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일들 9 (판단과 평가)

1. "변함없이 너는 그자리에 있어라."
시월 들어  가족 외의 사람들에게서 세 번이나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변함없이 여기 있겠다.'고 오직 스스로 결정한 경우보다 나은 것일까요?  아, 내가 '여기 있어야 할' 사람처럼 그들에게 보이는 거구나, 라는 생각만 합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들 모두가 이미 광장으로 걸어 나가 뒤얽혀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이윽고 그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우리의 거리가 멀어진 후에도 내가 과연 '변함없이 여기에' 남아 있을까 ? 자문해봅니다. 있을 것 같아요. 신념이기 보다는 유치한 자기애 같은 거겠지만.
근데 자기애 쪽으로 1 밀리미터 더 이동하기. 그 1 밀리미터를 위해서 철없는 포즈나마 취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의미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무의미하더라도 엄청난 노고가 필요한 법이거든요.

2. 자문받을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은사님을 뵀는데, 선생님이 비밀스럽게 던져주신 말씀.
“ 20대는 놀아야 하는 나이인데 넌 마치 30대처럼 강렬하게 온갖 걸 고민하는 눈치였지.  30대는 그냥 열정적으로 일할 나이대인데  니가 40대처럼 겁없는 큰모험을 벌일까봐 걱정이다."
- 점치시는 김에 더 얘기해주세요. 제 50대는 어떻게 예상되세요?
" 50부터는 비밀스러운 나이대라 누구의 것도 예측 못하지. 이번에 히트 앤 런한 조국을 보렴.
- (먼산~)
"앗상블라주만 알아도 세상을 호락호락하게 보다가 중도작파하지 않지. 그런 거야. 나도 부질없이 가정만 하고 있다만."
(주: 앗상블라주 - '모으기, 집합, 조립'한다는 뜻으로 폐품을 이용한 미술작품 기법. 꼴라주와 비슷하나 앗상블라주는 3차원의 입체적인 성격이 강함.)

3. 신새벽의 까똑까똑~ 
머저리> 어 누나, '독서란 무엇인가?'에  열자 이내로 정의를 내린다면?
머저리누나> 신새벽에 별걸 다~ 뭐하자는 건데?
머저리> 이유 묻지 말고 떠오르는대로 한마디 던져주셈~ 

머저리누나> 독서란 용서다.
머저리>  forgive?
머저리누나> 아니, use book. 어떻게 책을 사용할 것인가? 라는 것.
머저리>  모 교수님이 낸 과젠데, 요거 써먹을 테야. 빠빠이~ 
(눈뜨고 코 베이는 세상. - -)

취할 건만 넙죽 받고 전화 톡 꺼버린 머저리님. 비밀 하나 말해줄게요.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음미하고, 기억잔치 벌여도 별 소용없어요. 그런 행위는 시간 속에서 빛바래는 행위예요.  
물론 그 정서적 놀이가 없어서도 안되지만, 올인할 건 못된다는 충고를 보냅니다. 
너님이 순간에 존재의 천사로 비상하면 그땐 인정해드리죠. 과연?


    • 책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아상블라주는 어딘지 거센펠드 형제가 말하는 4차 산업혁명 비슷하군요

      • 읽기 시작하셨군요. 저는 할아버지가 물려준 세로쓰기 판본도 가지고 있는데 설마 그 옛본은 아니기를. ㅎ
        앗상블라주가 전통적 표현법의 모방에서 벗어나 새로운 구성을 시도한 점에서 거센펠트 주장과 맥이 닿을런지도 모르겠어요. 두 분야 다 아우트라인 정도만 아는 터라....  -_-

    • 그대로 충분하니까 다 그런 말을 하죠


      나도 너만하면 됐어 라는 말 들었었는데 그건 술마시다 그냥 하는 말이었고.

      • "그대로 충분"함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변화와 발전을 굳이 구분하는 제 의식의 문턱을 꼬집는 말일 수도 있어요. ㅋ

    • 뇌의 연산속도가 엄청나서 살아온 지난 세월을 한순간에 떠올릴 수 있다면. 
      그럴순 없지만 ㅎㅎ 그래도 그런 상상을 하고 생기는 이미지때문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답니다. 

      • 한순간에 자기가 살아온 시간의 적나라한 집약본을 마주하게 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으로 눈감고 고개숙일 것 같아요. 
        자신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현재'라는 광휘는 과거를 착각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며 우릴 미래로 몰고가기 마련이라... - -
        길없는 길을 찾아가는 메소돌로지를 아는 사람은 예외일 듯합니다. 
        • 그런가요? 전 40여년을 살았는데 지난 40년이 한장의 이미지처럼 떠올려지고 그 장면에 40년이 다 들어있고. 
          그런 명상(망상)을 가끔 해요. 
          ㅎㅎㅎ 인생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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