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넷플릭스 업데이트된 '사바하'와 '박화영'을 봤네요.

 - 뭐 역시나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1. 사바하는... 감독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과는 여러모로 다른 영화였습니다.

 검은 사제들은 걍 엑소시스트의 한국 로컬라이제이션 버전 같은 영화였잖아요. 더불어서 이야기가 사실 되게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심플하고 군더더기가 없었죠. 그런데 그 현지화가 아주 잘 되었고 또 간단한 이야기를 이루고 있는 건더기들이 꽤 실해서 재밌게 봤었는데. 사바하를 보면서는 딱히 해외 장르들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대신 전설의 고향 + 그것이 알고 싶다(...) 생각이 계속 나더라구요. 전설의 고향으로 시작해서 그것이 알고 싶다가 한 시간 남짓 진행되다가 결국엔 전설의 고향으로 끝이 납니다. 


 전설의 고향 파트는 상당히 좋아요. 특히 결말보단 도입부가 훨씬 인상적입니다. 분위기, 캐릭터 다 좋아서 기대감이 상당히 업되는 시간이었는데, 문제는 그 이야기가 거의 결말 직전까지 실종에 가깝게 비중이 없어요. 그냥 결말에서 갑자기 그 이야기가 튀어나오면 너무 어색해질 거라 도입부에서 미리 보여준 정도.... 랄까요. 

 그리고 그것이 알고 싶다 파트는, 좀 애매합니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막 긴장되고 놀랍고 그런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게다가 호러 파트보다 분량이 훨씬 많아서 보다보면 종종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호러를 보려고 이 영화를 골랐는데 말입니다. ㅋㅋ 보면서 혹시 감독도 그것이 알고 싶다 생각을 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나름 비중 있는 역할로 전직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자님이 나오시거든요(...)


 클라이막스 즈음에 전개되는 이정재 개인의 종교적 믿음에 관한 드라마는 꽤 괜찮았어요. 사실 좀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는 느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름 밑밥은 깔아뒀었고, 또 클라이막스의 전개와 꽤 잘 맞물려 돌아가면서 드라마틱한 느낌을 주거든요. 다만 개신교에 악감정이 많은 분들이라면 맘에 안 들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근데 사실 가장 큰 단점은...

 캐스팅 자체가 스포일러인 모 캐릭터의 등장이었죠. ㅋㅋㅋ 전 그 분이 여기 나오시는 줄도 모르고 봤는데, 그 분 얼굴이 튀어나오자마자 사건의 진상이 주마등처럼 눈 앞을 스치며... 하하. 감독은 도대체 뭔 생각으로 그 분을 캐스팅했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결과가 나올 거라고 예상 못 했을 리가 없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한참 고민을 하다가 그냥 저 혼자 '"그래, 배우 농담이구나. 그 분의 인생 히트작 제목이..." 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중요한 떡밥을 품고 있는 소녀 역할로 이재인이 나오죠. 사실 이 영화의 기대 포인트 중 하나였는데 분량이 적어서 시무룩...

 혹시라도 이 영화를 보고 이 분이 맘에 드시면 꼭 '어른도감'을 봐 주세요. 영화 자체도 꽤 재밌고 이재인의 연기도 무척 좋으며 캐릭터도 아주아주 매력적입니다. 공기 청정기 좋아하는 권사님도 함께 나오십니다. 그러니(?) 꼭 보세요. 꼭이요. ㅋㅋ




2. 저는 제가 '박화영'을 이미 봤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유는 있습니다. iptv에서 오래전에 무료로 풀려서 당시에 틀어봤었거든요. 근데... 기억도 안 나는 이유로 보다가 말았던 모양입니다. 영화가 재미 없었거나 보기 싫었던 건 아니고, 그냥 보다가 뭔 일이 생겨서 멈췄다가 그냥 그대로 까먹어 버린 거였겠죠 뭐.

 암튼 그래서 넷플릭스에 업데이트 되고 나서도 며칠을 냅두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해보니 영화의 시작 부분만 기억이 나고 나머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혹시 내가 이 영화를 안 봤나... 하고 재생을 해서 10분쯤 지나 보니 확실히 안 봤더라구요. ㅋㅋ 그래서 오늘 봤습니다.


 어쩌면 요즘 한국 영화의 (특히 인디 영화들) 서브 장르가 되어 버린 게 아닌가 싶은 '극사실주의로 리얼한 양아치 중고딩들 이야기'에 속하는 영홥니다. '파수꾼'이라든가 '꿈의 제인' 같은 선례들이 있죠. '살아남은 아이'나 '한공주', '용순' 같은 경우도 넓게 보면 같은 범주라고 우겨볼 수 있겠습니다만.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거죠. 이 소재를 택한 영화들은 보기가 피곤해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까지 견뎌야할 게 너무 많죠.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결말이 꿈도 희망도 없습니다. 그러니 다 보고 나면 기분 암담 찝찝 침울해지는 영화가 싫으신 분들은 이런 장르(?)는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 '박화영'은 견디기 난이도가 꽤 낮은 편입니다. 소재면에서 가장 비슷한 '꿈의 제인'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래요. '꿈의 제인'은 제겐 거의 한공주급의 고문이었거든요. 결말을 보고 난 후의 착잡한 기분도 '살아남은 아이'에 절대 뒤쳐지지 않는 수준이었고. 반면에 '박화영'은 자꾸 더러운 장면들이 나와서 짜증나긴 해도 보는 동안 딱히 고통스럽지는 않았고 결말을 보고 나서도 불쾌한 뒷맛이 남진 않아요. 


 왜 그런가... 생각을 해보면 아마 이유는 그것 같아요. '박화영'은 되게 공식에 충실한 장르물입니다. 시작하고 10분만 지나면 결말이 어떻게될지를 다 눈치챌 수 있고 심지어 마지막 장면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해낼 수 있어요. ㅋㅋ 주인공 박화영 역시 그 장르물의 주인공 역할에 딱 들어 맞는 특성을 고루 갖춘 캐릭터구요. 리얼한 터치로 묘사된 '픽션의 인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죠. 극사실주의적인 건 어디까지나 박화영을 둘러싼 주변 양아치들이고 박화영은 이렇게 대놓고 '주인공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 양반이 당하는 수난들이 그렇게 리얼하게 와닿지는 않았어요.


 '꿈의 제인' 같은 경우엔 뭐 그랬죠. 이야기도 장르물의 이야기가 아니구요. 주인공은 주변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현실에서 한 놈 콕 잡아다가 영화에 던져 놓은 것처럼 현실적이었습니다. 정말 징글징글할 정도로 현실적이어서 감독이 열심히 만들어 넣은 환상적인 설정들에도 불구하고 다 보고 나면 그냥 다큐멘터리를 본 기분이랄까... 뭐 그랬거든요.


 근데 전 '꿈의 제인'을 아주 좋게 보긴 했지만 비슷한 영화를 또 보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박화영'의 이런 느낌이 괜찮았습니다. 맘에 들었어요.


 ...이러쿵저러쿵 한참을 적었는데 정작 영화 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네요. ㅋㅋ


 간단히 말하면 느와르 무빕니다. 21세기 한국 양아치들 버전으로 번안된, 순애보 주인공이 등장하는 느와르라고나 할까요. 이야기 자체는 꽤 괜찮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으며 캐릭터도 잘 살아 있어서 볼만해요. 절대로 재미 없는 영화는 아니구요.

 다만 결말 근처의 이야기 전개는 살짝 허술해지는 느낌도 들고. 또 어차피 공식대로 흘러갈 것이 뻔히 보여서 결말에서의 감흥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론 '꿈의 제인' 쪽이 훨씬 잘 만든 영화라는 느낌이었네요. 하지만 감독이 범죄자

 어차피 넷플릭스에 있는 영화이니 넷플릭스 유저 분들은 한 10분 정도 보시고 그때까지 영화의 분위기가 감당이 된다 싶음 보시고, 아니면 꺼버리시면 됩니다. ㅋㅋ



 - 검색으로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박화영 역할의 김가희씨가 꿈의 제인에도 출연했었군요. ㅋㅋㅋ 근데 몰라봤어도 딱히 쪽팔림은 없습니다. 박화영을 위해 살을 엄청 찌우신 데다가 정말 구질구질하게만 하고 나와서...;

 근데 이 분 연기 정말 좋았어요. 영화를 보다보면 박화영은 정말 입만 벌리면 욕부터 내뱉고 보는 캐릭터인데, 그 욕들이 계속 미묘하게 어색하고 또 하나도 안 위협적인 느낌입니다. 사실은 허술하고 나약한 애인데 센 척하느라 욕을 많이 하되 잘 하진 못 하고 하나도 안 무섭다. 말로는 쉬운데 연기를 이렇게 하려고 하면 되게 애매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근데 그걸 되게 잘 살리시더라구요. 감탄.


 - 그리고 이 장르(?) 영화들을 여럿 보면서 늘 하는 생각인데. 어째서 대한민국엔 이렇게 건달&양아치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이 많은 거죠. 다들 살면서 몇 명씩은 겪어봐서 그런 걸까요(...)


 - 마지막에 아주 잠깐 나오는 어떤 분의 얼굴을 보고 '분명히 어디 봤는데!!' 하고 고민하다 기억해냈습니다. 망한 스릴러 영화 '나를 기억해'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역으로 나왔어서 기억이 났던 것 같네요. 괜히 뿌듯뿌듯.


 - 요즘들어 이런 글 쓸 때마다 너무 개연성에 집착하는 것 같아 그냥 넘어가려다가 결국 못 참고 덧붙입니다만. 이야기의 큰 덩어리들에 좀 크게 거슬리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일단 박화영의 친구 은미정씨의 경우엔 캐릭터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아무리 무명이라지만 연예인 생활 하는 애가 그런 식으로 살고도 무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건의 경우도 그래요. 아무리 우리가 공권력 불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지만 사건의 무거움과 사건 정황의 디테일을 생각할 때 그 일이 그런 식으로 박화영의 의도(?)대로 풀릴 가능성은 없습니다. 감독님이 시나리오 집필 막판에 많이 지치셨었나... 싶습니다. =ㅅ=;;

    • 저는 박화영 다운받아는 놨는데... 못 보겠더라고요. 쭈구리였던 고교시절이 생각날 거 같아서...(...) 표현수위가 쎈 영화라 보기 힘든 것도 있겠는데 쓰신 거 읽어보면 생각보다는 약한가 어떨지 모르겠네요.
      • 저도 고딩 때 한 쭈굴(?) 했지만 그건 상관 없어요. 애초에 등장인물들이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사이 좋게 양아치들 뿐이어서 평범하게 사신 분들이 악몽 떠올리실 일은 없습니다. 피해자에 감정 이입이 안 되거든요. ㅋㅋ


        근데 영화의 양아치 표현 수위는 세요. 수위는 최상위권인데 영화 내용이 그냥 장르물이어서 그런지 의외로 덜 고통스럽더라... 는 얘기였습니다.
    • '극사실주의로 리얼한 양아치 중고딩들 이야기'가 견디기 어려워서 잘 안보는 1인입니다. 오래전 파수꾼만 간신히 보았죠. 꿈의 제인은 킵, 박화영은 트라이해보는 걸로.. 자객섭은낭도 넷플에 올라왔길래 일단 찜은 해두었어요. 이런 식으로 찜만 해 둔 영화가... 음. 그리고 뭐 또 볼 게 없나 두리번(...) 책사서 책장에 꽂아놓고 '좋았어!'한 다음에 영영 안 읽게되는 그것!을 넷플에서 만끽하고 있습니다...... 암튼 이런 리뷰 감사합니다. 매진해주세요 ㅎ
      • 저도 이쪽 장르를 좋아하진 않는데 좀 주목받은 한국 인디들 중에 이쪽 장르가 많아서 의무감으로 봅니다. ㅋㅋ


        전 '로마'를 그런 식으로 킵해뒀는데 대체 언제 볼지 모르겠네요. 이래서 어지간하면 언젠간 볼 것 같은 영화는 그냥 빨리 봐버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 와우 저랑 완전히 반대의 감상이라서 신기하네요... 전 <꿈의 제인>은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체할 수 없을만큼 두근대면서 삶의 의지를 느낀 반면, <박화영>은 리얼리티를 핑계로 밑도 끝도 없이 피학에 동참할 것을 관객들에게 요구하는 영화 같아서 힘들었거든요. 시작한지 오분만에 박화영의 허세가 견디기 힘들어서 거의 눈을 가리다시피 하고 봤어요...
      • 사람마다 소감은 다른 것이고 그래서 박화영에 대한 말씀도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꿈의 제인에서 두근대는 삶의 의지를 읽으셨다니 Sonny님은 긍정왕... 도 아니고 긍정의 신이 아니신가 싶습니다. ㅋㅋ


        오해하실까봐 덧붙이지만 당연히 비꼬는 거 아니구요. 생각해보면 꿈의 제인의 'a이지만 b가 된다' 라는 내용을 Sonny님과 제가 각각 a와 b의 위치를 바꿔서 거꾸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뭐 이야기 구조가 의도적으로 애매하게 되어 있으니 그런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긴 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이야기 구조는 그렇게 되어있지만 결국 영화라는 매체가 무조건 순행으로 흘러간다는 점을 생각할 때, 불행해도 죽지 말고 살라는 그 메시지와 엔딩은 영화의 실제 사건과 판타지를 충분히 엎을 만큼 제인이 관객 모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받아들였거든요. 저는 감독의 의도를 있는 그대로 수긍했어요. 정말 가슴이 뜨거워졌었어요...
          • 네 감독의 의도는 명백했죠. 하지만 제겐 그 전까지의 이야기가, 특히 주인공의 그... 스포일러라 말할 수 없는 그... ㅋㅋㅋ

            그러니까 (일부러 모호하게 말하지만 보신 분들은 이해하실 테니) 결국 주인공이 1, 2, 3 중에 3을 겪고도 2처럼 되어 버리고 1의... 뭐 그런 이야기가 되니까요. 꿈의 제인 주인공에 비하면 박화영은 거의 성인군자에 현자급이기도 하고... 뭐 그랬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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