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질러진 소바

우리는 냉소바를 먹으러 갔어요.
그 식당은 계산대 뒤로 오픈 키친인 구조예요.
음식이 나오면 직접 가서 받아와야 하죠. 계산대에는 앳된 여자 알바분이 있었고 오픈 키친에서는 사장님 또는 적어도 책임자로 보이는 분이 요리를 하고 있었어요.. 가게가 협소해서 모두가 서로의 상태를 자세히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었죠.

냉소바가 나왔습니다.
저의 지인은 냉소바를 가지러 갔지요. 평소 같으면 저도 함께 일어나서 받으러 갔을 텐데, 마침 업무 카톡에 답을 하느라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저의 지인이 자리에 돌아와 조용히 앉더니 “소바를 엎질렀어” 하면서 옷을 닦더라고요. 알바분이 한 손으로 소바가 놓인 쟁반을 내밀었고, 저의 지인이 그걸 두 손으로 받아들기 전에 알바분이 먼저 손을 놔버려서 냉소바가 다 엎어졌답니다. 지인 옷에도 다 튀고요. 그니깐 쟁반을 저쪽에서 주면 이쪽에서 보통 두 손으로 쟁반 양쪽을 잡잖아요. 그 양쪽을 잡으려고 한 순간 손을 너무 일찍 놔버린 거죠.
그 순간 요리하던 남자분이 죄송하다고 얘기를 했고 정작 손을 놔버린 알바분은 멀뚱 보고만 있더래요. (보통 그런 경우에 반사적으로 미안하다고 하든가 옷을 닦을 물티슈를 주지 않나요...) 물론 알바분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쟁반이 순간 무거워서 얼른 놔버린 걸수도 있지요. 제가 당사자였다면 아마 “헉 그렇게 빨리 놓으시면 어떡해요 ;;;” 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 지인분이 평소에 굉장히 까칠한 타입이에요. 그래서 본인 스스로 자신의 까칠함과 분노를 억누르려고 노력을 많이 하지요. 화내고 나면 몸이 아파요... 스트레스가 응급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는 병을 앓고 있기도 하고. 무례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굉장히 욱해서, 그런 것들에 해탈하려고 스스로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있고 또 많이 나아지기도 했어요. 여튼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옷을 닦고 숨을 고르던 그 지인이 결국 새로 만든 소바를 직접 들고 온 알바생에게 한마디 했어요. “최소한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남자분이 대신 사과해야 돼요?” 이때 요리하던 남자분이 우리 자리로 왔어요. “이 친구가 몰라서 그런 거고요.. 제가 아까 사과를 다 했고요..휴, 뭐 여튼 식사하세요” 그러길래. 아... 이거는 좀 아니지 않나 싶어서 제가 얘기를 했어요. 쟁반 다 받아들기 전에 손을 놔버려서 음식이 엎질러졌고 옷에 튀었고, 그럼 반사적으로 미안하다는 얘기가 먼저 나오지 않냐고. 어떤 서비스 같은 걸 바라는 게 아니라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닌 것은 이해한다고. 근데 길 가다 발을 밟아도 먼저 미안하단 말부터 반사적으로 나오지 않냐고. 그랬더니 알바분은 고개를 끄덕하면서 미안하단 눈빛을 보냈고, 요리하던 남자분은 “그래서 제가 아까 사과드렸고요” 라는 말을 반복.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저의 지인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가고, 아무래도 식사를 계속 하면 안될 거 같아서.
주문한 음식에 손도 안 대고 나와버렸어요. 우리는 대략 5분 정도 말없이 걸었고 저의 지인이 “미안해 내가 참았어야 했는데. 괜히 한마디 해가지고. 밥도 못 먹었네” 라고 말했지요.

여러분 의견은 어떠신가요.
저의 지인이 정말 그냥 참았어야 했을까요?
그 알바분이 낯을 많이 가려서 또는 손에 힘이 없어서 놓쳤을 거다 이해하면서 옷을 슥슥 닦고 식사를 즐겁게 마쳐야만 했을까요? 저의 지인이 과연 너무 예민하게 군걸까요? 그 식당의 요리사 남자분과 알바분은 아마 저희를 두고 겁나 (뭐 ㅈ나라고 하겠죠) 진상이다 가다가 넘어져라 어쩜 저렇게 이해심이 없냐 할 것도 같아요. 저는 한편으로는 이해하려고 들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생각도 들고 저의 지인 기분도 이해가 되고 그러긴 하는데. 저라면 과연 어땠을까... 끝까지 미안하단 말을 듣기 위해 따져 물었을까? 그냥 식사를 조용히 마치고 나왔을까? 아님 웃으면서 와 연약한 분이구나 쟁반도 못 들고 놔버리시네 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드네요. 저의 지인이 자기 스스로 너무 예민한 게 아닌가 해서 꾹 참아 버릇하는 것도 안쓰럽기도 하고...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네요. 제가 얘기할 때 알바분이 미안하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하면서 생글거렸는데. 저의 지인은 그 눈빛을 미안한 눈빛이 아니라 비웃는 눈빛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너는 지껄이세요 나는 웃을게요. 그런 거요.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 정당한 대응도 중요하지만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건강하게 살죠 힘든일이지만요
    • 제 생각엔~은밀한 생님의 지인처럼 그 여자 알바생분도 뭔가 정신적으로 약간 아픈분이 아닐까요?


      보통 그런 상황에서 알바생이 실수를 하면 책임자가 알바생을 나무라고 혼내는 과정이 선행되고


      함께 사과를 하는 상황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런데 책임자가 먼저 사과를 하고 알바생에게 사과를 종용하지 않는 걸 보면


      사과를 종용할수 없는 어떤 사정이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의견을 말씀 드리면 그 지인분은 그런 사람이


      어떻게 서비스직에서 일을 할수 있냐고 말씀하시려나요?

    • 왜 다수의 의견이 궁금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알바분이 사과를 바로 하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주인분이 사과하셨어도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잡지도 않았는데 놔버린 것이잖아요.


      그렇지만 그 분이 너무 큰일(?)을 저질렀기에 자기방어적으로 미안하단 말씀을 못드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미숙한 판단하의 행동에 대한 심정적 이해는 갑니다.


      주인이 이야기를 안했다면 종내는 그 분이 미안하다고 했겠지요.


      카드라든가, 영수증이 떨어졌을때는 그 알바 분이 미안하다고 바로 말했을지도 모르구요.. 암튼 그 주인분도 미숙하시네요. 기분 언짢으셨겠어요. 소바가 맛없던 집이었기를 바랍니다(저도 냉소바를 좋아하는데 말이지요;;)



    • 얼른 상황에 맞게 행동이 안되는 사람이 있어요 성격이 미숙한거죠
    • 제가 이해하는 한도에서 말씀드리면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이 서빙하는 분보다 상위 책임자 아닐까요?

      만약 내 사업장에서 사고가 났는데

      당사자가 바로 대처를 못했다면 상급자가 대처한거면 바른 대응 같아서요.

      알바가 사고를 냈으니 알바가 사과한다는 오히려 무성의한거 같은데요.


      지인 화나신 포인트가 사과한 사람도 무예의했다가 아니라 사고낸 사람이 사과하지 않아서 기분이 상하신거 같아서요


      회사도 신입이 잘못하고 어버버하고 있으면 상급자가 사과든 뒤처리든 하니까요.
    • 네 댓글 달아주신 분들 다 감사드려요..전 그 지인분을 완전히 이해하고 싶었는데, 그렇게까지 화를 내고 직접 냉소바를 들고 온 알바분한테 꼭 뭐라 했어야했나 좋게 말해도 되지 않았나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저의 지인분이 식당을 나와서도 그 알바분이 끝까지 사과를 안 했다며 계속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힘들어했는데, 많이 다독여주질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놓친 부분이 있나 해서 여러분의 관점을 듣고 싶었지요.. 제가 잘해주고 싶은 사람이고 다음에 혹여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제가 어찌해야할지 조금 아득해졌었어요. 모두 감사드립니다.
    • 글을 읽으며 좀 의아했던 점이 있는데... 그 식당에서는 알바가 음식을 쟁반에 담아 손에서 손으로  


      손님에게 직접 건네주는 방식인가요? 


      손님이 음식을 직접 받아가는 식당의 경우 보통 주방 앞에 선반이 있어서 음식을 쟁반에 담아 선반 위에 


      놓으면 손님이 쟁반을 들고 가는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저렇게 손에서 손으로 건네주는 방식은 주고 받는 타이밍에 따라 쟁반을 놓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번엔 냉소바여서 그나마 다행이지 뜨거운 찌개나 탕이었으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방식인데 


      이런 식으로 음식을 건네주는 것 자체가 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모든 손님에게 이렇게 일일이 건네주는 방식이라면 알바가 조금만 부주의해서 손님이 쟁반을 잡았다고 착각하거나 


      혹은 알바가 피로해서 손이 미끄러지거나 쟁반의 중심을 제대로 못 잡은 경우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데 


      이런 방식으로 음식을 손님에게 건네주게 하고 사고가 난 것에 대한 책임은 주인이 져야 할 것 같네요. 


      그래서 저는 좀 다른 의미에서 주인이 사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저라면 주인에게 이런 방식으로 건네주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으니 선반 하나 놓고 손님이 직접 들고 가게 하라고 한 마디 하겠습니다. 



      • 그러게요.. 저의 지인도 그 얘기를 했었어요. 그냥 계산대 옆에 놔뒀으면 잘 들고 왔을텐데, 왜 알바생이 한손으로 쟁반을 줬는지 이해가 안된다고요..지인분이 아픈 사람이라 외곽 은신처에서 요양중인 와중에 어렵게 도심으로 나왔는데, 밥도 못 먹고 괴로워하는 게 속이 상해서 저도 사과에만 집착해서 얘기를 한 것 같아요. 그 남자분이 "휴 여튼 뭐 드세요" 내뱉는 것에 좀 빈정 상하기도 했고... 언더그라운드님 의견을 읽어보니 저도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건 누구도 넘고 싶어 하지 않는 빨간 선 같은 거죠.
      요즘 같은 불확실성의 세상에서는 실수를 인정하는 게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는 생각들을 자동으로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양쪽 다 정서적 미성숙과 사회성 기능의 결여를 숙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 -

      그나저나 저 위의 '어디로 가야하나'님의 닉네임을 볼 때마다 잃어버린 자매가 있었나 하고 살큼 놀라게 된다능~ ㅋ
    •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라고 5 세 무렵부터 배우지 않나요? 




      알바 첫날이었다든가, 평범한 사람 생각 이상으로 당황해서 사과가 안 나왔을 상황은 있을 거예요. 




      쟁반을 한 손으로 든 것도 제 기준으론 이해가 안 되지만, 평소에 집에서도 그래왔고 매장에서도 그랬는데 아무 문제가 없어왔다면 역시 그럴 수는 있을 것 같고요. 부주의한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고, 보통은 안 그러다가 몇 가지 특정한 부주의한 짓을 하는 사람은 더 많으니까요.




      여기서 이상한 점은 상급자 태도입니다. 

      사과가 거스름돈인가요, 내가 줬는데 왜 쟤한테 또 요구하냐니? 

      사과를 했더라도 일 잘못 한 것에 대한 지적은 분명히 하고 넘어갔어야죠. 




      그럴 '수도' 있다고 알바생한테는 해놓고 상급자 태도는 이상하다고 한 이유는요, 이 분은 문제 자체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데다가(이것 자체는 은밀한 생 님의 위치와 같죠) , 어쨌거나 경험이 있으니 그 자리에 있을 텐데 프로답지 못해서예요.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무경험 자영업자라면 역시 이해'는' 됩니다만.




      여기까지는 강 건너 불일 때의 입장이고요,




      관람석에서 내려가 막상 링에 오른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봤습니다. 

      소심한 사람 화내고 나면 후폭풍이 더 괴롭다는 걸 몇십 년의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에 아마 그냥 넘어갔을 겁니다. 꾹꾹 누른다가보다 순식간에 배출하는 방식을 써요. 남 몰래.

      글로만 보면 식당을 나온 뒤에 은밀한 생 님에게 계속 뭐라 말씀을 하신 모양인데, 물론 말투에 따라 다르긴 하겠습니다만, 이것 역시 일종의 가해라고 생각됩니다. (제 경우는 앞에 말한 후폭풍 중 하나기도 합니다. 화내면서 흩어진 멘탈을 꿍얼대면서 주워담는 것. )역시 이해는 됩니다. 게다가 아프시다니. (저의 이해심이 말머리 성운에 가 닿을 기세입니다.) 

      • 거기 처음 오픈할 때부터 다녔는데 3년이 됐어요. 언더그라운드님 댓글 읽고 생각해보니 가끔 갈 때마다 늘 알바분이 쟁반을 내밀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그 가게 알바 메뉴얼인듯.. 아직 초보 알바고 익숙하지 않아서 또 쟁반이 무거워서 놔버린건가 이해하려고요.. 저의 지인이 식당을 나와서 저에게 미안해 하기도 하고, 알바가 끝까지 사과를 안한 부분. 그리고 그냥 참으려고 했는데, 지인쪽 자리에서만 보였던(저는 그 오픈 키친을 등지고 앉았거든요) 그들의 웃고 장난치던 표정에 결국 화가 폭발했다며 괴로워하던 지인을 온전히 달래주지 못한 게 계속 마음에 남았나봐요. 그래서 듀게에 글을 올려서 묻고... 문님 말씀처럼 저도 화를 내고 나서 후폭풍을 더 괴로워하는 사람이라... 구업이라고 하죠. 말로 짓는 죄를 탑처럼 쌓기도 싫고... 그러다보니 이젠 화를 내야하는 상황인지 아닌지도 좀 헷갈리는 것 같아요 ㅎ 많이 그 지인을 이해하고 싶어요. 참 재주 좋고 자존심 강한 예술가인데 몹쓸 병에 걸렸거든요.. 그냥 다 안타깝습니다. 말머리 성운에 가닿을 기세로 이해하고 싶어요. 섬세한 말씀 감사해요 문님^^
    • 알바생이 미안하단 이야기 안한건 잘못이라고 봐요. 근데 하나하나 잘못을 따지고 들자면 주변에 그보다도 이상한 사람들 천지인데 피곤한 일이에요. 마동석처럼 생기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겁니다. 그냥 넘기는 연습을 하는 게 마음 편할 듯 해요. 나 자신을 보호하려면 내가 바뀌어야죠. 그 자리에서 진상소리 듣더라도 알바생에게 더 야무지게 따졌거나, 내 마음을 다스렸거나.. 전자는 아니실 것 같아요.

      지인분 이해하려 너무 애쓰지 마시고 그저 방관하듯 오래 곁을 지켜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좋은 관계 이어나가시길.
    • 저 같은 경우 제가 개발한 해법은 '이건 중요한 일이 아니야'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거예요. 감사나 사과의 말이 못 받으면 속상하긴 하겠지만 수학적 가치는 0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더라구요. 사과의 말보다는 냉정하게 세탁비 얘기가 나왔을 상황이라고 봅니다.

    • 차라리 세탁비나 그에 상응하는 해결책을 요구하는 게 마음이 편했을 것 같네요. 돈 받고 다른 데 가서 밥 먹는 게 낫죠. 이미 알바가 자기만의 잘못이 아니라 생각하고 버티는데 억지로 사과를 받아내봐야 ..
    • 진지하게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그 식당에 다시 찾아가서 커피라도 드리고 좋게 봉합을 해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음 그건 아무래도 오버액션 같아서 이대로 바람에 날려버리는 게 맞겠지...합니다. 모두 감사드려요.
    • 지인분이 아프시단 말씀을 여러 번 하셨는데, 그와는 관계없이 너무나도 무례한 대응이었네요. 아프지 않은 사람이라도 충분히 기분 나빠할 만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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