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 중2병류 장르에 대한 모독

박훈정이 좋은 이야기꾼이 아니라는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요즘의 그의 작품들은 어느 시점에서 말문이 막히면 이야기를 멈춰버립니다. 마치 마이클 베이처럼요.
문제는 이 작품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이야기를 잘 안해준다는 점입니다. 후반부의 ‘반전’을 위해서랄 수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어 보입니다.

‘중2병’, ‘세카이계’, ‘이능배틀물’.
이 작품의 일본 애니메이션스러움은 위의 ‘장르(라고 불릴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거에요.
세세하게 설명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장르를 관통하는 정서는 ‘손발 오그라듦’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혁신이나 세계의 멸망따위를 서너명의 인물들의 대사로 퉁치고 섬세한 액션묘사 대신 순간이동처럼 뻗뻗한 신체묘사만으로 가능한 액션, 돌처럼 굳은 표정의 인물이 입만 움직이는 장면들은 모두 (자본의) ‘결핍’에서 기인합니다.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의 단점에서 출발한 이러한 특징들은 태생적인 ‘결핍’으로 인해 ‘얄팍함’을 벗기 힘든 반면 그 자체로 독특한 매력을 가지며 위의 장르들은 그 ‘손발 오그라듦’을 극대화한 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박훈정은 이 장르를 진지하게 구현할 생각이 있었냐? 의 대답은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인물들이 낯간지러운 대사를 치는 건 그럴듯한 ‘이야기’가 처음부터 아예 ‘결핍’되어 있어서인건 어느 정도 부합하죠. 하지만 영화는 ‘유치하지만 진지해서 더 오그라드는’ 설명을 아예 하지 않아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사건을 설명으로 때운다고 영화를 비판하지만 오히려 이 장르는 대사로 ‘더 공허하고 쓸데없는 설정’ 을 ‘더 많이 설명’ 했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체불명의 조직이 정체불명의 아이들에게 정체불명의 실험을 했다는 이야기’의 정체불명을 진짜로 설명하지 않음으로서 구현합니다.
현실적인 이유로 장르를 선택했음에도 결과물인 ‘오그라듦’을 차마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회피합니다. 이 허세스런 장르에서 허세를 절제하는건 오히려 더 허세스런 행위같습니다. 자신이 찍는 영화의 장르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는 행위입니다. 이 영화는 ‘허세스러움’이라는 장르적 외피마저 벗겨버리면 ‘허접함’이라는 본질만이 남습니다.

“어딜 보는 겁니까? 그건 제 잔상입니다.” 같은 클리셰를 몇 장면 넣었다고 획득될 호락호락한 장르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박훈정은 하던거나 잘 하길 바랍니다.
    • 그렇다면 애초에 세카이계가 아닌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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