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 vs 아, 이러니?

아이러니. 사전에는 반어, 풍자, 역설의 세 가지 의미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저는 주로 '역설'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어요. '그건 아이러니하다'고 말할 때, 제 시선은 표면 아래의 진의, 즉 숨겨진 의미에 닿아 있습니다. 아이러니를 통해 저는 눈 앞의 삶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삶이 어디선가 고요히, 그러나 쉬지 않고 흘러감을 느낍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러니는 역설이기 이전에 놀라움이죠. 그 놀라움은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합니다.

아이러니를 항상 "아,  이러니!" 라고 분절해서 발음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렇게 읽으면 또 뜻이 달라지죠. 근데 '아, 이러니!'는 눈 앞의 것에 사로잡힌 말 아닐까요? 돼야 할 것이 되지 않고,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 나오는 탄식의 말이잖아요. 그저 그정도의 감탄사인 거라고 해석해줬다가 그에게 등짝 스매싱 당했던 기억이...- -

아이러니는 눈 앞 세계의 진행과 병행하는 심층세계의 흐름을 감지할 때 생겨납니다. 고귀한 삶의 그림자가 천하고, 밝은 삶의 그림자가 어두울 때, 또는 그 반대의 경우에 아이러니가 있고, 기쁜 일들로 부산한 시간이 서늘한 슬픔의 수레를 타고 갈 때, 또는 그 반대의 경우에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림자 놀이에서, 두 손을 허공 중에 움직여 토끼나 갈매기를 형용하려 했는데 벽면에는 의도하지 않은 신기한 형상들이 나타날 때, 그 어긋남에 아이러니가 있는 것이죠.

삶이 있고 어긋남이 있으며, 그렇게 어긋난 삶이  이유 없이도 이미 나름의 삶인 이치 속에 아이러니는 있습니다. 밝거나 어두운 삶의 표정에 몰입하지 못하다가, 그 이유가 삶의 서늘한 그림자에 있음을 문득 깨닫는 시간대에 아이러니의 바람은 불고 있어요.
그런데 그림자가 있다면 그림자를 만드는 태양이란 또 무엇일까요? 어긋난 삶도 삶이라면, 어긋남이란 애초에 또 무엇이었을까요? 욕망을 알기 이전부터 기대했던,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환한 삶. 그런 것이 우리에게 있기는 있었던 걸까요?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하면, 일상이 평화롭게 흘러갈 때 아이러니는 어디에도 없습니다.살아야 할, 이미 살고 있는 삶이 있을 뿐이죠.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아이러니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아, 생각하고 싶지 않아.'라고 절레절레 고개짓하는 것이겠죠. 살다보면 아이러니 뿐만이 아니라 어느새 삶이란 것도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덧: 3 년 간 소원했던 친구를 공적인 일로 지난 주말에 만나게 됐어요. 정든 시간이 안 본 시간을 이기더군요.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근데 이 친구가 어제 아침에 전화해서는 뜬금없이 제 차를 바꿔주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어요. @@ 
지금 타고 있는 차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건데 저같이 자주 정신줄 놓는 사람이 타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괜찮은 종이에요. 
아니, 그런 것과 상관없이 너무 같잖은 마음 표현 아닌가요? 친구가 이름 대면 알 만한 재벌을 아버지로 두긴했어요. 하지만 정확히 모르긴 해도 연봉은 제가 그 친구보다 높을 거에요. 쓴소리 한마디 날려줬는데 친구는 해맑해맑~  아, 이러니?


    • 돌아보면 내이야기라 그래서 역설이 되겠습니다 물론 방금 지어낸 말.

    • '아, 이러니'와 왜, 이러니'는 전혀 다른 세계인데 이 둘을 연동시키는 상황/사람이 흔해서 자주 지칩니다.
      아이러니의 세계를 가장 잘 보여준 작가로 저는 도스토옙스키를 꼽는데, 그가 이야기보다 도박에 빠진 이유를 알 것 같... - -
    • 왜 댓글이 하나 밖에 없냐면 재벌 자식 친구가 부러워서

      • 친구가 재벌 아들인 게 왜 부러울 일인가요? ㅋ 
        학창시절 그에게 자판커피 한 잔 얻어마셔본 적 없음. 거의 단벌 차림에 학기마다 등록금 언급하며 휴학 뜻 비춰서 형편 어려운 친구인 줄만 알았음. 3학년 때, 그가 오로라 한정판 만년필 '마레' (저 같은 만년필 덕후들이나 알아보는 명품)을 쓰고 있는 걸 발견하면서 수상한 친구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됨. "어째서 거짓말을 일삼았냐?" 라는 제 질문에 끝까지 대답 안 했음.
        이젠 알아요, 그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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