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파동이 쓸고 간 자리

이번 조국 파동에서 제일 지겨웠던 점은 더민주와 자한당의 양강 구도 대결 끝에 또 울며 겨자먹기로 더민주라는 차악을 선택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정치적 대결구도는 항상 하나의 답을 강요합니다. 자한당은 죽어도 안되니까, 하나뿐인 대안으로 더민주를 고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저 역시도 청문회 소식을 들으면서 조국에 대한 실망과 이를 비호하는 더민주에 대한 회의가, 자한당과 검찰에 대한 경멸을 끝내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간판을 걸고 있는 정의당은 대안이 되지 못하며, 이 때다 싶어 기회로 만들지도 못하는가. 촛불시위와 박근혜 탄핵 이후로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자한당 중심으로 정치가 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자한당에 찬성할 것이냐 반대할 것이냐. 이 구도에서 더민주는 심지어 주어로 등장하지도 못하는 것 같아요. 본인들 스스로 만든 이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더민주는 동등한 라이벌이 아니라 자한당이라는 적폐를 숙주로 삼는 기생적 정치주체로 보일 때가 있거든요. 과거에는 자한당에 저항하는 모양새였다면 이제는 자한당의 저항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샅바싸움의 유일한 파트너 같달까. 힘의 방향과 크기만 달라질 뿐 여전히 중심은 자한당 같습니다.


현실의 정치는 참으로 매력없는 스토리입니다. 선택을 위해서는 매혹이 필요한데, 한국의 현실정치에선 환멸을 두고 겨룹니다. 너무 난장판이라서 아예 신경을 끄게 되니까 자한당에 대한 더민주의 승리가 무거운 피로로 다가옵니다. 이번 여론 조사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답안이 50%를 넘겼고(리얼미터라고 기억하는데 정확하진 않습니다) 더민주의 지지도는 3% 떨어진 반면 자한당의 지지도는 4%였나 올랐더군요. 그러니까 조국이 임명되서 다행이어야 할까요. 검찰이나 자한당의 승리를 저지했다는 점에서 안도를 해야 할 텐데, 그러면 파랑 적폐를 용인했다는 생각에 괜히 괴롭습니다. 당장 촛불시위의 불씨는 정유라씨의 부정입학이었고 이 때문에 삼성공화국의 황태자까지도 감옥 문턱을 밟았었잖아요?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고 싶어지죠. 당신이 최우선으로 여기는 그 지지율이 이번 이슈에 한정해서는 잠깐의 변덕으로 치부하기 어려울 만큼 결정적 균열을 일으키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 인사를 꼭 강행했어야 하느냐고. 이해는 합니다. 당장에 자한당에게 승기를 내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검찰개혁의 칼을 칼집 안에 넣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더민주 내에서 검찰 개혁의 칼자루를 맡길 사람이 정말 없었나요. 그 검찰개혁이 교육문제, 결정적으로는 계급상승의 유일한 콩나무를 이렇게 무시하면서까지 급하게 착수해야 하는 문제냐고. 너무 이판사판으로 몰고 갔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 차라리 정치권 내의 환멸을 정치권 밖에서라도 풀 수 있어야 할 텐데, 어째 조국 임명에 대한 투쟁은 다시 한번 환멸을 일으킵니다. 더민주 지지자들의 현실왜곡장은 물론이고 조국 임명을 반대하는 스카이 생들의 투쟁은 너무 자가당착에 당파싸움의 연계같아서 지루하고. 염려와 근심만 하는 게으른 시민이 마음 줄 데가 없네요. 


천만영화는 안보면 되고 끽해야 몇만명 대에서 맴도는 독립영화를 기꺼이 선택할 용의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현실의 정치는 작은 숫자로 시급한 변화를 일으킬 수가 없는 노릇이니까요. 양당체제 마인드에서 자유롭고자 했던 저도 이번 청문회를 보면서 다시 한번 그 양자택일의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자한당을 아직도 하한선으로 두고 있는가. 왜 거기서 조금 더 뛰어오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발이 걸려 더민주라는 두번째 하한선에 발을 걸어야 하는가. 미학은 적은 숫자의 성취로도 충격의 강도와 질로 도약을 일으킬 수 있지만, 현실의 정치는 오로지 숫자만이 말을 합니다. 일전에 허문영 평론가가 그랬죠. 본디 픽션에서나 나올 법한 미학적 인물들이 계속 현실에서 튀어나오면서 그 경계를 흐리고 있다고. 저는 이 미학적 인물의 탄생이 트럼프와 두테르테 같은 망나니들이 아니라, 조국과 자한당 모두를 능가하는 도덕적 인물이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그런 철인의 등장을 기다리다가는 늙어 죽고 말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적당히 먼지가 끼어있고 눈은 감아줄 수 있는 대안적 인물을 더민주에서 찾아주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제가 다 팔아버린 체념을 대출해서 더민주에게까지 팔아야 할 것 같으니까요. 저는 한국의 정치가 끝도 없는 빨강과 파랑의 인지부조화 악순환이 아니라, 안될 당은 도태시키고 생존하는 당은 계속 성장해나가는 그런 스토리를 갖추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까지나 시민인 생업과 여가를 포기하고 촛불을 들면서 변혁을 실천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 다른 점에서 또 씁쓸합니다. 민정수석부터 법무부장관까지, 행정부의 요직을 쏙쏙 빼먹으면서 얼굴을 팔고 있는 조국을 보면 이건 조국 개인의 큰 그림이라기보다는 더민주의 차(차차)기 대선후보 육성플랜쯤으로 보이기도 하거든요. 정치인을 향한 분노는 축적된다지만, 동시에 소모된 분노는 충분한 불길을 일으키지 못하고 얼룩 정도로 남아서 여론의 공정한 비판에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 지지율 자체는 별 거 아니지만 유시민이 대선주자 후보 순위에서 꽤 상위권이더군요. 정말 황당했습니다.  

    • 도덕적 인물을 원하신다고 하셨는데.. 그런 사람은 누군가요?


      부정부패가 없고 인맥을 이용한 어떤 이득도 취하지 않았으며 만인에게 공평한 사람을 말하는건가요?

      • 이세계사람이 아닌 어떤 그런 사람?
      • 그닥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서지현 검사 혹은 임은정 검사 같은 사람이 있죠. 그외에도 찾아보면 나올겁니다. 왜 조국말고 다른 사람은 없다는건지 모르겠네요.
        • 제도로서의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의 큰 그림을 두 검사가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요? 검찰 힘을 빼고 법무 업무의 많은 영역을 비검찰 출신으로 되돌려야 하는 사법개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가 법무장관이 되어야 하는지, 저는 반대합니다. 

          임은정, 서지현 두 검사가 강고한 검찰 조직에 균열을 내고 있는 건 분명하고 그 행동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게 검찰의 한계를 넘어 개혁의 칼을 휘두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회의적입니다.


          조국이 검찰 개혁의 적임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 대안으로 저 두 검사가 끌려나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두 검사가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 방향에 동의하는지 여부조차 검증이 안 된 상태입니다. 단순히 검찰 조직 안의 불합리와 부조리에 대해 항의하고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차라리 두 검사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는 편이 이 정부 사법개혁 방향에 맞겠지만 검찰총장은 총장추천위에서 후보를 천거하니 두 검사가 총장이 되는 일은 더 어렵겠죠.

          • 조국은 자신이 한 말 조차 제대로 행동으로 옮기지못했던 사람인데 뭐가 검증이 되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전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은 사람은 믿지 못하겠던데요. 적어도 저 두 검사는 자신이 믿는 바를 실천하기위해 리스크를 감수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사법개혁에는 검찰권력 줄이는 것만 있나요. 저 두 검사 중 아무나 지명이 되었어도 상당히 개혁적으로 평가받았을겁니다. 아닌가요?


            더민주 지지하는 한남들은 맨날 권력이동에만 관심을 가지니까 검찰권력 줄여야한다 어쩐다만 얘기하는데 장자연 사건 때 피해자에게는 관심없이 그 사건을 트리거로 조선일보 언론권력을 무너뜨리는 거에만 관심가졌던 거랑 똑같습니다. 그러니 윤지오같은 얼치기한테 낚였던 거고요. 조국을 윤지오에게 비교하는 건 심한 면이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저는 그가 과연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 반발하게 만드는 댓글이군요....


        조국이나 그 지지자들은 '좀 가만이 있으면 좋을텐데,,,,'라고 할것같아요.

    • 정치의 주어가 여전히 자한당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적대적 공생관계인 거대양당...인 셈인데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처절하게 실패한 지금 그 양당 공생을 깰만한 정치세력이 안 보이는 게 큰 문제겠죠.
    • '한국의 현실정치에선 환멸을 두고 겨룹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어느 진영을 지지하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죠.

    • Flexible/


      "부정부패가 없고 인맥을 이용한 어떤 이득도 취하지 않았으며 만인에게 공평한 사람을 말하는건가요?"




      와우 놀랍군요. 현정부의 지지기반은 이전 박근혜정부의 "부정부패"와 "인맥을 이용한 어떤 이득도 취하지 않았으며 만인에게 공평하지 못했던"최순실 사건때문에 실망한 다수의 국민들인데, 이걸 이런식으로 써먹는 이야기가 나올줄이야ㅋㅋ



      •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한테 짖는다. 뭐 옛날부터 내려온 속담이지만 요즘 시국에도 적절한거 같아요. 서로 다 묻어 있잖아요. 하지만 똥 묻은 개는 자신에게 어떤 게 묻어있는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듯. . .
        • 겨묻은 것처럼 보이는 개한테 묻은게 진짜 똥인지 겨인지 구분하자고 하는데, 겨묻은 개 견주가 우리 개는 깨끗해요!!!라며 진상을 피웠지요.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의혹제기는 전부 정치공작이나 이와 유사한 언론의 편향성쯤으로 묘사하고, 부당한 공격 취급하는게 문제인거에요. 조국 자녀의 입시 의혹만해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있는데 그걸 가지고 "검찰이 그렇게 매달려서 기껏 찾아낸게 표창장하나냐"라고 비웃는건...이건 큰 문제입니다. 조국지지자들이 앞으로 유사한 의혹이 제기될 (반대편)정치인에게 무슨 얘길할건지 궁금해요. 안면몰수할게 뻔하지만.

          • 큰 문제라고 지적하셨지만 검찰이 표창장에 명운을 걸겠다는 기사를 봤을때 헐;;하기는 했어요. 세금낭비라는 생각에 너무 무능한것일까라는 판단도.

            검찰이 의혹만 가지고 올인을 하는 거보다 대충 빵빵 터지는 다른 사건에 집중하면 얻는 성과가 더 클텐데 다른 사건은 전혀 관심도 없는 거 같고. .

            겨 묻은 개 이야기는 겨가 묻었는데 안 묻었다고 우기는 것 때문에 문제였군요.

            그치만 사실 겨 좀 묻었어,라고하면 또 그것대로 문제일거구. . .하지만

            똥 묻은 개는 똥 묻히고 짖어도 원래 똥 묻은 개지하면서 모르는 척 해주는 거 같아서 불공평하다고 느낍니다.
            • 저하고 싶은말 쓴거지만 진지한 원글에 향기롭지 못한 댓글로 지저분하게 만든거 같아 사과드립니다.
    • 이런 발언들이 나오는 것 자체가 자한당의 승리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이번 건에서 환멸 포인트는 그거에요.


      억지로.. 꼬투리를 잡고 잡아서 결국 물 흐려놓기에 완벽하게 성공했죠.
      • 이번에 자한당은 실패했죠. 자한당에 좋은 국면이었는데도. 


        억지로 꼬투리를 잡았다는 말은 이 건에는 해당 안된다 봅니다, 

        • 반대론자들은 합리적 의심이라고 생각 했겠지만, 실제 이 “반대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자한당과 언론과 기타 등등의 세력은 “합리적 의심”으로 가장해서 총공격으르했었죠.


          찬성론자들의 관점에선 무리수 둔 꼬투리 였구요.
    • 정치혐오를 키워 무관심층을 늘리는게 자한당과 수구보수언론의 프레임이었습니다. 일본처럼, '정치는 관심없다' 라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라는거죠.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4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38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48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5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0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1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6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8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4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29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3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7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6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2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5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