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저리와의 카톡 7 (헤겔리안 찾기)

머저리> 어 누나, 헤겔리안 하나 소개해줄래?
머저리누나> 논문은 (주: 공학도) 언제 쓰려고  헤겔리안 타령?
머저리> 논문은 알아서 착착 쓰고 있으니 걱정마삼.
머저리누나> 헤겔리안이었다가 포스트모더니스트였다가 다시 헤겔리안으로 돌아온 인물들이 떠오르긴 한다만.

머저리> 안돼. 신세대 헤겔리안이어야 해. 불순물이 잔뜩 든 동일성을 이야기할 줄 아는.
머저리누나> 글쎄, 누가 있지? 이** 와 홍** 정도의 옛인물들만 생각나네.
머저리> 심하게 의심받은 사람들 아냐? 글들이 두 팔 벌리고 선지자풍의 스탠스까지 취했더만.
머저리누나> 왜 내가 미안하지?

머저리> 누나가 그 학계와 뭔 상관 있다고 미안해? 암튼 우리나라에서 괜찮은 헤겔리안 찾기가 힘드네.
머저리누나> 뭐 '정신현상학' 끝까지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머저리> 사실 한국에서 철학은 한물 간 분위기잖아.
머저리누나> 언제 흥했던 적은 있었나? 막장 분위기 잡게?
머저리> 하긴. 그나마 영화 쪽에서나 겨우 사용해먹었지.

머저리> 한국의 지성계라는 것이 있을까?
머저리누나> 있다면?
머저리> 내 눈에 안 보이니까 단지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물어보는 거야.
머저리누나> 낸들 알겠니? 죽을 때까지 공부해보려는 각오가 있을 뿐이지.

머저리> 누난 학계의 연대랄까, 우정을 믿어?
머저리누나> 음. 난 주원장식의 우정에 대한 로망이 있어. 명나라를 세웠던 주원장은 친구에게 잘했대. 근데 묘한 버릇이 있었다지, 
반드시 과격하게 싸워보고 나서야 우정을 맺었다는 거야.
머저리누나> 싸움이란 전투니까,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나갔겠지. 적에서 친구로 전환되는 지점에 칼이 있다는 건 얼마나 긴장감 넘치는것이었을까? 깊은 우정/연대에는 반드시 자기희생이 뒤따르는 거지.
머저리> 주원장식 우정이라...  한국에선 불가능할 듯 싶은데? 다들 즉각적인 의기투합이잖아. 인상적인 결을 중시하고. 
머저리> 그러다 수틀리면 바로 적이 되고. 적과 동지의 이분법은 여전히 유교적 하이어라키와 만나서 인간관계의 변종이나 기형을 낳고 있고.

머저리누나> 그게 다는 아니라고 생각해. 나는 여전히 그런 우정이 가능하다고 믿어.  그리고 그런 식의 우정이 아니라면 진정한 연대의 전선은 불가능하다고 봐. 
머저리누나> 386/ 586세대의 그 많은 사람들이 변절했다고 비난받는 이유도 주원장식의 우정이 아니라 그저 해진 관념의 우정을 맺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고.
머저리> 전 세대가 누가 더 급진적이냐, 누가 더 말빨이 세냐를 겨뤘다는 거네? 요즘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들이 나르시시즘적 동일시로서 맺은 우정이라는 거?
머저리누나> 아우님. 대화하는 재미가 있사옵니다.
머저리> 그래서 누나가 아버지에게 자주 시비거는 거구나?
머저리누나> 이제야 알겠니? ㅋㅎ
    • 일종의 변중법인지 대립 상대가 있을때 내가 어느 위치에 있게 되는지 대강 알 수 있으니 보강할 점을 찾기 편한것 같아요. 대립이야 말로 최고의 성장법..


      원문은 읽은 이는 없어도 구전설화마냥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는 학자들,, 라캉이나 헤겔이 그렇지 않나 싶네요.
      • 장광설의 철학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라캉과 헤겔인데, 두 이름을 콕 적어놓으셔서 자동미소가.
        그들의 철학은 '구전설화 마냥 입에서 입으로' 즉 편린 식 이해로는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정신의 왕국>이라 제가 두손 들고 말았거든요. -_-
        불현듯 떠오른 기억 하나. 제가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읽고 있는데, 한 친구가 슥 다가와선 그러더군요.
        "헤겔에게 이런 '프라그멘트fragmemt'는 쓰다 만 글일 뿐이었지."
        당시 헤겔강독을 열심히 듣던 친구여서 쫌 귀여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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