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마비로 쓰러진 노인

오늘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 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걸어서 두어시간이면 종주가 가능한 조그만 섬에서 출발한 배가 중간정박항에 도착할 즈음 미리 일어나 출구로 이어진 계단으로 향하는데 화장실로 연결된 복도 입구에서 왠 노인이 아주 조용히 주저 앉듯 쓰러지더군요. 얼굴색이 아주 시커매지며 숨도 못 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경우 필요한 응급처치가 머릿속을 맴돌 뿐 멍 때리고 있는데 주변에 있던 다른 승객들이 다급하게 가장 가까이 있던 매점 판매원에게 노인이 쓰러졌다는 것을 알리자 그 판매원은 상기된 표정이었만 노인이 쓰러져 있는걸 확인하고는 위층의 운전실쪽으로 소리를 지르며 누군가를 호출했고 바로 심각한 표정의 승무원이 달려 내려 왔어요. 노인이 쓰러지고 1분도 안지나는 동안 벌어진 상황입니다.  곁에서 공연히 구호 조치 하는걸 지켜 보겠다는건 방해가 된다는 것을 직감하고 자리를 피해 출구쪽으로 올라가서 그 뒤 상황은 못 봤어요.

중간 기착지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10여분 거리의 상해로 가는 배가 출발하는 항구로 이동하는 내내 그 까만 노인의 얼굴이 떠 오르 더군요.


여객선 터미널에서는 배가 출발하기 1시간 전부터 표를 팔던데 이상하게 오늘은 출발 15분전이 돼서야 표를 팔기 시작하더군요.  그 이유는 배를 타고 나서 알게 됐습니다.


상해로 가는 배를 탔더니 출구에서 가장 가까운 좌석앞 넓은 공간에 노인이 링겔을 맞으며 누워 있었고 옆에는 의료진이 3명이 있었어요. 아까 쓰러진 그 노인인지 아닌지는 분간할 수가 없었어요. 얼굴색이 핏기 없어 보일 정도로 밝았거든요. 자세히 보는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보는 거나 모두 민폐일거 같아서 부질 없는 궁금증은 혼자 삭히기로 했습니다.

상해쪽 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부두까지 구급차가 와서 대기하고 있더군요.

제발 아까 쓰러졌던 노인이 지금 저 구급차에 타는 환자이길 바랄 뿐이에요.


이번 출장은 섬 마을 중에서도 빈집이 많아지면서 주거 환경의 구조안전과 위생면에서 한계에 달한 곳에 대한 실태조사 업무였어요. 주로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과 부분 개조와 철거 및 재건축을 가름하는데 필요한 기초 자료를 정리하기 위함이었는데, 조사 대상인 140여 가구 중 1/4이 채 안되는 집들만 사람이 살고 있었고 그 대부분은 노인들이었어요. 쓰러진 노인의 새까만 얼굴과 지난 몇일간 그 마을에서 마주친 노인들의 얼굴이 오버랩 됩니다.
그 노인은 어찌 보면 얼마나 운이 좋았던 것일까요? 마침 응급조치가 가능한 승무원이 있는 배를 탔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저 낙도의 3/4 이 텅 빈 마을의 노인들은 어쩌죠?

그 쇠락해가는 섬마을은 관광개발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수년 후에는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되겠지만 저 스러져 가는 노인들의 생활과 그 시간들은 되돌릴 수가 없겠죠. 그리고 조그마한 육체적 손상도 치명적일 수 있는 위험을 늘 달고 말이죠.

인생의 허무함이 아니라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닫는 경험이었어요.

    • 수명이 늘어났을 뿐 예나 지금이나 오래 살아 늙으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인생의 한계죠 연속 본 환자가 그 노인네면 잠시 다행이네요
      • 이런 가끔도사님....
    • 특별한 목도였다는 점에서 소부님에겐 '그날'로 기억되겠군요. 이 글의 어디가 제 마음을 건드리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뜬금없이 '노인과 아이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회는 나쁜 사회다'는 말만 떠오르고.... 

      • 낮에 흔들리는 차 안에서 폰으로 쓴 글이라 엉망진창이던 것을 좀 전에 다시 보면서 고쳤어요. 아마 너무 난삽한 문장들이 심기를 건든게 아닐까 싶은...;;


        ’ 노인과 아이의 신음소리...’는 누가 한 말인가요? 아니면 어느 나라에서 전해지는 경구인가요? 

        • "노인의 신음소리를 멈추게 하라~ 탄생하는 순간의 아이 울음소리 외의 아이들 비명은 우리의 죄악이다~" 는 서구사회에서 정형화된 시위 구호예요. 차음 들었던 건 여섯 살 때 스웨덴 웁살라에서였는데, 뭔지도 모르고 외삼촌 손잡고 참여했던 시위 행렬에서였습니다. ㅋ
          • 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다른 버전 같아요. 어디님 덕에 새로 알게된 버전이 더 마음에 드는군요! 취향저격~
    • 후- 남 일이 아니네요. 가끔 무섭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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