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이라는 것

1. 세상엔 정해진 가면들이 있습니다.  어떤 가면들은 너무 흔한 것이어서 전혀 위험하거나 불온하게 생각되지 않죠.
너무나 많은 사람이 쓰고 있어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과 교류하는 법까지 세상이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정해준 가면을 쓰면 비교적 정직하다는 평을 듣죠. 그런 가면은 삶의 안전을 위한 일종의 규칙 같은 것이므로. 
심지어 '쓰지 않으면 너의 피부를 벗기리라'는 경고훈이 있는 지경입니다.

2. 가면을 왜 쓸까요?  세상이 주는 돌연한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게 한 이유인 것 같긴 합니다. 그런 가면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은폐시키는 것이겠죠. 가면으로 감정과 사고를 가림으로써 '나'의 내부가 '나'에게만 감지되는 고독한 자유를 얻는 덤도 있고요.
그러나 그 자유란, 세계와 나의 직접적 교류를 끊임없이 유보하는 좁은 우물이기도 한 거라고 생각해요.

3.때로 아주 낯선 가면 앞에서 당황합니다.  낯선 것도 실은 저 흔한 가면에 대한 진부한 반역과 변형에 불과할 뿐인데도. 진정으로 낯선 가면은 절대 감지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알려지지 않은 다른 세계의 방식일 테니까요.
(뻘주: 제게 조국/김어준의 가면은 익숙한 것인데 최근 유시민의 가면은 아주 낯설어요. - -;)

4. 때때로 우리는 약속과 준비를 거쳐 동시에 모두 가면을 벗고 얼굴을 노출시키며 서로를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벗은 가면 뒤에서, 은연중에 감지했거나 상상했던 상대방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던가요? 그의 깊은 곳에서 일고 있는 떨림이나 혼돈이 보이지 않기는 매한가지가 아니던가요?

5. 언젠가,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저는 그것을 벗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가면을 쓴 기억이 없는 저에겐 그것을 벗을 힘이 없었어요.
그래요. 가면을 쓰지 않았다 해도 우린 한 얼굴이 숨긴 깊이의 끝에 가 닿을 수는 없습니다. 가면은 가면 뒤에 진정한 얼굴이 있다는 착각을 위해 존재합니다.

뻘덧: 어제 dpf와 나눈 대화 한토막. 
"요즘 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실눈을 뜨고 사람들을 봐. 그거 일종의 소심한 가면인 거 알아?  자기보호본능으로서의 기본적인 기능 뿐인 가면." 
-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실눈에는 오랜세월 바람과 햇빛에 단련된 자의 강인함이 있지.ㅋ 
릴케였나?  무서울 정도로 차례차례 재빨리 얼굴을 바꿔 결국 낡아 버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고 갈파했지. 
희미한 기억인데 이런 말도 덧붙였어. 그런 사람은 최후의 얼굴을 혹사시켜 결국 그 얼굴에 구멍이 뚫리고 차츰 얼굴도 아무것도 아닌 민둥민둥한 표면을 하고 돌아다닌다고. 그 무서운 예언을 잊고 있었는데 니가 기억나게 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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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괄호안의 뻘주를 읽고 댓글을 달아요. 어디로 갈까님이 조국 김어준의 가면이 익숙하다고 하셔서. . .그렇다면 어디로 갈까님은 그들의 가면을 쓰기전의 모습을 잘 알고 계신건가요? 그런건 가족이나 어쩌면 자기 자신도 혼동하는 그런건데. . .
      • 쓴 가면의 모습이 익숙하다는 거지 제가 그들의 본 얼굴을 어찌 알겠습니까? 4, 5번에 적었는데 난해한 내용은 아닌데 제가 어설프게 적었나보군요. 제 수준에선 최선을 다한 글이었지만 누구에게나 가닿을 순 없는 거겠죠.- -

    • 제가 유럽의 축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이탈리아의 가면축제, < Carnevale di Venezia>입니다. 사순절을 기리는 축제의 시작으로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가면과 중세복장을 뽐내는 시민들이 굉장한 볼거리를 제공해요. 
      위의 사진들은 전문사진가인 제 동료가 찍은 것인데요, 개인 계정이 없어 사진을 업로드할 곳이 없었는데, 댓글로 올릴 수 있는 곳을 가르쳐준 곳이 생각나 이용해봤습니다. 해삼너구리님 고맙습니다. 이미지 올리는 걸 십몇년 만에 해봐서 헥헥 거렸어요.ㅋㅎ
    • 오늘은 'Company Anniversary'입니다. 그냥 하루 쉬는 회사도 있고, 상관없이 출근하는 회사도 있던데, 우리 회사는 오늘 하루 종일 파티하며 놀고 업무는 내일 오후에  출근해 시작합니다. 괜춘한 회사죠?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 놀고 술마시러 출근하는 한량이된 이 기분이란~ -_-
    • 가면에는 표정이 없죠. 한가지 표정이 주어지면 그 표정으로만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기능적이긴 하지만 표정을 바꿔가는 가면은 변검 정도밖에는 본 기억이 없어요. 누구나 사회에서 혹은 주어진 위치가 요구하는 가면을 쓰고 살지만 (그게 편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같은 표정의 가면을 쓰고 있으면 내가 가면인지 가면이 나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는 때가 올거라고도 생각합니다. 




      저도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이지만 나의 가면, 남들의 가면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인간이란? 삶이란? 결국 인생이란? 물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생각해볼만한 시발점이 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1초에 가면 3개가 바뀌는 변검은 마술의 영역이지 정체를 숨기기거나 신비화를 위한 위장은 아니잖아요. 본 적이 있는데 놀라운 기술이었어요.
        저는 이 글에서 <가면>을 그리스 비극에 흔히 등장하는‘외적 인격'- 가면을 쓴 인격- 의 의미로 썼어요. 자신의 단점을 가리거나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 흔히 쓰게 되는 가면.

        양평에서 회사창립 파티 중인데, 차려진 거대한 점심상을 보는 순간 너무 괴로워서 도망가려 했더니 너의 꼼수를 우리가 다 알고 있다는 듯, 레아나와 dpf가 양팔을 한쪽 씩 잡네요.

        제가  좋아하는 수학자/논리학자가  괴델이에요. 이 회의주의자가 가르켜보인  '자기 가면을 가리키며 살아가기"라는 최고의 정경이 오늘 문득 생각났으니 숙고한 후 글을 올려보게 될런지도...
    • 유시민이 그 가면에 대해 김어준에게 한말이 있어요. 자신이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혹은 그 가면 안의 쌩얼은 그 누구도 심지어 본인도 모르는 것이니 결국 헛소리일 뿐이다라고. 어떤 이가 쓰고 있는 가면은 결국 그 가면을 보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모양일 수도 있어요. 정치인이나 언론인 그리고 윤석려리 같은 자들이 쓰고 있는 가면의 경우 수 많은 욕망들이 서로가 그 가면은 이렇다 저렇다 그 안의 쌩얼은 이거다 저거다 투쟁이 벌어진다는 것만이 우리가 알 수 있는 펙트죠.
      • <뉴스공장>이나 <다스뵈이다>에서 말씀하셨나 본데, 저는 반년 전부터 김어준 방송을 안 듣고 안 봐서... - -


        자신의 진짜 얼굴을 남에게 내보이지 못할 뿐이지 스스로 인지하는 사람은 더러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 중 하나가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인 거고요.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가면의 고백>이라는 제목의 반어법은 재미있죠. '가면'과 '고백'은 '참'과 '거짓'이라는 명제처럼 연결될 수 없는 단어잖아요. 근데 미시마는 가면에도 신경과 실핏줄이 연결될 수 있고 그게 살까지 파고들면 가면도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죠.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소설가가 되는 것 같아요. 





    • 저는 요즘 가면이 위장용이 아니라 보호기능을 위한 장비라고 생각해요. 특히 웃음이라는 기능을 위해 특화된... 저도 집에 오면 무표정하게 되면서 얼굴 근육에 따로 신경쓰기가 싫더라구요...
      • 독신자에겐 적어도 10시간 정도의(제 경우) '가면으로 부터의 해방'이 가능하죠. 이른바 완벽한 자유의 시간!
    • 난 처음 썬글라스 안경 하나 사려고요 앵경은 영화 볼 때만 썼는데.



      • 어허 여지껏 선글라스 없이 사셨다고요? 가성비 최고의 물건이에요.


        썬구리와 모자를 착용하면 세상이 요구하는 표정 따위 무시한 채 거침없이 활보할 수 있어요. ㅋㅎ

    • 문재인 당선되고 유시민 작가가 나는 문재인정부 5년동안 어용지식인으로 살겠다고 했죠. 노무현정부때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한겨레, 경향, 오마이, 민노당의 비판이 더 뼈아팠다는 고백과 함께. 문재인 정부가 잘못하는 것도 분명 있을텐데 자유한국당이나 조선일보와 같이 정부를 비판하면 문정부는 제2의 노무현정부가 될것이기 때문이라고. 충분히 이해할만하죠. 하지만 이 조국건은 시간을 너무 끌었어요. 청문회때 밝히겠다고 하면서 결단을 내려야할 시점을 놓치니 정국은 이미 경색되고 검찰개혁은 물건너 가버리게 된거죠. 감이 떨어진거에요(원래 없었나?-.-). 노무현은 치고 나갈때 팍팍 치고나갔는데(너무 빨리 나가는게 문제였죠) 이해찬 유시민은 그정도는 안되는거죠.
      • 유 작가님의 명석함의 바탕에는  팬심으로 표현하면 '맑다', 외람되게 꼬집자면 '순진하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 있어요. - -;
        김어준과 짝짜꿍이 된 그의 조국 비호는 이런 제 판단과 부합되지 않는 새 면모여서 여러 개의 ??? 마크가 붙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양심, 도덕, 상식, 품위를 넘어서는 괴물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에는 흠집 1도 나지 않아요.  그저 의아할 뿐이죠.
        노무현은 파격의 '낯선' 정치인이었고 유시민은 예측가능한 지식인으로 여기기에 납득하기가 더 어렵네요. 숱한 우여곡절 있었던 그의 행보들 중 갸우뚱하는 게 이번이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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