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어디로갈까'씨

어제 올렸던 번역 유감 후기입니다.
(후배에게 번역은 내가 다시하기로 했다, 다른 이에게 하청줬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드는 너의 결과물에 대해 설명할 게 있으면 해라, 들어보긴 하겠다는 메모를 보냈습니다. 곧이어 죄송하고 괴롭고 너무 부끄러워서 죽고 싶다는 답문자가 왔어요. '죽고 싶다'에서 제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의 괴로움을 긍정한다는 의미에서 아래의 내용을 메일로 보냈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밤바다 같이 캄캄한 감정 위로 쏘아올린 조명탄인 셈입니다.
밝히자면, 아랫글은 십여 년 전 블로그질할 때 '죽고 싶다'는 말버릇을 가진 친구 땜에 인터넷을 뒤져 정리해 올렸던 내용을 복.붙한 것입니다.
(오랜만에 접속하려니 비번이 생각 안 나서 한참 헤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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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너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죽음에 이르는 방법
1. 의사縊死 (목매기)
전해지는 속설로는 가장 황홀하게 죽는 방법이다. 부탄가스류의 향정신성 기체 질식사도 그렇다는데, 뇌의 산소 공급량이 저하되어 두뇌 활동이 둔해지므로써 Achoholic state와 유사한 기분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2. 분신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분신을 기도한 후에도 보통 며칠 간은 목숨을 유지한다니, 아무리 피부가 전소되어도 사람은 즉시 죽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망에 이르는 이유는,  피부 고유기능 -체온조절과 노폐물 방출의 기능 -이 마비된 상태에서 발생하는 합병증 때문이라고 한다. 체온 상승, 두뇌에서의 이종단백질형성, 신체 저항약화가 합병증을 일으키는 거란다.
아무튼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며칠 간의 고통은, 언어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것이라는 임상보고가 있더라. 

3. 할복
분신과 비슷한 강도의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이나 영화에 묘사된 영향으로 멋있고 장렬한 죽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는데, 실은 칼로 배를 긋고 내장을 다쳐봐야 사람은 즉시 죽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우리 몸의 혈관들은 장기나 수족이 떨어져 나가면 저절로 수축되는 성질이 있어서 맥박도 감소하고 출혈량도 줄어들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창자를 꺼내봐야 배만 아플 뿐, 의식은 명료한 채 기분만 매우 불쾌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오래 살지는 못한다. 창자가 없는데 어떻게 살 수 있겠나! 
그래서 일본 사무라이들은 할복을 하면 적이든, 동료든, 그 자리에서 목을 쳐주었던 것이다. 잔인해 보이지만,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일종의 안락사였던 셈이다.

4. 추락사
그다지 훌륭한 방법으론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이카루스라고 착각하거나, 생의 마지막 순간을 번지점프의 쾌감으로 장식하고 싶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도덕적인 사람이 선택할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마침 그 길을 지나고 있던 사람에게나, 혹은 아랫층 창가에서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가 뜬금없이 추락하는 뭔가를 봐야 하는 이에겐 일종의 테러와도 같은 충격을 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작 본인에게도 별반 효과적인 방법이 아닌 듯싶다. 운이 따르지 않으면 살 수 있는 위험부담이 큰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5층 높이에서 뛰어내리고도, 죽지 못하고 식물인간으로 여생을 보낸 사례가 드물지 않다.
또 하나의 단점이 있으니, 추락사를 택했다가 지면에 닿기도 전에 심장마비로 죽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굳이 이런 실패를 경험할 이유가 있을까?

5. 권총사
관자놀이에다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 서양에서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방법이다. 방아쇠를 당기기 전 몇 초 간의 극렬한 두려움만 견디면, 거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각도를 정확히 잡지 못했을 경우, 죽음에 실패할 뿐만 아니라 평생을 무뇌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단점이 있다. 한국에선 총 구하기의 어려움이 가장 큰 단점이겠다.
   
6. 익사
이것도 참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에 의하면, 익사를 시도한 사람의 대부분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수면 위로 떠오르려고 발버둥친 흔적이 있다고 한다. 익사의 원인은 대부분 폐에 물이 차서 발생하는 호흡곤란 때문이다. (바닷물이 코에 조금만 들어와도 불쾌하기 이를데없던 찝질한 소금기를 떠올려보라.) 
추락사와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큰 폐를 끼치는 방법이기도 하다. 상상해 보라. 모처럼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 있는 이의 시야에, 혹은 수영을 즐기고 있는 사람 곁에서 시체가 두웅 떠오르는 장면을! 

7. 단두사
엄밀히 말하면 자살의 범주에 넣을 수 없지만, 정보 공유 차원에서 적는다.
신체에서 목이 떨어져 나가도, 십 초 정도는 뇌에 의식이 남아 있다고 한다. (놀랍다.) 폐와의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에, 그리고 턱을 움직일 수 있는 하악근의 연결이 끊어졌으므로 말은 할 수 없지만, 눈동자를 움직이며 십여 초 정도는 마지막 세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좀 괴로울 것이다.)

8. 음독사
가장 많이 이용되는 방법이지만, 자기 살해가 아닌 자기 연민의 냄새가 짙다. 죽음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삶에서 도피하는 자세로 여겨진다. 특별히 그 과정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성숙한 인간이 선택할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9.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Dorothy Parker의 시 한 편을 첨부한다.

- Resume 

Razors pain you; 
Rivers are damp; 
Acids stain you; 
And drugs cause cramp. 
Guns aren't lawful; 
Nooses give; 
Gas smells awful; 
You might as well live.   

 




    • 죽고 싶을때 들여다 보겠습니다. 친절한 사람들이 홱 돌면 제일 무서운 사람들이 되곤 하죠. ㅎㅎ

    • 저는 아니다 싶으면 그냥 제 세계에서 지워버리는데..
      • 사랑을 연필로 쓰시나봐요. 저 같은 만년필 애호가는 지우기 힘들어요. 잉크가 빛바래기를 기다릴 뿐.

    • 번역을 소흘히 한 후배 대신.. 도로시 파커의 시를 제가 한번 번역해보겠습니다. (라고 쓰지만 구글신의 도움을 받아 발로 의역..)




      - 다시 시작해




      면도날은 너를 아프게 할거야


      강은 축축하지


      염산을 들이마시는 건 끔찍한 부식을 일으키고


      잘못된 약을 먹으면 경련을 일으키게 돼


      권총은 구하기가 어렵고


      올가미는 쉽게 풀리는데다


      가스는 냄새가 더럽게 고약하니까


      너는 그냥 살수도 있단다



      • 친절한 칼리토님. ㅎ 다정 버전의 번역이네요. 다만 마지막 행은 '(차라리) 사는 게 낫겠다.' 쪽이 나을 듯.

    • 아 웃어야하는지 유용한 글이네요.ㅎㅎ 그런데 8번에 대해선 의문입니다. 자기 살해보다 자기연민이고 성숙한 인간이 할 일이 아니라고 하신 이유는요?
      • 응급실에 온 환자들 중 의사에게 가장 구박받는 게 자살 음독자들이라고 해요. 


        염산이나 청산가리 같은 독물은 즉사하지만, 대부분 수면유도제를 삼키고 실려오는데 아무리 많은 양을 삼켜봐야 안 죽는대요. 160알을 먹고도 반나절도 못 자고 깨어나는 실정이라고. 


        위세척 과정에서 엄청난 이물질이나 받아내야 해서 지나다니면서 꼬집하고 싶을 정도로 미운 감정이 든다더군요.



    • 많이 실망스러운 후배네요..정말 부끄러워 죽을거 같은 사람은 그런 말 입에...아아니 그런 상황을 안 만들죠. 하기싫음 하지를 말던가 할일이지 맡아놓고 개판치고 입다물고 있다가 추궁하면 죽고싶다니...뭐하자는?? 쓰다보니 내가 화남;;;;;;
      • 그러게요. 협박도 아니고 어리광도 못 되는 그런 주접스런 언사를 왜 입에 올리는 건지... 

    • 저도 근래에 비슷한 일이 있어서 울화가 치미다가 막상 사정을 알고는 또 마음이 약해지다가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살에 대한 생각은...  도피라기보다는 언젠가는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준비'비슷한 개념으로 가끔 떠올려봐요. 안락사/존엄사가 제 생전에 보편화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않다면 십중팔구 암이나 기타 고통스럽고 느릿한 질병으로 노년의 죽음을 병원에서 기다려야할텐데, - 적어도 지금생각으로는 - 정말 그렇게 자신의 의지가 아닌채로 살고 싶지않아서 -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 생각해보는거죠. 디그니타스같은 곳에 갈 준비를 미리 해놓을 것인가.. 뭐 이런....  가족들에게는 정말 할수없는 이야기죠.

      • 음. 실은 저는 한가지 방법을 찾아냈어요. 알기론 아직 시도된 적이 없는 방법이어서 성공 보장률을 확신할 수 없어서 정보 공유 차원에서 밝힐 수는 없...  -_-

    • 영화에서는 대개 신체에 뭔가를 당하자 마자 윽 하고 쓰러지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빨리 정신을 놓는 경우가 잘 없더라고요. 본문에 쓰인 방법 중에서도 1번이 그나마 경추와 신경 압박으로 의식을 빨리 잃는다고 들었고, 현실적으로 어려운 방법을 제외하면 대체로 숨을 거두기까지 꽤 오랜 시간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것 같아요. 스위스에서도 안락사는 근거가 충족돼야 해주는거니 내 의지대로 되는건 아니고, 그나마 견딜 고통이 덜할 것 같은 방법을 만일을 대비해 하나 골라 놓긴 했지만요. 응?               

      • 죽음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 골똘해본 분들이 많군요.


        사춘기를 지날 땐 죽느냐, 사느냐만 고민했던 것 같은데 이젠 침착하게 구체적인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우리는.... 더 이상 젊지 않은 것 같아서 뿌우~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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