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랑 살면서 포기한 것들

 

 

2011년이 되면서 저희집 애들도 벌써 9살이 되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9살 둘과 8살 한놈이지만...

아직 제가 젊...어렸던 시절 만난 세마리의 젖먹이가 벌써 '노묘'의 라인에 들어선 겁니다. 히힛?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애들과 살면서 제가 불편했던 것보다는 애들이 불편해하고 포기한 것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정말 공평하지 않은 관계 같아요. 제가 포기한 것은 저녀석들과 생활 공간을 나눈 것과 약간의 돈, 털과 관련된 불편함, 알러지로 인한 약간의 건강상의 데미지와

마찬가지로 알러지로 인해 발생한 주름 정돈네요. (제일 치명적인 건 물론 주름입니다. 으악 내 눈가주름! ㅠㅠ)

 

반면에 세녀석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 것과 한정된 공간에서 평생을 지내야 하는 것... 여기까지만 해도 벌써 고통스러우니 그만할래요. 죄책감으로 몸부림치며

스스로를 고문하는 건 정신건강에 좋지 않죠 ㅠ 특히 연말같은 때는.

 

반면에 얻은 것은 제쪽이 훨씬 많아요. 진짜 공평하지 않죠. 전 사실 하이디를 우리 애들하고 만나게 해주고 싶지 않아요. 자신 없거든요.

애들이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보면 무서워요. 내가 저 녀석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고 딱 한 번만이라도 자신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거든요.

자신 할 수 있는 건 그저 딱 두가지밖에 없습니다. '따뜻한 잠자리' 와 '식사'

우연히 만난 길냥이에게서 녀석들의 험한 삶을 엿보거나, 인터넷에서 끔찍한 사건을 마주하게 되면

'적어도 너희들에게는 저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할거야' 하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쥡니다.

그런데 삶은 그런 걸로만 만족 될 수는 없는거잖아요. 하루에도 세번 이상 집착적으로 사랑해를 외치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하는 생각이 요즘은 많이 들어요.

아마 애들이 나이들어 간다는 걸 새삼 느끼기 때문이겠죠.

 

괭이녀석들과 살면서 진짜 잃게 되는 건 제 안락함이 아닌 것 같아요. 털, 청소, 금전적인 문제... 그런 것들보다는 뭔가 자만심 같은 것?

설명하기 참 거시기하지만 뭐 그런 거에요. 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가면서 한 해 두 해 자만심 비슷한것이 벗겨져요.

그리고 인간에 대한... 혐오를 동반한 포기도 함께 하는 것 같네요. 전 10년 전의 자신보다 훨씬 더 인간을 좋아하지 않게 됐어요.

뭔가 가장 크게 잃은 것이 있다면 아마 그것 같아요. 그리고 그건 전혀 아깝지 않구요.   

    • 잘 읽었습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사세요.
    • 포기한 것들이라고 해서 소파, 커튼, 화분, 방충망, 겨울철 난방, 검정 옷, 이불 이런 거 생각했는데.
      그래도 제가 단순히 먹을 걸 주고 화장실을 치워주는 존재보다는 조금 더 낫게 생각해줄 거라고 믿고 싶어요.
      누가 의도한 거든 아니든 어쨌거나 우리는 이렇게 만났고 이제 7년 가까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걸요.
    • 반려동물과 사람은 시간의 속도가 달라서 그게 참 마음이 아파요. 그럴 때마다 항상 의연하게(?)생각합니다. 날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죽는다. 예외는 100% 없다. (노루잠님 쪽지 드렸어요. 뭐 좀 여쭤볼 게 있어서..)
    • 고양이가 우리집에 산지 세달 됐는데 약간 혼란스럽네요 다른 두 개체가 혼합돼서 그런가봐요.
      얘는 마당에 살아 걱정도 해줘야 하고.
    • 반려 동물과 함께 살면서 아까울 건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머리 쓰다듬는 걸 좋아해주는 토끼가 제 손길을 찾아 머리를 들이대는 게 눈물나게 고맙고
      어디 아픈 데 하나 없이 건강하고 성격 좋은 개가 안아달라고 발톱으로 제 무릎을 긁으면 행복합니다.

      나 그냥 먹이 셔틀은 아닌 거지? 하면서.
    • 저희 집 고양이는 이제 늙어서 노망이 들어 제가 자고 있으면 서너 시간마다 꼭 깨워요. 제가 포기한 항목에 숙면이 하나 더 늘긴 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여전히 얻는 게 조금 더 많지요...
    • calmaria/ 주변의 고양이 생태연구가 지인;;한테 들은 얘기에 따르면 고양이는 고양이 기준 하루가 사람보다 훨씬 짧대요. 그아가씨는 12시간인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린 야옹이들도 서너시간마다 우다다다 깨워요.
    • loving_rabbit / 감사합니다^^
      해삼너구리 / 저도 그래요. 어떤 인연이 우릴 이렇게 엮어놓았을까 가끔 경건해질때가 있어요.
      소년/ 같이 늙어간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구나 싶을땐 참 서글퍼져요. 쪽지 답변 드렸어요.
      가끔영화 / 목걸이 꼭 해주세요. 연락처와 찾아주시면 사례한다고도 꼭! 사례함 써있으면 찾게 될 확률이 아주 높아진대요 -.-
      독 짓는 젊은이 / 저도 먹이셔틀은 아니겠지 하고 가끔 물어요 ㅎㅎ
      calmaria /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어리광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어릴때보다 더...
    • ^^ 괭이랑 사는 연인을 두면 덩달아 포기할 게 생기더군요.
    • 괭이랑 살면서 변한 것

      1. 깨끗해졌습니다. 고양이털 청소를 하다보니 청소가 손에 익으면서 집안이 고양이 오기 전보다 오히려 깨끗해졌습니다.-_-;

      2. 공기청정기가 세 개로 늘어났습니다.

      3. 돈 욕심이 생겼습니다. 돈 못 벌면 고양이 두 마리 부양 못하니까요.

      4. 집 평수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가급적이면 고양이들에게 더 넓은 공간을 마련해주고픈 마음에 넓은 집으로 이사갔습니다. 내년에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갈 예정.

      5. 외롭지 않습니다.
    • 털만 문제가 있는줄알았는데 공기도 탁해지군요..
    • ㅋ/ 공기가 탁해지는 것은 아니고, 공기청정기가 공기 중에 떠다니는 고양이털을 좍 빨아들입니다. 물론 모두 빨아들이는 정도는 아니고, 상당히 도움이 된다~ 그 정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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