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십니까?

이 신새벽에 못본 지 오래된 지인으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어떻게 지내요?"
저에게 호감을 표하거나 서로 생각/감정을 나눠본 적은 없는 사이입니다. 각자의 업무성과에 대해 절제된 언어로 격려 정도 주고받는 관계라 답말이 막히네요. - -

에코의 유머 용 에세이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화내는 방법>에는 독자의 상식과 지식에게 던지는 여러가지 질문이 적혀 있죠. 
그 중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역사적 셀럽들의 한마디가 소개돼 있는데, 몇몇 인물들의 것을 함 떠올려봅니다.
(주: 작년이었나, EBS에서 이 질문을 영상으로 제작해 방송한 바 있음.)

- 어떻게 지내십니까? 

괴테 : 빛이 조금 보입니다.
노스트라다무스 :  언제 말입니까?
노발리스 : 한 바탕 꿈속입니다.
데카르트:  잘 지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드라큘라 : 피봤습니다.

라이프니츠 : 이 보다 더 잘 지낼 수는 없을 것 같군요.
레닌:  4월에 무엇을 할까 고민 중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그가 집필한 볼셰비키 혁명의 교과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처럼 뜻모를 미소만 지음.
뤼미에르 형제: 열차를 조심하세요~ (그들의 '라시오타 역의 열차'상영 때 정면에서 달려오는 열차 장면에서 관객들 혼비백산.)
버지니아 울프 : 내일은 날씨가 좋기를 바랍니다.

버클리 : 잘 지냅니다. 난 그렇게 지각합니다.
베토벤: 뭐라고요? 뭐라고요? ( 청력을 잃은 후 글로만 의사소통했으니.)
비발디 : 계절에 따라 다릅니다. (<4계>가 저절로 나온 게 아님.)
비코 : 나에게 그건 순환적이죠.
비트겐슈타인 : 그것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 게 낫겠습니다.

성 안토니우스 : 환상이 자꾸 보입니다.
소크라테스 : 모르겠소.
셰익스피어: 당신 좋을 대로 생각하세요. (As you like it.)
세헤라자데: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라기엔 왕에게 천일 동안 이야기를 들려줬던 전력이.)

아가사 크리스티: 맞춰보세요~ 
아베로에스 : 잘 지내면서 잘 못지냅니다.
오이디푸스 : 질문이 복합적이군요.
유다 : 입맞춤 한 번 해도 될까요?

아인슈타인 : 상대적으로 잘 지냅니다.
이카루스: 한바탕 곤두박질을 치고 난 기분입니다. (밀랍 날개로 날다가 바다로 곤두박질쳤... )
에피메니데스 : 내가 그걸 말한다면 거짓말을 하는 게 될 거요.
카뮈 : 부조리한 질문이군요.
카프카: 벌레가 된 기분입니다. 

탈레스 : 물 흐르듯 살고 있습니다.
파스칼 : 늘 생각이 많습니다.
플라톤 : 이상적으로 지냅니다. (핵심 개념 이데아.)
피타고라스 : 만사가 직각처럼 반듯합니다.

하이데거 : 지낸다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 거죠? (Was heisst gehen?)
헤라클레이토스 : 잘 돌아갑니다. 잘 돌아가요......
흄 : 잘 지냅니다. 난 그렇게 믿습니다.

어디로갈까: 어느 길로 가볼까, 여태 생각 중입니다. 
    • 저는 계획이 다 있었지만 예정대로 안 됩니다...
      • "계획이란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세우는 것. 자기 속의 또 다른 자아가 자신을 속이는 것이지만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 또 세워야 하느니~" 라고 울 할아버지 토닥토닥해주셨던 게 생각납니다. ㅎ
    • 비트겐슈타인,아베로에스,아인슈타인,에피메니데스,하이데거(오타없나 몰라요)의 답들이 맘에 드네요 ㅎ
      • 그들의 사상, 특성, 유명한 언설을 통해 예상해낸 답들이지만, 마음에 들어하신 문장들이 우리가 차용해 쓰기에도 세련되고 무리없는 대답이긴 합니다. 
    • 저라면 답하기 곤란할 때 (혹은 왜 저 사람이 나에게 이런 걸 물으며 왜 내가 답해야 하지? 라는 생각에 한순간 멍해졌다면)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 있었던 답을 쓰겠습니다. "I'm fine. Thank you. And you?" 


      번역하면 "저는 잘 지냅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참 형식적이고 공허한 답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난데없이 날아든 질문에는 정중하게 공을 상대방에게 돌릴 수 있는 말인 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formal한 답변이라는 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난처한 질문에 능숙하게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중학교 졸업하고 수십 년이 지난 이제서야 드는군요. 


      별로 친하지 않은 낯선 사람에게 "How are you?"라는 질문을 도대체 왜 하며 그런 질문에 "I'm fine, Thank you"라는 텅빈 대답을 


      왜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어린 학생이 나이가 드니 다 이해가 됩니다. ^^ 

      • 쇼펜하우어 : 잘 지내려는 의지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중 1 영어시간, 선생님에게 랜덤으로 걸려 일어나서 어느 페이지를 읽었어요.  발음이 좋다며 몇 장 넘어가도록 더 읽게 하셨더랬죠.
        그 중에서도 "I'm fine. Thank you. And you?" 의 제 어조가 예쁘다며 여러 번 반복하게 하셨던 기억이 불현듯...ㅋ
        근데 실생활에선 저 문장을 사용해본 적이 없어요. 요즘 영어교과서 예제는 좀 바뀌었으려나요. 
    • 사람들이 보통 뭐 그냥 그러죠
      • 고르기아스: 글쎄요~ 
        니체 : 잘 지내고 잘 못지내고를 초월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나도 모르는 비밀 속에서.
      • 루시퍼 :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하느님이 아실 겁니다.



        테세우스: 실날 같은 희망만 있으면 인생은 살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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