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을 살까.

3년 6개월을 일했던 회사에서의 퇴직이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퇴직 후 어떻게 할 지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죠.


일은 손에 안 잡히고, 근거 없을 설렘으로 이것 저것 하고 싶은 일들을 헤아립니다. 보통 어떤 것에 착취되어 못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어떤 것들을 벗어나서도 못할 일임을 익히 경험해왔으면서도, 잠시 자신을 속여봅니다. 공포와 두려움도 어렴풋이 옆을 쏘다니며 속삭이지만 아직은 잘 들리지 않네요. 다른 무엇보다도 생에 대한 태도를 조율하기 좋은 시점입니다. 무엇에 추동되고, 어떻게 살 것인지 말이죠.


삶이 무엇일까 하면 스탠스(자세 혹은 태도?)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외부요인은 천차만별로 주어질 것이며, 많은 부분 내 의지와 무관하니 빼고나면, 남는 것은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일 것입니다. 그 마음가짐과 몸가짐은 주관적이고 일관성 있는 기준이 되줄 것이며,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재평가할 때 안정을 주겠죠. 아, 그러고보면 질문은 "나는 어떻게 살면 만족할 것인가?" 가 될 수도 있겠네요.


저는 어떤 면에서는 큰 욕심이 없습니다. 미래의 제가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현재로서는 결혼과 육아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부모님을 어느 정도 부양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 멀리 봤을 때 제가 책임져야 할 사람은 저 자신 뿐이지요. 제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거주공간과 돈, 그리고 휴식시간 정도일 것입니다. 소유욕이래봐야 지식에 대한 것 뿐이니, 국가가 지원해주는 도서관으로도 충분하지요. 적당히 돈 벌어서 살다가 가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수년동안 저를 괴롭혀왔던 두려움과 공포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미신들은 제가 직장생활을 거듭할수록 물질감을 잃고 사라져갔는데, 그 이름은 아무래도 "정상적인 경제생활의 영위"였던 것 같습니다. 너는 어디 가서 돈 벌어먹고 사는게 불가능할 정도로 글러먹은 인간이야. 학교도, 혹은 4개월짜리 단기 교육도, 혹은 별것 아닌 자격 취득도 제대로 못하는 녀석이 생존이 가능할 것 같아, 라고 말이죠. 그런데 뭐, 대부분 어떻게 어떻게 직장일을, 삶을 유지보수하면서 사는 거더군요. 매끄럽고 아귀가 들어맞게 사는게 아니라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냥 저냥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리고 뭘 하고 싶은지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무래도 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설명해서 이해하는 것을 보며 희열을 느낍니다. 간과하고 있는 것을 드러내보일 때도요. 결국 저는 글을 써야 할 겁니다. 논문이 될 수도 있고, 기사가 될 수도 있겠죠. 돈을 버려는 것도 아니고, 경력을 쌓으려는 것도 아닐 겁니다. 전과 마찬가지로 취미로 다룰 때야말로 가장 즐겁겠죠. 일단은 그것들을 다루는 도구들을 더 늘려보고 싶고, 글을 더 읽고 싶고, 과정을 체계화하여 헤매지 않고 싶습니다. 정리해보니 두근두근하군요.


예전에 비해서 겁은 많이 없어졌군요. 이번 백수 시절은 좀 즐겁게 보내고 싶네요.

    • 저도 살다보니 혼자 사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단걸 느꼈어요. 월세가 나가는 것도 아니고, 빚이 있는 것도 아니니 사치품 안 사고 그냥 소박?하게 지내면 백만원이면 살더라구요. 회사 그만두고 있는 돈 까먹고 살다 멍이 사료 떨어지면 다시 돈 벌까..하는 생각도 합니다ㅋㅋㅋ

      그동안 고생 많으셨고, 곧 다가올 백수 생활 알차고 즐겁고 시원하고 건강하게 보내세요!
      • ㅋㅋ 저는 그보다 덜 들어가는 사람이라 더 걱정이 없군요. 감사합니다, 차분히 보내면 좋겠네요.
      • 저도 월세가 나가는 것도 아니고, 이사갈 일도 없고 대출도 없고 부양가족도 없고(그런데 고양이들과 강아지가 있군요) 하니 사는데 그렇게 큰 돈이 들지는 않더군요.

    • godduck님은 더 착실한 사람이 되지 못해 아쉬우셨나보군요. 저는 회사생활을 하면 할수록 회사가 어찌되든 알 게 뭐야, 성격이 되어갔습니다. 회사도 내가 어찌되든 알 바 없는걸 아니까 더더욱이요. 케세라 세라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행운과 건투를 빕니다. 앞으로의 글도 읽어보고 싶네요. 행복한 백수 생활 보내시길!
      • 감사합니다! 왠지 조언을 듣고 싶기도 해서 썼는데 격려가 한가득이네요. 글쓰기는 중대사항입니다!
    • 예전에 잔인한오후님이 쓰시는 장문의 글들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영감이 솟아나서 참 대단한 능력을 지니셨구나, (긍정적인 의미로) 무서울 정도로 섬세한 감수성을 지니신 분이라고 느꼈던 기억이 나네요. 다시 글을 쓰시겠다니 너무 반가운 말씀이에요. 언제나 행복하고 여유롭고 편안함이 가득한 백수생활 누리시길 바랄게요.
      • 감사합니다. 올리고 보니 부끄러워져 정신을 못 차렸는데, 댓글을 받을수록 안정되네요. 사실 글을 쓴다는게 듀게에 올리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공증을 받을 수 있을만한 곳에 잘 정련해서 올려 통과시켜(?)보겠다는 이야기였는데 더 부끄러워지네요. 느지막히 달아주시던 라센더님의 댓글들 잘 읽었었습니다.

    • 인생에서는 자신을 위한 휴식 시간이 필요하죠. 모처럼 갖게된 여유를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너무 설레는 바람에 그만. 열심히 쉴 궁리를 해 놓아야겠습니다.

    • 생각을 정리해서 타인을 이해시키는 글을 쓴다는 게 요즘처럼 어려워보이는 시기가 있었나 싶어요. 하지만 잔인한오후님은 누구보다도 잘 해내실 겁니다. :)

      매일 두근거리는 나날을 즐기시길!
      • 감사합니다. 빨리 퇴직하고 싶네요. 남은 기간들이 군더더기처럼 너무 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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