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계?

1. 몸의 한계는 대체로 명확합니다. 몸에는 '~ 인 듯하다.'는 상태가 별로 없어요. 정신은 다르죠. 정신의 한계는 유동적이고 매순간 불확실하며 참인지 거짓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몸에게 배워야 해요.  몸은 정신보다 아는 것이 많지 않지만, 아는 한도 안에서는 분명히 알거든요.

2. 마트에 가면 샴푸 하나를 사는 경우에도 수십 종류를 사열해야만 합니다. 한 두 종류만 있다면 '이것이냐 저것이냐' 정도의 갈등만 거치고 물건을 살 수 있을 테죠. 그러나 요즘의 시장이란 '이것, 저것, 다른 저것' 하는 식으로 줄줄이 고민을 하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어떤 기준을 갖고 고려할 대상 자체를 제한하지 않으면 '마트에서 길을 잃'게 됩니다.

글이나 이미지를 찾을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우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에 걸맞는 것들 외에는 거리를 두거나 시선을 주지 않는 식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순간순간 원점으로 돌아가려는 고려가 없으면 동그라미를 그릴 수 없어요.  한 번 접고 각을 꺾지 않고서는 딱지 한 장 접을 수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세상은 방만한 장터이니까 그때그때 접지 않으면 목적지에 이르기 어렵습니다. (접자. 저는 오늘도 새벽부터 하나 접었.... - -)
자, 그런데 문제는 '최상의 선택'이라는 신화가 있다는 거예요.  누구나 이른바 최상의 선택을 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도, 혹은 가질 수 있는 것으로도 '이미 모두 이루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믿지 않아요.

3. 누구의 삶이든, 삶은 그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결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기 삶의 양상과 그 안에서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사람들은 타인의 삶의 모습이나 주장을 대할 때, 그의 이력을 가늠해 보곤 합니다.. 자신의 경우에, 혹은 일반적인 경우에 비추어보는 것이죠. 그러나 누구의 삶에든 타인이 알아 볼 수 없는 그만의 고유영역이 있습니다. 성자 앞에서라도 끝까지 고집해야 할 '성스러운 악덕'이 있을 수 있는 겁니다. 

4. 한 사람의 개성은 그의 한계와 단점으로도 판단되곤합니다. 한 사람의 한계를 알면 관계맺기에 도움이 되죠. 그의 한계 이상을 요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고, 그의 한계와 어떻게 타협해볼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엔 그의 장/단점, 과잉이나 결핍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상대의 과잉 혹은 결핍의 형태와 제 마음의 형태가 맞물릴 수 있느냐가 더 실제적인 관건입니다. 이건 문학에서 사용하는 '내적 담화inner speech'라는 개념과 상관이 있는 문제인 것 같아요.  밖으로 소리나지는 않지만 그러나 귀로 들리는 생각 같은 것.
아무튼 오늘도 저는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바라봅니다. 하나의 다리를 놓기 위해서. 언젠가 그 다리 위에서 서로의 모든 결핍을 용서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5. 어제 보스가  "당신은 책/영화/음악을 참 많이 읽고 보고 들은 것 같다. 어떻게 그 나이에 그 양이 가능하지?" 라고 갸웃하시길래, "연애와 결혼만 안 하면 의외로 인간의 하루- 24시간은 길고 많은 시간입니다."라고 답했어요.
그랬더니 '언제  우리, 자신의 한계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꼭 가져봅시다~'라며 크게 웃으신 게 앙금으로 남아 있... - -

    • 유튜브 등 미디어의 모든걸 가져도 세상에 한두가지 밖에 없던 때와 무얼 비교해야 할까 사는건 크게 다르지 않네요.


      한계에 대해 알면 그 보다 좀 더 갈 수 있죠.


      덧붙일 말이 없게 생각의 범위가 대단히 넓어 좋아요.

      • 한계와 자유를 대립어로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이젠 알아요. 
        자신의 한계를 의식적/의도적으로 다룰 줄 알고,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최적화하여 자기가 원하는 상태에 도달하는 힘이 자유라는 것을. (셀프 쓰담쓰담~)
    • 2. 새벽에 접어서 어디로갈까 정했어요? ㅎㅎ.. 이미 모두 이루다뇨? 어디로갈까 정할 필요도 없는 건가?


      5. 어떤 책/영화/음악 보다도 연애가 재밌는 거 아냐요? ^^;


      • 2. 하나를 접는다고 가야할 길이 또렷해지면 이 세상에 그 많은 방황들이 있을리가요. ㅎ 파보고 싶던 것 하나를 접었을 뿐이에요. 


        5.학창시절, 누가 '차나 한잔~'을 청하면 '집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가 있어서...'라고 응수하곤 했죠. 입밖으로 내지 않은 그 이름들은 도스토옙스키/칼 세이건, 알 파치노/맷 데이먼, 바흐/브람스... 등등 이런 남정네들이었으니..... 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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