좀 과격하다고 느꼈지만 언젠가는 종수가 벤을 죽일 것 같았어요. 저수지 따라 갔을 때 뒤에서 몰래 밀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생각해보니까 벤이랑 해미가 종수 집에 놀러온 장면이 꽤 괜찮았네요. 시골 허름한 농가, 포르쉐, 대마초, 노을. 쉽게 볼 수 없는 조합이에요.
        • 저도 사실 그 장면이 자꾸 생각이나서 다시 한번 보고싶더군요. 노을, 대마초, 와인, 스티븐연의 나른하고 나태한 표정.
    • 혹시 해외에서 보셨나요. 저는 "뭐하는지 모르겠는데 돈 많은 사람"이라는 우리말 대사만 생각나는데 영어 리뷰 등에서는 벤을 개츠비에 비유한 대사를 많이들 언급하더라고요. 아마 영어자막에서 "뭐하는지 모르겠는데 돈많은 사람"을 "개츠비"로 번역한게 아닐까 싶어서요. 사실 종우는 소설가지망생이고 하니까 이런 대사를 칠 수도 있겠지만, 우리말로는 역시 좀 어색하죠.  

      • 개츠비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긴 해요ㅎ 벤 집 테라스에서 담배피우는 장면에서요. 글쓴분이 언급하신 대사가 그 때의 대사..

      • '개츠비'라는 단어는 사실 영화 볼 때는 못 들었고 나중에 다른 분들 리뷰 보다가 알았어요.
    • 마지막 부분을 종수의 소설 속 장면이라고 생각했어요. 소설을 쓰기 시작한 종수의 모습을 보고나서 두 번째로 <버닝>을 보니 실제로 벌어진 일과 종수의 소설 속 이야기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영화 자체가 뿌옇게 되더라고요. 포크너의 「Barn Burning」과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 그리고 장하성의 『한국 자본주의』와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읽고서 다시 <버닝>을 볼 생각이에요. '헛간을 태우다'보다 '헛간 타오르다'가 나은 제목 같아요. 이글거리는 '불길'이 주요한 이미지라고 느꼈거든요. 종수는 시인이 아니라 김연수가 언급한 '그을린 이후의 소설가'로 남을 것이기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과격하기보다는 슬프더군요. 

      • 중간에 어린 꼬마가 불타는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는 장면이 한 번 나오잖아요. 그 꼬마가 누구였을까요? 저는 종수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린 종수가 비닐하우스 타는 모습을 보는 장면이라기보다는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는 벤의 말과 어린 시절 어머니의 옷이 타는 장면이 합쳐져서 현재 종수의 꿈(소설) 속에 나타난 장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약간 다른 느낌의 '불길'도 생각나요. 대마와 술에 취해 옷을 벗으면서 춤을 추는 해미에서 카메라가 벗어나 북쪽 하늘을 비추는데, 그곳에서는 붉은 계열의 여러 색이 안정적으로 빛을 흡수하면서 날은 점점 어두워지죠. 해미는 집 안으로 들어가고, 종수와 벤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발끈하며 흥분해서 말하는 종수의 도발에 벤은 한결같이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대답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얼굴이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워지죠. 해미를 태우고 떠나는 벤의 차의 뒷 부분의 붉은 등에 종수의 얼굴이 다시 불탑니다. 이전 댓글에서 '불길'이 이글거린다고 했는데 지금 댓글을 쓰면서 영화를 되돌아보니 '불길'의 모습은 다양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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