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일들

좀전에 어머니와 통화했는데, 어제 어디선가 받아온 운세풀이라며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읽어주셨어요.
그 해석을 듣노라니 어이없어서 웃음이 터져나왔으나 곧 웃음을 거두게 되었죠. 
남의 인생사를 알아내고 풀이하며 곤고하게 살아가는 어떤 인생의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저는 강력하게 제 인생의 안과 곁에 있는데, 지구 한구석에는 나 - 그로선 얼굴도 모르는 타인- 의 인생수치(생년월일)를 받아들고 
그럴듯한 말들을 해내야 하는 한 외로운 인생이 있다는 게 강렬하게 인지됐달까요.

하지만 이 글을 쓰게 된 건 어제 저녁 산책에서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울렸던 전화벨과 통화내용 때문이에요. 
상대는 동료 dpf (독일인)이었어요. 
"뭐해?" " 아무것도..." 

대답을 듣지 못했다는 듯 그가 다시 물었죠.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  
"(이런 대답이라도 들어야겠다면) 와인. 한 잔 마시고 싶은데 떨어졌네."
"오? 물 떨어졌다는 것보다 더 나쁜 소식이다. 근처 마트에 가서 아무거라도 사와" 
" 싫어. 이 시간에 현관문을 나서는 건, 사표를 쓰는 것보다 세 배쯤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야." 
" 그렇구나.... 안녕."
돌연히 끊기는 전화는 때로 텅 비어 있는 세상을 비추죠.

한 시간 후, 다시 전화벨이 울렸어요. dpf이었죠.
"담~ 소포가 도착했습니다. 내려와 찾아가~" 
어안벙벙해서 내려가보니,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없는 현관 입구에 포장용 종이 박스 하나가 덜렁 놓여 있었어요.
밤 10시 넘어서 도착하는 소포란 기적이거나 농담이죠. 좌뇌 2시 방향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났던가.....

상자에는 다섯 종류의 와인 여섯 병이 들어 있었어요.  그 중엔 이미 개봉해서 반쯤 마셔버린 와인도 하나 끼어 있더군요.
반 병짜리 와인을 확인하는 순간, 왜 포레스트 검프의 말이 떠올랐을까요 ? "Stupid is as stupid does." 

곧 그에게 전화했지만 휴대폰은 꺼져 있었어요. 다시 한 시간 후, 겨우 연결이 됐어요. 
'고맙다'는 인사는 그를 서운하게 만드는 말일 터라 심드렁한 어조로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죠.
"다섯 병은 우정이고 반 병은 사랑이니?" 
"다섯 병은 선물이고 반 병은 동냥이야." 
" ......알았어.ㅋㅋ 안녕." 
돌연히 끊는 전화에는 때로 한눈에 읽힐 수 없는 방대한 마음이 있죠.

목동과 이태원을 잇는 긴긴 밤길도 아니고, 관계란 숙제인가 축제인가 라는 의문도 아니고, 텅 비어 있을 그의 집 와인랙도 아니고, 
왜 검프의 저 유명한 나레이션이 가장 먼저 생각났을까요. "Stupid is as stupid does." 

새는 단순히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뚫으며 길을 만들고 있는 거라던 어느 시인의 통찰을 기억합니다. 관계 또한 그런 거겠죠.

    • 같이 살아가는건 참 멋있죠 반병이 멋있듯 바보짓을 해야하듯,나도 얼마전 먹던걸 줬는데 그리 알았을까
      • 가영님 다운 댓글. ㅎ 그 반병 아니었으면 이 글 안 썼겠죠.

    • 저는 얼마 전부터 와인에서 위스키로 바꿨는데 오래 둬도 변질될 위험도 없고 조금만 마시니까 술 떨어질 염려도 없고 좋더군요. ^^  

      • 독주 체질이라 직접 와인을 구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요. 선물하기 좋은 품목인지 꾸역꾸역 쟁여지는 터라 길들여지는 측면이 있어요. -_-

    • 외로운 인생까지야.. 그 사람도 한 사람의 직업인일 뿐인 걸요. 목사들처럼 보통 사람들보다 거짓말을 잘하는.

    • 남의 인생을 놓고 어마무시한 말을 쏟아내는 직업인데 단독자로 일하잖아요. 조직에 기대지 못하는. 


      외롭고 처연한 직업인 것 같아요. ㅋ

    • 신의 뜻이니 사주에 적혀 있다느니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면서 남의 인생을 놓고 아무말 대잔치를 하는 인간들이 가엾다는 생각은 안드네요. 그런 곳에 가서 듣고 싶은 말을 들을 때까지 열심히 번 돈을 갖다바치고 잠시 위안을 얻고 또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자기 인생을 물어보고 기도하는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들이 차라리..

      • 전 그런데 가본 적도 없고 돈을 써본 적도 없지만 예수불신지옥 운운하며 신도를 모으고 마음의 평화를 준다고 영업질 하는 교회나 기타 종교 잡것들보다는 난게 아닌가 싶다는 생각은 해요. 뭐 그래봤자 도진개진이지만....;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오헨리가 쓴 단편같기도 하고.. ㅎㅎ

    • 정말 단편소설 같은 글이네요. 전 코니윌리스가 떠올랐지만 ㅎㅎ

    • 필력이 대단하시네요. 보통 분이 아니신 것 같은 느낌?? ㅎㅎ

    • 왠지 이 독일인 친구와의 에피소드 2탄도 기다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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